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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믈리연 Jun 18. 2024

해야만 하는 이유를 찾아서


어제 오전 5시 10분. 알람이 울렸다. 잠든 지 다섯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그냥 가지 말까? 아직 몸이 무거우니까. 이틀 동안 여섯 시간 동안 운전했으니까. 여독이 덜 풀렸으니까.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온갖 이유를 만들어 머릿속을 채웠다. 다시 잠에 빠져들려고 할 즈음, 이틀 동안 먹은 음식이 떠올랐다. 멍게, 해삼, 낙지탕탕이, 돔, 매운탕, 과자, 마른 오징어, 버터구이 오징어, 새우깡, 나초,  크림이 잔뜩 묻은 케이크 그리고 맥주. 이 음식들이 아직도 뱃속에 있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맑아졌다. 계속 누워있으면 내장지방과 셀룰라이트에 축적되겠지. 그럼 안되는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데.




반사적으로 일어나 운동 가방을 주섬주섬 챙겨 현관 앞에 내놓았다. 마침, 50여 명의 회원들과 함께 읽고 있는 『레 미제라블』 5권의 한 부분도 요약해서 올려야 한다. 미리 준비한 자료에 추가로 필요한 정보를 검색하고 업로드해야 한다. 운동 다녀와서 해도 되지만, 혹시라도 일찍 일어나는 회원이 있을지 모르니 지금 올리자고 마음먹었다. 노트북을 켜니 5시 20분. 전날 준비한 글을 복사, 붙여넣기하고, Chat GPT로 추가로 검색하고 업로드까지 완료. 5시 45분. 차 키를 들고 나섰다.


예정된 주말 폭식에 대비하려고, 지난주 금요일은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저녁 수영 수업에 참여했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한 시간 넘게 유튜브를 보며 홈트레이닝을 했다.

내전근, 중둔근, 골반, 허리, 복근, 어깨 운동을 마치고 개운하게 잤는데 토요일에 폭삭 망가졌다. 밤 11시까지 먹고, 마셨던 여파가 크다.

해장한다며 일요일 오전부터 해장국을 먹고, 아포가토 커피, 꿀빵, 오징어 등 쉼 없이 먹고 먹었더니 수영장 물에 몸이 뜨질 않는다.

자유형 발차기를 하는데 발이 자꾸만 물속에 잠긴다. 힘 빼고 발길질해도 앞으로 나가는 속도가 더디다. 줄 맨 끝으로 갔다. 풍성한 모습으로 오고 싶지 않았는데, 풍성하다 못해 넘친다. 그래도 낑낑대며 다 해냈다. 그렇게라도 한 덕분에 최소 200칼로리는 태울 수 있었다.


씻고 나오니까 개운했다. 집에 다 와갈 즈음, 잠시 차를 세우고 떡집으로 들어갔다. 애들 아침으로 줄 겸 소포장 된 백설기 4개와 오메기 떡 2개를 샀다. 알람에 맞춰 일어나서 옷까지 다 입은 아이들은 식탁에 앉자마자 백설기와 우유로 배를 채운다. 육상을 하는 아들은 7시 40분까지 가야 한다며 서두른다. 둘째도 형아 갈 때 같이 가서 운동장에서 걷겠다며 나섰다. 둘을 태워주고 집에 오니 7시 55분. 다시 내 시간이다. 고요하다. 밀린 일, 할 일에 몰두한다. 10시가 지나니 잠이 온다. 안마의자에서 쉬고, 남은 일과를 마무리했다.




월, 화, 목, 금요일. 오전 수영을 다닌 지 3년 차에 접어들었다. 처음에는 3달만 할까 했는데, 3년 차에 접어들었다. 매일 아침, 가뿐하게 일어나는 건 아니다. 더 자고 싶은 날도 있고, 날씨 핑계를 대며 가지 않는 날도 있다. 가기 싫은 날은 온갖 핑계로 가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만들며 합리화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머릿속에 먹은 음식을 청사진처럼 띄웠을 뿐인데, 감정 없는 사람처럼 이불을 박차고 나왔다. 

생각의 차이가 변화를 이끈다. 안 가도 되는 이유만을 찾을 땐, 그와 연관된 생각에 갇혔었다.

그러나 가야 하는 이유를 찾는 순간, 머리와 몸의 반응이 달랐다. 왜 여태 이런 생각을 못 했을까. 이것도 발상의 전환인 것을.

앞으로도 이런 날이 온다면, 이와 비슷한 순간이 온다면,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보다 해야만 하는 이유를 찾기로 결심했다.

오늘 오전에도 어김없이 알람 소리에 맞춰 일어났다. 다섯 시간도 못 잤지만, 어젯밤에 먹은 음식이 나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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