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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로 Oct 13. 2019

80세 알바생

21살 알바생과 80세 알바생의 어느 여름

스물 하나,

청춘의 호기로움과 유약한 혼란스러움.

간극 큰 감정들이 철없는 마음에 공존했던 시절다.


여름 방학, 나는 코엑스에서  반지의 제왕 어드벤처 컨셉 '고스트 판타지'라는 공연팀 아르바이트를

다. 두 달 내내  틈 없이 엘프와 귀신을

넘나드는 1인 2역의 신들린(?) 역할을 맡았다.

피 칠한 소복만 입고 하루에도 수만 명씩 들어오는 관람객다니며 노오오력의 불꽃 열연을 했었는데

관련 회사의 사기와 하청 받은 공연 회사의 부도로

나를 포함 수십 명의 배우들과 씬 많은 스텝들이

두 달치 페이를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일부 배우들은 공연 세트장을 부셔가며 분풀이를 했고

수많은 사람들의 고성이 오갔던 마지막 퇴근길

가방에는 귀신 소복이랑 엘프 옷 쭈뼛 나와 있었다. 

(드워프의 치는 왜 가져왔지..?)

배신감에 쉴 새 없 눈물이 났다.

'아.. 어쩌지... '

 2학기 등록금이 펑크가 났다.


할머니는 매가리 없는 눈으로 누워있는 내게

밖에서 뭔 일 있냐고 물었다.

" 밥 안 먹을 거야?

말 안 하면 귀신도 몰라~어여 말해봐"

'헉... 귀.. 신.... '

"할미 나  내버려 둬.. 나가라고!!!"

속상해 죽겠는데 설명을 해도 잘 못 알아들을 거라

'아르바이트했는데 사장이 망해서 도망갔다'

대충 쏘아 뱉으며 문을 쾅 닫았다.


며칠 뒤

예민하게 걸어 잠근 내 방 문 앞에 무언가 놓인다.
축축해진 랩에 쌓인 식어빠진 볶음밥 한 그릇.


느 날에는 잠에 취해 비몽사몽 을 열면
퉁퉁 불어버린 자장면 한 그릇.

'에? 이게 뭐야...'

올드보이 영화의 군만두 씬이 떠올랐다.


이때 내가 살았던 다가구  지하

꽤 큰 미싱 공장이 있었는데 할머니가 며칠 전부터  

5~6시간씩 의류 시게(‘마무리’란 일본어)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단다. 남들보다 적은 시급이지만 시력이 좋고 야무진  가진 할머니라서 

80살의 나이에 바생이 되었다.

공장 사장님이 끼니때 중국집에서 자장면이나

볶음밥을 시켜할머니는 그걸 드시지 않고

집으로 가지고 올라와 손녀딸을 주겠다고 

방문 앞에 슬며시 놓고 내려갔던 것이었다.

길고양이 밥 주듯이.
 
해가 중천에서야 잠이 깨도 시름시름 돌아다니

도통 밥 통 한 번 열지 않는 입 짧은 녀에게

 특별  먹이겠다고.


그리고 며칠 뒤 녁,

현관문 소리가 방 문 앞에 무언가 놓인다

"할미~나 이제 안 먹는다고 했지? 갖고 오지 마. 절대~"

기력을 찾은 내가 씹으며 게임을 하다

꿍얼 꿍얼거린다.


너무나도 조용한 기척에 문을 빼꼼 열어 보니

할머니는 다시 또 일하러 내려가셨다.

'엥? 이게 뭐야?'


방 문 앞에는 장면도 볶음밥도 아닌

 봉투가 놓여 있었다.

' 무슨 고지서인가?'


두툼한 봉투 뒷 면 연필로 '4층 할머니'라고

적혀 있었고 열어보니 다 돈이다..

65만 원...

 귀신 산발한 머리로 고개를 푹 숙인 채

계속 봉투만 내려다보았다.


21살 손녀는 알바 사기를 당했는데

80세 할머니는 알바 봉급에,

같은 건물 사는 이의 어떠한 처지까지 더해

한 달치 월급을 미리 받아 왔다.

 

80세의 생이 벌어 온 첫 월급이

지금 내 손에 무나 무겁게 들려 있다.

심장이 뜨거워지고 코 끝이 시큰하더니

갑자기 심통 맞게 울화가 치밀었다.

성큼성큼 할머니 방으로 가서 창문을 홱 열었다.


4층 창문에서 할머니가 있을 아래층을 내려다보니

반지하 미싱 공장의 창살 그림자가 땅에 비친다.

귀신 산발한 머리가 4층 창문에 한참 매달렸다가

물방울 하나를 공중에서 뚝 떨어뜨린다.


참! 이날 하늘에는 할머니가 방 문 앞에 두고

기묘한 짜장 한 그릇이 떠 있었다. 

정말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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