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모 될 수 있을까

by 롸잇테리언

PART 2. 녹화와 방송 사이

하이라이트 ④ 우리, 부모 될 수 있을까






쩍- 쩍-


이제는 너무 낡아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자기들끼리 들러붙는 빨간 앨범을

나는 자주 들여다보았다.


그 앨범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시절부터,

또렷한 어느 날까지 전부 박제돼 있었다.


하얀 피부와 빨간 입술이 인상적인 젊은 아빠와,

긴 치마를 입고 한껏 멋을 낸 엄마.


지금의 나보다도 훨씬 어린 그들의 시간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멈추지 않고 흘렀다.


가겟방 벽에 기대 갓난아기를 안고

젖을 물리는 모습을 지나,

아장아장 걷는 아이의 손을

양쪽에서 잡고 서울랜드의 상징인

‘은색 구’ 앞에 서 있는 모습,


그리고 또다시 페이지를 넘기자

남자 아기를 등에 업은 모습이 나타났다.


잔디밭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게

가능했던 시절이었나.

유독 잔디밭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며

찍은 사진이 많았다.


날짜를 찾아보니 전부 일요일.


토요일까지 일하던 시절이었으니

유일한 쉼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집에서 엄마가 찍어준 사진들은

아주 일상적이지만 따뜻한 것이었다.


함께 도넛을 빚어 튀기고,

친구들과 케이크를 불고,

처음 산 피아노 앞에 앉아

함박웃음을 짓는 여섯 살의 나와

눈이 마주칠때면

이유없이 마음이

쿵 내려앉기도 했다.

페이지를 더 넘기자,

만삭인 엄마 앞에서

긴장한 표정을 짓는 남매가 있고

다음 페이지에는 보조개가 팬

갓난아기의 사진이 끼워져있다.

스물세 살에 결혼한 엄마는

스물넷에 나를 낳고,

스물다섯에 동생을 낳고,

서른이 넘어 막둥이를 낳았다.


그 사이 사과처럼 붉던 볼은

자식들이 한 입씩 베어 물어 푹 꺼졌다.


새벽같이 일터에 나가

먼지 들이마시며 일해도

살림살이는 거기서 거기.


신도시의 육아란 학원의 개수로

결정되는 면이 있어 우리는

피아노, 태권도, 수영 가방을

요일마다 바꿔가며 하루를 채웠다.


학원에 가져다줘야 하는 봉투가 늘어날수록

아빠의 어깨는 무거워졌을 것이다.


건설 현장에서

무거운 공구를 짊어지고 계단을 오를 때,

아빠는 누구의 얼굴을 떠올렸을까.

페이지를 넘길수록 가족사진에서

아빠, 엄마의 모습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내린천 계곡에서 물놀이하는

삼 남매의 모습을 끝으로

유년 시절에 ‘가족과 찍은 사진’은 마무리됐다.


나는 잠시, 부모가 된다는 건

렌즈 앞에 설 일이 없어진다는

뜻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애정 표현이 좀 서툴렀지만,

부모님은 마치 아이를 길러내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처럼 묵묵히 청춘을 바쳤다.


부모의 고된 책임감은

고스란히 아이에게 새겨진다.



동이 트기 전, 찬물에 밥을 대충 말아 먹고

현관문을 나서던 아빠의 발소리는

어린 마음을 퍽 시리게 했다.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해.


급식실에 취직해 바빠진 엄마는

전과 달리 살림을 꼼꼼하게 챙기지 못했다.


다 쓴 샴푸 통에 물을 넣고 흔들어

동생의 머리를 감겨주던 기억.


항상 살 하나씩이 부러져있던 우산들.


나는 나중에 어른이 되면

샴푸를 여러 개 사둬야지.


부모님의 희생을 알면서도

한편으로 더 사랑받고 싶었던 아이는

그렇게 어른이 됐다.


헷갈리기 시작했다.

우리 부모님보다

더 좋은 부모가 되고 싶다는 욕망과

그만큼도 하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마음을 팽팽하게 만들었다.


어느 쪽도 지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10년간 아무 결정도 하지 못했다.


일 때문에, 라는 막연한 변명으로

항상 보류 버튼을 누르기 바빴다.

남편이 중환자실에서

저체온 치료를 마치고 의식을 되찾은 날,

일반 병실로 올라오기 위해

처음으로 마주한 복도를 잊지 못한다.


무더운 여름날 아침,

다시 살아 돌아온 남편은

기관삽관을 한 채로 나를 보고

손으로 오케이 사인을 했다.


퍽 불편할 텐데,

어쩌면 가장 두려운 것은 본인일 텐데도

나를 안심시키려 노력했다.


남편으로 말할 것 같으면

아빠의 임종을 함께 지켜준 사람이다.

아빠 장례식장에서

하객들 신발을 정리하며 자리를 지켜주고,

무너진 우리 가족을 보듬어준 사람이다.


아이들에게 부족함 없는 아빠가 될 것이다.

남편이 가슴에 ICD를 삽입하고

불사조가 되어 돌아온 날.

나는 본격적인 행동에 돌입했다.


먼저, 집 근처 난임 병원에 전화했다.

평생 갈 일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병원을

문턱 닳도록 드나들 줄이야.


사람 일은 모르는 거라더니, 정말 그랬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 인생을 뒤흔든

두 번째 사건을 마주하게 될 줄도 몰랐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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