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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우 Mar 06. 2024

내가 하필 초등교사이기 때문이다

늘봄으로 학교현장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직업을 선택한 일이 이렇게나 '고통'을 줄 일인가. 한 때 초등학교교사를 꿈꾸었던 나에게 스스로 이토록 오래 손가락질을 하게 되었을 일인가. 교사로서, 교육기관에 종사하고 있는 노동자로서,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살면 편할 일이었는가.


터덜터덜 집에 와서 저녁 밥 숟갈을 뜨다 울었다.


이게 다 늘봄 때문이다. 방과후 때문이다.
아니, 내가 하필 초등교사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필 초등교사이기 때문이다. 내가 오랜 기간 동안 초등학교에서 일하기를 꿈꿔왔기 때문이고, 사범대학교에서 교육대학교를 가기 위해 수능을 다시 보고, 생계를 위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임용시험보고, 그렇게 어찌 저찌 초등학교교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운이 좋아 초등교사가 된 줄 알았는데, 그게 정말 운이 좋았던 일인가 되묻게 되기 때문이다.


하필, 또 초등교사 본연의 업무를 할 때는 적성에 맞았다. 그랬기에 행정업무가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할 때는 즐거웠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마음과 마음이 맞닿는 순간이 드는 '수업'행복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업을 더 열심히 하고, 아이들과 더 만나고, 함께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실제로 수행한 초등교사의 과업은 지나치게 과중된 업무로 눈앞에 있는 아이들을 지워버리게 하고, 열심히 최선을 다 해서 연구하고 싶은 수업을 주먹구구하도록 다. 수업연구를 할 시간에 수많은 잡무 행정업무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학교 현장의 시스템이 교사들이 그렇게 본연의 업무를 열심히 하지 못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병들거나 떠나거나 죽을 거 아니면, 교사들이 그렇게 해야 겨우 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수업 그까짓 거 대충 해도 돼, 행정업무 많이 해."

"아이들 학습지도?생활지도? 교무실까지 민원만 없으면 돼. 교사 더 뽑고 학급당 학생수 줄여줄 생각 없어. 대신 최대한 늦게까지 그냥 잘 데리고만 있어."

"학생들 하교하고 나서 수업 연구할 시간이 어딨어? 담임업무, 행정업무, 잡무 하기에도 바쁜데. 그거까지 하려면 집에 가서 해. 초과근무수당은 없어."


몇 년간 방과후학교 업무를 하면서도 그랬다. 자꾸만 생각을 했다. 내가 초등학교교사가 맞아? 나 그냥 수업을 부업으로 겸하는 일반행정공무원인데. 나 그냥 돈 안 받고 강사 관리하는 학원 원장인데.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무급으로 봉사하는 방과후업체대표가 난데? 방과후강사, 방과후수강생 보호자, 심지어 교원으로부터도 민원받이 콜센터 종사자네? 학교에서도 내내, 집에 와서도, 방학 중에방과후학교 업무를 미친 듯이 하고 있는 '초등교사가 아닌 내 옆'에 '한 때 초등교사를 꿈꿔왔던 내'가 자꾸만 스르륵 다가와 서서 물었다.


"너 지금 뭐 해?"

"지금 너가 하고 있는 일이 초등교사가 할 일이야?"

"초등교사 맞아? 교육 기관 노동자 맞아? 사람 맞아?"

"그렇게 몸을 갈아 넣어 일하면 다른 데서는 임금으로라도 받지. 넌 뭘로 보상받는 거야?"

"아니, 그러니까. 너 초등학교교사가 맞냐고."



아니, 그래서 늘봄이랑 내가 뭔 상관이냐고?
늘봄으로 학교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늘봄으로 인해 현재까지 학교 현장에서 새 학기 준비기간 동안 일어난 일들을 정리해 보자.


1. 교육부가 추진하는 2024년 늘봄학교 전면계획에 따라 '늘봄학교 지원 한시적 정원 외 기간제교사(교과전담)'를 1교당 1명 배정함 : 애초에 기간제 교사는 '교사'가 아닙니까? 기간제 교사가 하는 일이 결국 교사가 하는 일인데 늘봄 관련 과중된 행정업무를 또다시 교사가 하게 되는 일 아닙니까? 교사의 업무 경감을 하겠다는 교육부 어디 갔습니까?


2. 늘봄업무를 할 기간제교사 채용업무를 (교육부 또는 교육지원청이 직접 채용까지 해서 배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다 모두 떠넘김 : 현재까지는 보통 교감이 채용공고를 올림. 그러나 방과후강사, 예술강사, 스포츠강사, 배움터지킴이 채용업무도 교사가 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늘봄교사 채용도 교사가 할 확률이 높아짐.


3. 교육부청은 초등뿐 아니라 중등교원자격증 소지자(영어, 체육, 과학 등)까지 가능하다고 늘봄기간제 지원요건에 넣음. (늘봄 프로그램 운영 업무 추진 역량을 반영하고, 방학 기간에도 근무 가능 여부 확인 후 채용하라는 조건) : 늘봄이 뭔지 그 누구도 아무도 모르는 상태에서 도대체 늘봄 업무 추진역량 뭔 소리입니까?


4. 늘봄업무 과중(공문 붙임자료에 있던 아래 내용 참고)으로 주로 경력 없는 중등교원자격증 소지자가 지원 : 업무량이 어마무시하다. 늘봄업무 내용을 보니 방과후업무와 다를 바가 없으며, 심지어 포괄한다. 과연 이걸 한 사람이 몇 개월이나 할 수 있을까. 늘봄학교지원 기간제교사도 몇 개월에 한 번씩 바뀔 판 아닙니까? 늘봄학교 지원 기간제 교사가 할 일은 아래와 같다.

 <늘봄학교 지원 한시적 정원 외 기간제 교사 역할>
 늘봄 프로그램 운영 지원,  늘봄학교 관련 공문 접수 등 현안 대응 업무, 초1 맞춤형 프로그램 운영(강사 채용, 강사비 관련 처리, 프로그램 수요 조사, 만족도 조사, 정산 등) 전담, 아침‧저녁‧방과후학교연계형(틈새) 돌봄교실 운영 지원, 방과후학교 프로그램 운영 지원, 교육지원청 방과후․늘봄지원센터 소통 및 지원 업무, 지자체 연계 늘봄학교 관련 지역 돌봄 기관(시설) 협력 업무, 늘봄학교 신규 업무 및 민원 관리, 기타 학교장이 늘봄학교와 관련하여 지정하는 업무 등


5. 늘봄업무는 기간제교사에게 시켜야겠는데, 그렇다고 수업을 안 하게 할 수는 없어서 '전담교과 수업시수는 주당 10시간 내외에서 운영' 하도록 함 : 주당 10시간 내외라니 늘봄학교 행정업무 시키면서 업무가 많은 것은 알긴  알았나보다? 초등학교에서 행정업무가 가장 많은 교무부장, 연구부장도 20시간 내외는 한다. 비슷한 성격이 방과후학교 업무인데 초등담임교사를 겸하며 수업을 23~24시간씩 한다. 이게 주당, 말 그대로 일주일인데 한 학년도로 따지면 연간수업시수 차이가 엄청나다. 심지어 초등담임교사는 담임업무와 학년업무, 행정업무, 기타 여러 잡무를 겸하며 주당수업시수가 23~25시간에 이른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어디에도 주당 10시간만 수업하는 '교사'가 어디 있습니까?


6. 늘봄학교 지원 한시적 정원 외 기간제교사(교과전담)로 인해 갑자기 과학, 영어, 체육 등 전담교과 수업시수를 만듦. (최소 주당수업시수 10시간) 이로 인해 늘봄전담 기간제교사에게 전담시수를 주기 위해 학년별 전담시수를 재조정함. : 이미 짜놓은 학년 교육과정, 학급별 기본시간표, 전담시간표, 특별실 배정시간표 심지어 강사시간표까지 다 얽힘. 학년별 전담시수는 예민한 문제여서 또 내부분란. 갑자기 코로나19 시기 교육과정 수시로 변경하며 누더기로 바뀌고 수정수정수정수정수정 최종수정만 학기 내 몇 번씩 하던 악몽이 다시금 떠오름. 해당 업무 관련 담당 교사 죽어남.


7. 안 그래도 유휴공간 없고, 교육활동을 하기에도 공간이 부족한 학교에 늘봄실을 2개나 더 마련해야 해서 우당탕탕 부랴부랴 (다른 실들을 없애고) 만듦. : 좁은 교실에는 학생들은 30명 가까이 앉아있음. 특별실(체육관, 과학실, 어학실, 음악실 등) 사용이 꽉 차 있는 중에 늘봄기간제교사를 과학, 영어, 체육 등으로 채용한 경우 해당 수업을 '교실'에서 해야 함. 학생들이 과학실험수업을 아비규환처럼 과학실이 아닌 교실에서 함. 체육관을 두 세반이 함께 쓰며 심지어 방과후에는 서둘러 비켜줌. 게임이나 신체활동이 많은 영어교과도 어학실이 없어 교실 자리에 앉아서 진행함. 장구, 북 같은 악기를 음악실이 아닌 교실에서 돌려가며 사용. 이제 학생들은 정규수업시간도 '방과후'에 밀려, '늘봄'에 비켜줘야 할 판.


8. 늘봄업무 과중으로 주로 경력 없는 중등교원자격증 소지자가 지원했으므로 안 그래도 바쁜 해당 부서 보직교사가 붙어 업무를 하나부터 열까지 알려 줌. : 교육행정원격업무지원시스템, 나이스, 업무포털, 메신저 사용법, 문서기안, 품의, 강사채용방법, 강사시간표배정, 강사월별시수계산, 계산기 두드리며 강사월급품의, 만족도조사방법, 수요조사방법까지 모든 것을 a-z까지 알려줄 판.


9. 늘봄프로그램 요일별 강사 채용 (교감이 채용이 잘 안 되니) 교사 자원 받음 : 교감과 친분이 있거나, 다른 학교 교감이 배우자이거나, 교감이 불쌍해 보이거나 하는 교사들이  자원함. 자꾸 학교로 밀고 들어오는데 이런 식으로 '어떻게든 꾸역꾸역 해주니까' 방과후처럼 늘봄도 자리 잡는 수순. 그러니까 결국에 늘봄을 '교사'가 한다는 것은 다를 바가 없음.


10. 늘봄 기간제교사가 곧 늘봄 관련 모든 과중한 행정업무를 하게 됨 (늘봄전담사 없이 어쩌면 저녁 8시까지?) : 늘봄기간제교사는 가정도 없고 일상생활도 없고 아이도 없어야 할 판.


11. (아마도) 내년이나 내후년에는 한시적 정원 외 기간제 교사가 아니라 '늘봄업무'가 학교 내에서 교사끼리 업무분장해야 할 판 : 해당 업무를 맡은 교사는 결국 업무과중으로 수업과 아이들에게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늘봄업무를 맡은 교사는 수업을 적게 하거나 안 해도 될 것이다. 교사에게 수업이 중요하지 않으니까. 행정업무가 중요하니까(?)


늘봄업무를 맡은 교사는 훗날에는 어쩌면 담임교사도 하게 할 것이다. 지금 초등담임교사들이 맡은, 수많은 행정업무와 잡무들처럼. 


늘봄업무를 맡은 교사는 학습지도와 생활지도를 하며 아이들을 만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컴퓨터 앞에서 행정업무를 하며 아이들은 한 공간에 데리고만 있으면 되니까.


늘봄업무를 맡은 교사는 과중한 업무에 시달릴 것이다. 보호자들의 노동시간을 줄여 가정으로 돌려보낼 생각 없으니까. 늘봄업무를 맡은 교사는 가정도 없고, 아이도 없고, 사람 아닌 부품일 뿐이니까. 


늘봄업무를 맡고, 수업을 안 하며, 아이들을 데리고만 있고, 행정업무를 하는 사람도 교사일 것이다. 늘봄담당이 과중업무하며 꾸역꾸역 수업은 그냥 덤으로 가르칠 해당 학년 아이들은 뭔 죄인지?교육대학교, 사범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직이수과정의 필수학점이 늘봄이 될 것이다. 임용시험과 신규교사연수에서 늘봄업무추진역량을 것이다.


나중에는 방과후 돌봄까지 포괄한 늘봄 신규 업무를, 늘봄지원실장을 전임발령(그것도 큰 학교에만?)한다는 추진로드맵은 도입 처음부터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초등 중등 교원 자격 소지조건부터 아니 기간제 교사는 교사가 아닙니까?


늘봄지원실장, 늘봄실무직원도 따로 없이 교감, 해당 부서의 보직교사, 여러 교사, 심지어 현재 학교를 다니고 있는 아이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도록 하며 지금 학교에다 밀어쑤셔넣고 억지로 끼워맞추는 늘봄으로 24학년도 시작부터 안그래도 바쁜 학교 현장을 대혼란 누더기 공사판으로 만드는 게 개빡친다.




아, 잠시만. 잠시만요. 그러니까 교사가 수업을 안 해도 되는 거였어? 아, 교사의 주된 업무가 수업연구, 수업, 교육과정, 평가, 학습지도, 생활지도 등이 아니었어? 아니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뭐 다 하라는 거야?


뭐야,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거나, 병들어 죽거나, 교사 아닌 채로 겨우 살거나? 늘봄 업무 나만 아니면 되고, 나한테 직접 피해 주는 거 아니면, 스리슬쩍 눈 감으면, 학교가 엉망진창이고, 교육과정이 누더기고, 선배교사가 신규교사에게 한다는 말이 왜 하필 학교로 오셨어요, 열심히 하지 마세요고, 그러다 떠나면 자리에는 다른 부품처럼 다른 사람이 갈아 끼워 넣어지고? 아이들은 업무과중인 교실에서도 뒤로 밀리고,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할 보호자로부터 외면받고, 보호자가 노동할 시간 동안 학교수업이 끝난 후에도 저녁 8시까지 학교에 갇혀 있어야 하는데.


무엇보다 당사자인 아이들에게 물어는 봤나? 그러고 싶냐고?도대체 나라에 교육관은 어디 있으, 교사어디있는가. 또 교육이란 무엇입니까?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구입니까. 




그러니까 이호우 이 사람아, 내가 계속 말해왔잖은가?





이 나라에선
네가 하필 껍데기만 말로만 무늬만
초등교사이기 때문이야.






글  이호우   2024.3.5



"어른들도 근무가 끝난 퇴근시간 후 2,3시간 혹은 길면 6,7시간을 회사에 남아있도록 한다면 견딜 수 있을까. 연수나 동아리 활동이나 심지어 아무것도 하지말고 쉬고만 있으라 해도 모두들 고개를 내저을 것이다. 왜 이런 간단하면서도 상식적인 문제에 대해 질문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학교에 있도록 했을까.”

“너무 쉽게 아이들은 정책대상으로만 취급되고, 아이들 관점과 필요에 따라서가 아니라 부모를 포함한 어른과 사회정치적 필요에 따라 아동 관련 정책이 일방적으로 결정되어 왔다.”

https://www.educhang.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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