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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톨 Sep 17. 2019

Best Part

Every moment's gonna be my

Put your iPods or iTunes on shuffle. Write 250 words inspired by the first and last lines of the very next song that plays.


DAY6 - BEST PART

매일 밤 눈을 감으면 점점 두려워져 내일이 없을까 봐
언제가 끝일지 모르는 지금이 Best part


 처음으로 남들은 늘 죽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는 걸 깨달았을 때의 기분이 기억난다. 몇 살이었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비참함에 몸을 떨었다. 나는 늘 죽고 싶었고 머리가 큰 뒤로부터는 어떻게 죽을지에 대해서도 늘 생각했고 계획도 있었지만 용기만 없다고 생각했다. 남들도 제법 슬퍼하길래 다들 나만큼 슬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니. 그런 것에 대해 알고 놀라고 그러던 시절이 있었다.

 주제에 겁은 많아서 어떻게 죽어야 하나만 고민하다가 여태 살아있는지라 내일 눈을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고 눈 감은 밤도 하루 이틀이 아니다. 이런 생각이 건강하지 않다는 것, 어차피 한 번 살 삶이라면 건강하게 사는 게 나에게도 좋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는 병원도 다니고 나 나름대로 이런저런 노력도 해서 지금은 그나마 건강해졌지만.


 우울에 잠식되어있으면 위험하게도 참 자기 연민에 빠지기 쉽다. 자기 연민과 피해의식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서 하나를 갖고 있으면 반드시 다른 하나가 수반되기 마련이다. 병원을 다니기 전, 이별한 지 얼마 안 되어 쓴 일기 중엔 이런 내용도 있었다.

 나는 속사정까지 털 수 있는 친구들끼리 종종 “너무 화목하게 자란 사람들과는 너무 깊이 친구 못하겠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 가정에서 받은 트라우마가 어떤 식으로든 성인인 나의 페르소나에 영향을 끼치는데, 이 트라우마로 말미암은 어떤 성정을 이해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깊은 관계로 가기 위한 테스트 관문과도 같다는 오만한 이야기다.

 그 트라우마로부터 비롯된 우울과 불안, 회피는 나의 오랜 벗이었다. 내 곁에 있던 많은 사람이 그 우울, 불안, 나의 회피 성향에 지쳐서 나를 떠났다. 대학에 오고 나서는 많이 나아지고 이제는 그나마 괜찮아졌지만 꼭 친밀하고 깊은 관계를 맺을 때면 그 우울과 불안이 송곳처럼 뾰쭉 튀어나왔다.

 너와 함께할 때도 그랬다. 너는 밝고, 맑고, 잘 웃고, 너는 너를 사랑하는 주변인, 그리고 가족과 늘 함께였다. 세상 모든 게 싫은 나조차도 그런 너를 싫어할 수가 없었다. 너를 사랑함과는 별개로도 나는 심술과 질투가 가득한 못난 사람이라 네 사랑을 의심하고, 재고, 이기고 싶어 했다. 그렇게 해서 너를 이기면 그 밝고 아름다운 너보다 내가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봐. 어떻게든 자존심을 세우고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고 우기고 싶어 했다. 지금에 와서야 그건 절대 이길 수 있는 방법도 아니고 너와 함께할 수 있는 방법도 아니라는 걸 깨달았지만.

 연애보다 길고 (나 혼자) 구질구질했던 이별도 완전히 끝이 난지 오래지만 저 감정만은 선명히 기억난다. 나는 자기 연민에 빠져있었고 세상의 중심이 나로 돌아갔던 사람이었다.

 자기 연민에 너무 빠지다 보면 스스로를 곧게 사랑하기보다는 불쌍해하는 법만 배운다. 흔하디 흔한 말이지만 정말로,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타인을 사랑할 줄도 알고 사랑을 받을 줄도 알게 된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으면 다른 누가 나를 사랑해주겠나.

 그러다 보니 오갈 데 없는 애정은 밖으로만 나돈다. 이전에는 늘 누군가를 사랑해야 할 핑계를 찾았던 것 같다. 뭐 하나에 과하게 몰입해야 마음이 편했다. 그래서 나는 지난 몇 년간 연애와 짝사랑을 반복했다. 하지만 가슴 한편에 자리한 자기 연민과 피해망상은 누군가를 계속 사랑하고 싶어 하면서도 제대로 된 온전한 사랑을 못 하게 하고 자꾸만 나를 심술궂게 만들었다.


 우울에서 많이 벗어난 지금은 공교롭게도 그 누구에게도 로맨틱의 감정을 느끼고 있지는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무도 안 사랑하고 나서야, 나 혼자 있는 게 정말 괜찮아지고 나서야, 비로소 좀 건강해졌다. 언제나 밖만을 향해 대상을 찾던 사랑이 나에게로 돌아왔다. 처음 아무도 사랑하지 않던 몇 달은 길을 잃은 듯 불안해했고 우울감은 더 깊어졌지만 지금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상태여도 지극히 정상적이고 건강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전보다는 나아진 상태로 한 달 전에 저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어떤 사람이 "Best Part 가사는 멘탈 건강하고 사랑 많이 받은 남자가 쓴 곡 같다. 첫 가사를 봐라, 내일이 없길 바라면서 눈을 감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라고 쓴 글을 보고 나서야 맞다, 이 노래의 가사가 그랬지, 하고 깨달았다. 옛날의 나였다면 그게 불편해 이 노래를 잘 못 들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건강하게 오늘을 사랑하며 산다면 그만큼 좋은 게 없다는 생각을 한다. 매 순간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고 지금이 내 인생의 최고의 순간이라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또 그런 삶을 보고 영감을 받고 내 삶을 꾸려갈 수 있는 힘을 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인가.


 얼마 전에는 이 노래를 부른 데이식스의 멤버가 콘서트에서 "앞으로 4년, 40년, 아니 400년... 400년 후에는 우리가 없을 테니 하늘나라에서", 정확한 워딩은 기억이 안 나지만 하여튼 이런 맥락으로 말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 말을 듣고 매 해 생일을 맞거나 신년을 맞을 때가 아니면 잘 실감하지 않는, 우리가 매일매일 나이 먹어간다는, 살아가기보다는 죽어간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우리가 필멸의 존재라는 것. 삶은 어떻게 흘러갈지도,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는 것. 지금이 영원 같아도 필멸자에게 영원이란 결국 없다는 것.  

 그러나 영원이란 없어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아끼고 지금 이 순간과, 이 순간에 함께 하는 사람들에 집중하면 된다. 매 순간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야 비로소 지금 이 순간이 내 삶의 Best part라고 말할 수 있을 테니, 삶의 순간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한 진심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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