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마살 엄마의 틈새여행
2주 전 일요일 저녁. 평소처럼 가족들과 삼겹살을 먹으러 나갔다. 비계가 많은 고기를 집어 들며 '이 시간에 이렇게까지 먹어도 되는 건가?'싶었다. 좁쌀만 한 죄책감에 시달리며, 입안 가득 상추쌈을 넣었다. 육즙을 느껴가며 촘촘하게 씹으면서. 집에 들어와 신발을 벗는 동시에 모두 비슷한 말을 내뱉었다.
"아, 잘 먹었다!"
"이렇게 자면 안 되는데... 너무 배부르다."
남편은 화장실로, 첫째는 핸드폰을 들고 방으로, 둘째는 벗은 양말을 들고 세탁기를 향해 사라졌다. 나는 싱크대로 향했다. 거품으로 손 씻고 티포트에 물을 채웠다. 물이 끓는 동안 차판을 꺼냈다. 눈높이 선반에서 자사호, 숙우, 찻잔 네 개를 챙겼다. 그리고 보이차가 들어있는 차 통을 열다가 멈췄다.
"이게 다라고?"
올해 4월, 제주도에서 사 온 보이차였다. 아껴 마신다고 했는데 이렇게 빨리 사라질 줄이야. 식탁에 둘러앉아 네 명이서 차를 마셨다. 천천히 한 모금, 두 모금. 마시는 잔마다 귀했다. 정리할 즈음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요즘 제주도 항공권 얼마 해?"
네이버 검색창에 출발지 대구, 도착지 제주를 입력했다. 내일 출발하는 항공권이 끝없이 펼쳐졌다. 1만 원대부터 8만 원대까지 다양했다. 스크롤을 아래로 내렸다. 내가 갈 수 있는 시간대인 오후 5시.
"35,000원이라고? 대한항공인데?"
항공사 앱을 열어 같은 조건으로 검색을 했다. 같은 금액이었다. 옆에 앉은 아이들에게 물었다.
“엄마랑 제주도 갈래?”
“언제?”
“이번 주는 일정 다 찼으니까 내일 밖에 안 돼. 오후에 가서 이틀 뒤 오전에 오는 거.”
“제주도 가서 뭐 할 건데?”
“차밭 가지.”
첫째는 단호하게 안 간다고 했다.
둘째가 물었다.
"그럼 학교 안 가도 돼?"
"가정 체험학습으로 된다고 하면 되지 않을까?"
“앗싸! 그럼 가야지!”
남편에게는 절차상 물었다. 이미 다 정한 상태였지만.
"그래도 되지."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결제 버튼을 눌렀다. 돌아오는 표도 비슷한 금액이었다. 왕복 운임으로 14만 원 지불 완료. 렌터카 운임도 3만 5천 원.
10월에는 유난히 길었던 추석 연휴가 있었다. 덕분에 인도 다즐링도 다녀오고 가족들과 싱가포르 여행도 다녀왔다. 바쁘기 그지없었던 10월과 11월. 디지털 노마드 처럼 여행지에서도 일해야 했지만 틈만 나면 어딘가로 떠났다.
11월 초 어느 날, 아는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언니 이제 여행 다 끝났어? 올해 더 안 가?”
“못 가… 힘들어서 못 가… 노는 것도 쉽지 않고 일 때문에 놀아도 노는 게 아니더라.”
그렇게 말해놓고 일주일도 안 돼 제주도로 떠났다. 우리 집에서 차로 20분만 나가도 좋은 보이차를 파는 곳이 있는데 굳이? 왜? 제주도를 고집했을까. 가까운 곳에서도 살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은 걸까.
<틈만 나면>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이 있다. 내용은 모르지만 제목만으로도 내가 겹쳤다.
바쁜 와중에도 ‘틈’만 나면 이동하는 나.
지난 금요일에는 서울에 있는 중학교 동창들을 만나고 왔다. 멤버 중 나만 대구에 살다 보니 내가 움직인 거.
그 주 수요일엔 창녕에도 다녀왔다. 전달할 물건이 있어서 급하게. 그것도 10분 머물러.
이번 주말에 또 서울에 간다. 여름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비즈니스 모임 연말 참석차.
바쁘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틈만 나면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역마살 탓일까, 정서 탓일까, 무슨 탓일까?
피곤하긴 하지만, 갈 곳이 있어 좋다. 갈 수 있는 것도 좋다. 이렇게 다닐 힘, 여유가 있는 것도.
내년 이맘때에도 틈만 나면 어디든 떠나 있겠지. 그럴 내 모습을 상상하니 벌써부터 웃음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