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eline Mar 15. 2024

갑자기 공황이 찾아왔다.

하노이에서 일을 마치며.

자고 일어나 커피를 마시자 입이 타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몇 가지 서류를 정리한 후 시계를 보니 벌써 오전 10시가 넘은 시간. 숙소 앞 마트에 들어서 꽃을 한 다발 카트에 넣고 보름 째 감자를 보살피고 있는 아빠께 드릴 견과류를 가지러 마트 안 깊숙한 곳에 들어서는 순간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그대로 서서 눈을 감고 깊은숨을 쉬었다. 두근거리는 심장과 어지러운 머리는 서 있기도 힘들었다. 어찌저찌 마트를 빠져나오자 손과 발이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그대로 침대에 눕자 잠이 들어 버렸다. 눈을 뜨고 나니 세 시간 이상 잠이 들었던 것이다.

호안끼엠 호수에 흐느러진 물그림자는 아름다웠다.

드디어 일을 마쳤다. 나의 정신적, 물리적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일을 진행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한국에서 기다리고 있는 50여 명의 화가들을 실망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이다. 그날 비행기를 떠나보낸 것이.

린과 함께 한 요거트. 하노이의 유제품은 맛있다.

실은 며칠 전 한국으로 출발하기 위해 노이바이 공항에서 입국심사를 마친 후 앉아 이곳에서 동동대며 하루도 쉬지 못했었기에 넋과 얼이 나간 모습으로 잠깐 누웠다 눈을 떴더니 북적이던 공항 안이 조용한 것 아닌가? 황급한 마음으로 시계를 보자 비행기는 한국으로 출발하였고, 나는 30분을 더 잔 것이다. 정신없이 일어나 가방을 챙기고 보니 내 옆에는 젊은 여행자가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분명 그녀도 나와 같은 상황일 것이다.

하노이 롯데호텔 갤러리 담당자와 늦은 시간 미팅.

 공항직원에게 사정 얘기를 하자 잠깐 기다리라고 한다. 잠시 후 과일 하나를 건네며 서류에 서명하고 밖으로 나오자 한국으로 보낸 나의 슈트케이스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아닌가? 이것 또한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으로 가기 위해 미리 실려 있어야 하는 나의 가방이 왜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그리고 항공사 직원들이 탑승구 바로 앞에서 잠들고 있는 나를 어찌 깨우지도 않고 그대로 출발했는지는 도무지 아직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 여권과 티켓을 들고 잠들어 있었거늘.

또 다른 공항 직원이 묻는다. 왜 비행기를 못 탔는지. 이런 젠장 정신도 없는데~ 자다 일어났더니 비행기가 가 버렸다고 하자 컬컬 웃는다. 나의 여권을 복사하며  말이다.   아마도 그들에겐 자주 있는 일인 듯싶다.

미팅 중 이쁜 청년과의 부드러운 대화는 지금 생각해도 편안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이곳에서 해결해야 하는 일은 마쳤다. 정말 다행이다. 돌아보니 그날 비행기를 보내 버린 것은 하늘이 내게 다시 기회를 준 느낌이다. 그러나 나에게 공황이 다시 찾아왔다. 한동안 보이지 않던 증세가 나타나 불안하다. 앞으로 언제 또 나를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유연하게 일을 마무리한다고는 했지만, 겉으로는 유연한 척?을 했던 것이지 결국은 상대를 이해하지 않고 그냥 참았던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참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다. 오랜 세월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환경의 지배 때문인지 지금은 생활의 일부분이 되어 버렸다. 이번 일처리 과정 속에서 매 순간 불안과 싸움을 해야 했다. 혼자해결 해야 하며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상황도 아니었기에. 베트남 정부의 해외작가 전시회 승인서 절차가 까다롭고 제출할 복잡한 서류들이 있다는 사실을 현지 갤러리도 나도 알지 못했었다. 사전에 미리 점검했어야 했던 일을 생각지 못한 나의 책임도 일부는 있다. 현지 갤러리는 베트남 작가 그림만 전시할 수 있는 승인서를 갖고 있었다. 그들도 나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결국 해외 전시 승인서가 있는 갤러리를 나는 찾아내었다. 존버는 승리한다~~ 인생아~~

나의 베트남 파트너 린과 베키. 어린 나이지만 든든했다. 그녀들이 곁에 없었다면 나는 무너지고 말았을 것이다.

실제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누구도 없는 그런 곳(응원은 많이 받았다. 고맙게도.) 특히 우리와는 사회적 시스템 자체가 절대적으로 다른  이곳에서 나는 해결하였다. 드디어 일요일 한국으로 돌아간다. 스스로에게 대견함을 전하고 싶다. 잘 견디었고 이젠 숨 쉴 여유가 생겼기에 잠들었던 공황도 느낀 것 아닐까 위로해 본다.

나는 어디로 가야하며 이곳은 어디인가?그런 생각이 가득했던 시간이었다.

 감자를 안을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쁘다. 두서없는 글이지만  잠시 글을 쓰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나에게 글쓰기란 위로이며 안식처이다. 잘 쓴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공황을 발로 걷어차 버린 느낌을 받을 만큼의 위로를 받고 있다. 오늘도 일찍 잠들고 싶다. 내일 새벽 일찍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아침에 마시는 베트남 커피는 맛있다. 향기롭다.

베트님식 순대. 내 입맛엔 딱! 린이 말한다. 셀린님은 정말 하노이 체질이신가 봐요~ 한국 사람들이 잘 못 먹거든요.
린과 헤어진 희 비오는 호안끼엠을 혼자 걸었다.

사진을 보니 난 즐겁게 여행을 한 모습이다. 글과 다르게. 아이러니하게도. 하노이는 그런 도시이다. 특히 호안끼엠 호수 주변은 늘 살아있다.


전처럼 그림 이야기를 쓰고 싶다. 곧 그런 시간이 나에게 닿기를 기도하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