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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우 May 14. 2023

스승의 날을 없애자는 마음


단 한 번도 내가 누군가의 ‘스승’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신규교사 2년 차, 존경하는 옆 반 부장선생님께서 “교사는 그저 아이들에게서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에 바람처럼 잠시 스쳐가는 존재예요. 그러니 어떤 영향력을 끼치게 될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좋은 방향으로 변화를 주지 못하더라도, 엄청나게 대단히 무언가를 바꾸지 못해도 괜찮아요. 너무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요."라고 해주셨었다.


지금도 자주 어깨가 짓눌리고 머리가 아파지며 가슴이 조여질 때면 가끔 그 말을 생각해 본다.


스승이란 말은 너무 과하고 무겁다.

그저 나는 잠시 함께 하는 사람이다. 누군가 나를 '선생님'으로 진심으로 생각하고 불러주면 고마울 일, 훗날 생각했을 때 구체적이진 않아도 어렴풋이 '나름 괜찮았던 선생님' 정도로 기억해 준다면 조금 뿌듯할 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얼마 전, 지인이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스승의 날 선물로 뭘 줘야 할지 나에게 물어서 약간 너털웃음이 났다. 청탁금지법인 김영란법이 생긴 지 오래이며, 그 법이 있어서 정말 좋다. 간혹 상담이나 공개수업 때 보호자가 음료수조차도 가져오지 못하도록, 체험학습 때 받고 싶지도 않은 도시락 등을 받지 못하도록 하는 좋은 거절의 말이 된다. 단 한 번도 뭘 받고 싶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 없다.


음이 난 이유는 첫 번째로 스승의 날 선물로 뭘 받고 싶은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 적용되는 교사가 따로 있고, 적용되지 않는 교사가 따로 있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법이 적용되든 적용되지 않든 사회적 합의로서 서로 지킬 것은 지켜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 결정적으로 세 번째로 ‘스승의 날과 내가 뭔 상관이 있나’ 하는 본질적인 의문 때문이었다.


스승의 날과 내가 뭔 상관이 있나,

스승의 날과 교사들은 아무 상관이 없다. 이 시대에 대부분 교사들은 오히려 상관이 없고 싶다. 그저 조용히 무탈히 있는 듯 없는 듯 지나가고 싶은 것이다.


누군가는 안정적인 직장이라고 쉽게 이야기하고, 교육에 대해 쉽게 말을 얹고, 자주 도마 위의 고기처럼 쉽게 난도질하고, 누군가 자조하듯 말한 비호감 연예인처럼 욕받이가 되기 일쑤지만


언제라도 관두거나, 당장 관두고 싶거나, 내 의지가 아니더라도 관둠을 당할 수 있는 직종. 무슨 일이 생기면 교육부도 교육청도 관리자도 아무도 보호해주지 않는 백척간두의 삶. 늘 매년 매 순간 보호자든 학생이든 과중한 행정업무든 잡무든 하루하루 복불복같이 사는 교직생애.


어느 기사 제목 중 [다시 태어나면 안 한다는 교사]라는 게 있었는데, 초등교사가 정말 되고 싶어서 한 나조차도 이미 그렇게 된 지는 오래이다. 미쳤나, 이 직업을 또 하게. 다시 태어나면도 아니고 당장 내일이라도 생계와 상관없다면 안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번아웃은 오래고 이제 한 치 앞도 잘 안 보이는 이곳에서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빨리 관두는 교사들이 능력 있게 느껴진다.


혹시 초등교사를 하고 싶고 아이들 수업준비만 아주 즐겁게 집중해서 하고 싶다면, 당장이라도 교직을 때려쳐야 한다. 사교육으로 가든가. 시간강사를 하든가. 공부방을 차려도 꿈 실현가능하다. 무조건 교사만 아니면 된다. 언젠가 "제 꿈이 초등학교 교사였는데요, 의원면직을 해야 꿈이 실현됩니다."라고 내뱉었던 말은 진심이다.




교사도 사람이다. 그리고 한낱 노동자다.

스승의 날은 없애고 차라리 노동절에 쉬고 싶다.


헌재는 2022년 8월, 공무원은 국민 전체의 봉사자라며 공무원들을 노동절에 포함시키지 않았다고 판단했다는데,


봉사자 이전에 ‘노동자’이고

교사이기 전에 제발 ‘사람’이고 싶다.


20년째 동결 상태인 보직교사 수당 고작 월 7만원을 으며 각종 기피하는 행정업무 일을 덤터기 쓰고 일하는 공노비 노예가 더 이상 되고 싶지 않으며,

교직에 담임교사할 사람이 부족하다고 하면서도 20년간 (고작 2만원 인상되어) 한 달에 고작 13만원 더 받느니 담임교사를 안 하고 싶다.  십만 원을 더 줘도 안한다.


아니 자그마치 20년이다. 이게 말이 되는가?


봉사자인데 무려 안 줘야 할 봉급을 황송하게 받기라도 하니 일하는 것에 비해 턱도 없는 액수를 받아도 머리를 조아리며 그저 감사하면 되는 것인가? 세금으로 월급받는다 말과 방학무새와 일찍 퇴근한다는 타령은 하도 들어서 대꾸도 하기 싫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업에 대해 아주 쉽게 말을 해댄다. 정녕 임금을 주는 만큼 일을 시키고는 있는가? 스승은 언감생심이고, 도대체 교사란 무엇인가, 학교는 어떤 이고, 이 땅에 교육은 어디에 있나. 지금 이 시대에 이 사회에서 정말로 교사를 '교사로서' 존재하게 하고 '교사로서' 일하게 하고 있나?


그러니 그러니 굳이 갑자기 5월 15일이랍시고 스승이라고 불러주지 않아도 된다. 스승의 날 같은 게 있지 않아도 된다. 많은 교사들은 진심으로 스승의 날을 없애기를 원한다. 국민청원 게시판에 스승의 날 폐지를 청원한 적도 이미 오래전이다.


스승의 날을 없애자는 마음.

교사 스스로가 먼저 폐지해버리고 없애고싶은 마음.


그 마음에 대해 그저 고작 교사를 위함이 아니라

우리의 교육을 위해 

교사와 한 명 한 명 함께 하는 아이들을 위해

이 나라의 자라나는 미래와 희망, 꿈, 가능성들을 위해

아주 잠시, 한 줌이라도 생각해 주면 좋겠다.




글 이호우 2023.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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