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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우 Feb 29. 2024

당신이 어느 날 찾아와 마침내 얼굴을 보여줄 때

서시

고백한다.

퇴근길마다 터널을 지나며 몇 번이고 울었다. 분노, 억울함, 슬픔, 회한, 어이없음, 기가 막힘, 우울, 갑갑, 노답, 끝이 없음, 한숨. 멍. 이 모든 것에 대한 울음이었다. 퇴근하는데 왜 눈물이 날까? 퇴근은 즐거운 것이 아니었던가? 아니, 퇴근길이 퇴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거리를 들고 공간과 공간만을 이동할 뿐이다. 게다가 내가 한 일은 기록에 남지 않는다. 초과근무수당을 받지도 않으며, 뭔 상을 받는 것도 아니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누구든 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걸 하는 게 누군가에게는 ‘나’만 아니면 되기 때문이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일. 퇴근 이후까지 늘상 이어지지만, 그 어디에도 남지 않아 지워져 있는 일. 그게 내 ‘일’이라는 게 슬펐다.



고백한다.

사실은 있지, 다른 사람들도 미웠는데 실은 그 누구보다 내가 가장 미웠다. 나는 왜 이 일을 택했을까, 인생은 디폴트가 고통이라지만, 다른 일을 하고서도 밥벌이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 나는 왜 이 일을 그토록 하고 싶어 했을까? 왜 다른 일은 꿈꾸지 않았을까, 도대체 왜. 그리고 나는 왜 이 일을 아직도 그만두지 못할까? 어쩌다 나는 왜 일밖에 없을까. 이놈의 자본주의 세상에서 이렇게 일을 많이 하면 어느 정도 것의 물질적 보상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부귀영화를 누리겠다는 것도 아니고. 나는 왜 이렇게 살까. 그러니까, 그럴 거면 관두라니까? 라는 말을 듣는 것도 싫었다. 다른 일 해도 돼, 라는 말도 싫다. 버튼만 누르면 바로 죽을 수 있는 버튼이 있다? 도대체 왜 안 눌러? 당장 누른다. 나는 왜 이 일을 이토록, 이렇게, 이렇게까지 애정하고 애증할까.



고백한다.

있잖아, 단 이틀 문화예술공연을 보여주는 일에, 사업에 맞춰 계획서를 만들어 신청하고, 예산을 교부받고, 학사운영과 교육과정에 일정을 짜고, 교부받은 예산을 확정하고, 예산에 맞춰 여러 공연업체들을 알아보고, 통화하고, 섭외하고, 예약하고, 확정하고. 현수막과 팜플렛 디자인을 구성하고, 공연 장소 등에 대해 여러 번 협의하고, 특별실 시간표에 맞춰 강당 사용에 양해를 구하고, 각 학년 및 학급에 재차 안내하고, 주차에 관해 협조하고, 당일 새벽에 방송 장비를 켜고, 마이크를 설치하며, 생수를 주문하여 옮기고, 의자와 바구니를 설치하고, 팜플렛 천이백 장과 연필 천이백 개를 각 학급별 개수에 맞춰 나누어 배부하고, 이 일을 하면서 나에게 그 어떤 보상도 아무것도 없었음을 고백한다.



게다가 이 일은 내가 맡은 방과후 업무 외 온갖 행정업무와 잡무들의 극히 아주 일부였음을. 보직교사수당 월 7만 원 더 받고 온갖 업무를 다 하면서 그 외에 어떤 경제적 보상도, 누구 하나 알아주는 사람도 없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업이니까. 나는 올 한 해 매 수업도 정말 열심히 했다고 고백한다. 수업은 교사에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일이니까. 그건 누가 뭐라 해도 교사로서 나의 프라이드니까. 그래서 수업 계획과 연구도 열심히 하고, 자료도 찾고, ppt도 만들고, 학습지도 만들고, 내가 나 스스로를 봤을 때 올해도 참 최선을 다 했다고. 그리고 그랬기 때문에 나는 올 한 해도 또 갈아 넣어졌다. 교사로서 나를 지키기 위해, 교사로서 나의 정체성을 잊지 않기 위해, 교사로서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또 너덜너덜하게 낡고 해지고 차오르고 쌓이며 병들었다고. 이 글에 다 차마 담을 수가 없는 것도, 말로도 다 할 수가 없음을. 그리고 이건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아니, 단 하나. 있었다.

공연날 아이들이 손에 하나씩 에그쉐이커를 들고서 덩실덩실 흔들흔들 좋아하던 장면 하나. 노래 부르고, 함성 지르고, 시끌벅적하게 즐거이 웃던 모습 하나. 저 머얼리서도 꾸벅 수줍게 인사하거나, 만날 때마다 꼬리 흔드는 강아지들처럼 세상 반갑게 인사하던 장면 하나, 수업이 너무 재밌다고, 왜 이렇게 선생님 수업은 맨날 일찍 끝나지? 라고 다 들리게 말하던 혼잣말들 하나. 선생님이 제 영원한 선생님이었으면 좋겠어요, 라는 말 하나. 선생님, 저 꿈이 선생님 같은 선생님이에요! 라는 말 하나, 느닷없이 포옹하고 매달리며 안기던 장면 하나. 훌쩍 키가 웃자란 청년 같은 소년이 다가와 선생님, 저 기억나세요? 묻던 장면 하나. 선생님이랑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계속 계속 만났으면 좋겠다는 말 하나. 그리고 그런 장면들이 모여 모여 눈덩이처럼 모여 세상 온통 하이얗게ㅡ 그거 하나, 면 됐다.

그러니까 마침내, 그게 올해의 또 유일한 보상임을 고백한다.


그러다 어느 날 한강의 서시를 읽고서 통곡하며 엉엉 울었다고.

그리고 그렇게 울고 나서야 두 손이 얹어졌음을 고백한다.

여기,

나의 뺨에,

얼룩진



서시

한강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 거야
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
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
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

당신, 가끔 당신을 느낀 적이 있었어
라고 말하게 될까
당신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당신과 언제나 함께였다는 것을 알겠어
라고,

아니, 말은 필요하지 않을 거야
당신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을 테니까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후회했는지
무엇을 돌이키려 헛되이 애쓰고
끝없이 집착했는지
매달리며
눈먼 걸인처럼 어루만지며
때로는
당신을 등지려고 했는지

그러니까
당신이 어느 날 찾아와
마침내 얼굴을 보여줄 때
그 윤곽의 사이 사이,
움푹 파인 눈두덩과 콧날의 능선을 따라
어리고
지워진 그늘과 빛을
오래 바라볼 거야
떨리는 두 손을 얹을 거야
거기,
당신의 뺨에,
얼룩진,




글 이호우  2023.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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