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eline Dec 17. 2023

대화에 대한 단상

나와 아빠의 대화.

87세의 나의 아빠는 엄마가 떠나신 후 심한 우울증으로 한 동안 힘들어 하셨다. 약물을 복용하시기 시작하고부터 지금은 많은 안정을 찾으셔서 정말 다행이다. 함께라는 것은 공간을 채우는 온기뿐만 아니라 대화라는 것이 인간에게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빠에게 엄마가 떠나신 자리가 그렇게 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나는 가족 중 아빠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고 자랐다. 나 또한 그런 아빠를 평생 사랑했다. 그러나 엄마가 떠나신 후 아빠와 나의 사이는 조금은 멀어진 느낌이다. 이유는 개인사정이다. 얼마 전 나의 집에 오신  아빠께서 말하셨다. "나에게 제일 사랑을 많이 준 딸이 우리 00이지."라고 말이다. 나는 지금도 가끔 아빠를 안고 얼굴을 비비곤 한다. 그러나 그런 아빠가 힘들어하실 땐 딱히 해 드릴 게 없었다. 나란 사람은 불안정한 사람이기에 안정을 찾기 위해 이기적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 점에 대해서 마음이 아프다.

일을 해야 하는데 갑자기 껌딱지가 되어 방해공작중인 내 사랑~~

오늘 아침 일찍 아빠께 전화를 드렸다. 안 받으신다. 다시 통화버튼을 누르자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 일찍 일어났네. 뭐 하셔?"

"뭐라고~ 감자를 데리고 온다고?"

"아니~ 뭐 하시냐고?"

"어~ 아침밥 먹어."

"아빠~ 내일 12시쯤 감자 데려다줄게"

"뭐~ 3시에 온다고?"

"아니~ 12시!"

"그래 12시. 알았어~"


아빠는 귀가 잘 안 들리신다. 보청기를 하셔도 큰 소리를 내야 대화가 가능하다. 아빠와 그렇게 5분 이상 대화를 나누고 나면 힘이 빠진다. 그래서 요즘 우리 둘의 대화는 부쩍 줄어들었다. 아빠와 아침 대화를 마치고 멍하니 식탁에 앉아 있었다. 한국을 떠나기 전(내일부터 해외 출장이다) 마무리 지어야 할 일들을 위해 켜 놓은 노트북에서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귀가 간지러울 정도로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으며.

커버화면 제목이다. 무산 허회태ㅡ이모그래피 창시자. 글자에 감정을 담은 아름다운 작품이다.

대화에 대해 씁쓸한 생각이 든 아침이다. 좋은 대화를 위해서는 갖춰야 할 것들이 많다. 그중 먼저 배려는 당연하고 경청을 해야 한다. 가끔은 쓸데없는 농담을 주고받을 수도 있다. 이것도 경청을 해야 상대의 의도에 맞게 대응할 수 있다. 그리곤 킬킬 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아빠와 나눈 대화를 통해 마음과 말을 주고받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요즘 하루 종일 나의 집을 가득 채우는 Faime의 노래모음이다. 푸딩처럼 부드러운 그의 목소리에 이 겨울 푹 빠져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2bhKZuA3mLE


매거진의 이전글 미술관에 대한 단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