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0
'아빠 그럼 언제 와?'
멀리 출장을 가는 내게 딸아이가 물었다.
'9월 11일?'
'그래? 그럼 다음다음 주인가?'
'아니, 다음다음다음 수요일'
'아니 왜 이렇게 오랫동안 있어?'
이렇게 시작된 딸아이와의 아침 대화는, 그래서 왜 회사에서 아빠만 출장을 가느냐, 다른 사람들은 왜 안 가느냐 이런 것들을 시시콜콜 묻기 시작한다.
아빠 회사 다른 사람들도 다들 출장을 갔거나 바쁘거나 각자의 할 일이 있고, 이 일은 아빠가 가서 해야 하는 일이기에 가야 한다고 꽤 여러 번 설명한 이야기를 다시 한번 설명해 줬다.
올해랑 작년 어린이날에는 계속 미국 출장 중이어서 함께 하지 못 했고, 심지어 5월 1일 노동자의 날에 맞추어했던 아이들 학교 공개 수업도 2년째 놓쳤다.
마저 짐을 정리하고 빠뜨린 짐들을 모두 챙겼다.
부칠 짐과 메고 갈 짐, 비행기 안에서 가방에서 넣다 꺼냈다하기 귀찮은 물품들은 따로 작은 가방에 넣었다.
비행기 안에서 비행동안 쓸 물품들은, 헤드폰, 충전기, 충전 배터리, 작은 책 한 권, 펜, 여권, 신용카드 정도였다. 거기에 입이 텁텁할 때 먹을 민트와 인공눈물, 마스크와 마스크팩 하나, 소독용 물티슈도 하나 들어있다. 이래저래 조금씩 챙기다 보니 많아져서 도라에몽의 주머니 같은 느낌이다. 그래도 자꾸 짐칸에서 무얼 꺼내는 일은 번거로운 일이라 이렇게 따로 챙겨놓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짐을 싸고 나자 점심을 먹고 가야겠는데, 무얼 먹을지 고민이다. 아침에 장을 보러 갔다 오자는 아내의 제안에 짐을 마저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고 거절했다. 냉장고에도 아직 먹을 것이 좀 있을 것 같다.
내가 사다 놓은 야채들 중 아내가 왠지 나 있는 동안 요리 재료료 쓰지 않을 만한 재료들을 꺼내어 요리를 해본다. 지난번 감자탕을 끓일 때 쓰려고 사다 놓은 깻잎순이 보인다. 자투리 야채들도 하나씩 꺼내 모아보니, 양배추, 감자, 대파, 양파 등이 보였다. 모두 채 썰어 양푼에 넣어 부침가루를 넣고 소고기 다시다 반스푼 넣고 나와 요리하는 것을 즐기는 둘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둘째는 야채 부침 반죽을 섞고, 나는 옆에서 깻잎순을 손질해서 뜨거운 물에 데쳤다. 데친 깻잎 순을 찬물에 헹구어 순으로 꼭 짠 이후 마늘 다진 것, 간장, 들기름, 소금 등을 넣고 무쳐내어 나물 무침을 만들었다.
야채 전 반죽을 섞으면서 신이 난 둘째는 내게 더 도와줄 것은 없냐며 물었다.
일단 완성된 깻잎순 나물 무침 맛을 보여줬다. 야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둘째지만 요리를 직접 하면서 맛을 보는 것을 좋아해서인가 흔쾌히 나물 무침을 맛보더니 맛있다며 눈을 번쩍 뜬다.
야채 전을 부쳐낼 동안 야채 전을 찍어먹을 양념간장을 좀 만들어 달라고 둘째에게 부탁했다. 신이 난 둘째는 간장 종지에 간장을 살짝 붓더니 식초와 꿀을 살짝 넣고 젓더니, 간장을 좀 더 넣어야겠다고 저었다. 완성된 양념간장을 맛보니 정말 맛있다며 나 보고도 먹어보란다. 야채 전과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칭찬을 했다.
의기양양해진 둘째는 또 도와줄 것이 없냐며 물었다. 일단은 야채 전을 부쳐내는 것은 뜨겁고 오래 걸리니 아빠가 하겠다고 하자 그럼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이야기 하라며 본인은 책을 읽고 있겠다며 방으로 들어갔다.
냉장고에 있던 김치찜과, 자투리 야채로 둘째와 합작(?)해서 만든 야채 전, 그리고 깻잎순 무침까지 함께 하자 꽤나 근사한 한상이 되었다. 당분간 제대로 된 한식을 잘 못 먹을 생각을 하니 너무나도 귀한 한상이라고 느껴졌다.
외국에 나가도 한식을 먹지만 메인 음식은 그럭저럭 비슷한 맛이 드는데 반찬 종류가 너무 별로인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도 그런 식당들이 있지만 예를 들어 반찬을 너무 많이 먹지 않도록 방지하기 위함인지, 양념이 너무 달콤하면서도 짠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야채로 된 반찬을 실컷 먹고 싶어도 너무 짜거나 달아 양껏 먹는 데는 제한이 있다. 야채 전 같은 경우도 밀가루가 너무 많아 야채보다도 밀가루만 너무 많이 먹게 된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 만들게 된 심심한 나물무침과 야채비중이 압도적으로 많은 야채 전은 출장 중에 그리워할 훌륭한 한 상이 된 것이다.
미국 출장을 가면 육류와 밀가루를 많이 먹게 되어서 그런지 소화가 안될 때가 많다. 그럴 때는 마트에 가서 푸룬 말린 것을 한 봉지 사서 먹고는 한다. 야채를 많이 먹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 어찌 됐든 냉장고의 자투리 재료들도 소진하고, 당분간 못 먹을 한식 반찬을 양껏 먹고 나니 이제 공항으로 떠날 시간이 되었다.
택시를 타고 가려는데 아내와 아이들이 공항까지 데려다주고 배웅을 나온단다 (물론 공항까지 가는 운전은 내가 하지만).
짐을 부치고 환전을 하고, 아이들과 원래 공차 버블티를 하나씩 마시기로 했는데, 공항에 공차가 출국장 안으로 들어가야 있다. 편의점에서 아이들 먹을 과자를 사주고 나는 피로회복제 하나를 사서 마셨다.
혼자 출국장에 들어가기 전, 아이들과 아내와 함께 사진도 찍고 안아주고 뽀뽀도 하며 당분간 떨어져 있을 인사를 했다.
생각보다 출국 수속도 빨리 끝나 탑승까지 시간 여유가 좀 있었다.
인천 공항 2 터미널 출국장에는 활주로를 바라보며 쉴 수 있는 편안한 의자가 있는 공간이 있다. 자리를 잡고 앉아 노트북을 펼친다.
이번 출장길은 혼자인 만큼 글로서 기록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남긴다.
혼자 출장길은 참 오랜만이다. 마지막으로 혼자 출장을 갔던 것은 2019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산 공항에서 인천으로 갔다가, 인천에서 프랑스 파리 샤를드골 공항에서 내려 루마니아 부쿠레슈티까지 가는 험난한 여정이었다. 불과 1996년까지 공산주의 국가였다는 루마니아 공항에 한 밤 중에 내리자 정말 스산한 느낌이 들었다. 공항 조명은 어두웠고, 공항 밖은 한산했다. 한 국가의 수도 공항의 느낌은 아니었다.
택시를 타고 나치 문양의 그라피티가 있는 밤거리를 지나 숙소까지의 길은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하지만 기억나는 것은 혼자 떠났던 출장길은 그만큼 나 스스로가 느끼는 감정이나 느낌에 굉장히 집중하게 되고, 기억에 오랫동안 남는다는 것이었다.
이번 출장 길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많은 일들이 있을 테고, 또 새로운 기회들로 이어지겠지.
비행기에서 심심할 때 읽을 웹툰을 골라서 임시 저장을 해둬야겠다. 불법이 아니라 어플에서 48시간 동안만 임시로 저장을 할 수 있는데, 비행시간 동안 꽤 긴 웹툰을 정주행 할 수 있어서 애용하는 기능이다. 유튜브 오프라인 영상 저장도 좀 해두고, 장시간 비행시간을 대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