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시트에 없던 쌍둥이의 등장

by 롸잇테리언

PART 2. 녹화와 방송 사이

하이라이트 ⑤ 큐시트에 없던 쌍둥이의 등장






‘저출산 시대라며?’


난임 병원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대학병원에서도 느낀 적 없는 인구밀도와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클래식.


그리고 어딘가 긴장한 표정으로

핸드폰에만 집중하고 있는 사람들.


일반 병원과 다른 점이라면

겉으로 아픔이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것.


우리가 일상에서 수없이 마주쳤을 행인,

또는 직장 동료,

자주 가던 카페의 사장일 것 같은

얼굴들이 그곳에 모여 있었다.


어디가 아프세요? 라는 말도

필요 없는 곳.

우린 모두 같은 목적으로 이곳에 왔다.


난임 병원은 ‘병원’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건강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성의 건강을 내어주고

아이를 얻기 위해 찾는 공간이다.


검진 후, 첫 시험관을 시도하면서

나와 남편은 주사실이라는 곳에 들어가

자가 주사 놓는 법을 배웠다.


호르몬을 과자극시켜

난포를 많이 만들기 위한 주사로,

종류도 천차만별이고

사람마다 잘 맞는 약도 다르다고 했다.


나는 처음이라 가장 일반적으로 쓰는

약제를 처방받았다.


인슐린 주사 비슷하게

펜처럼 생긴 주사기였다.


배에 알코올 솜을 문지르니 겁이 덜컥 나,

남편에게 주사를 부탁했다.

약간의 모서리 공포증이 있어

뾰족한 물체를 싫어해 내린 결정이었다.


과배란을 유도하는 주사는

모든 주사 중에 가장 난도가 낮고,

고통이 적은 주사였다는 것은

‘돌주사’로 불리는 엉덩이 주사와

‘멍주사’로 불리는

악명 높은 크렉산을 접하고 나서야

알게 됐다.


(돌 주사는 착상을 돕는 주사인데,

두 달 가까이 맞다 보니

엉덩이 괴사가 일어났다.

4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게 놀라울 따름인데,

이젠 영광의 상처쯤으로 여기고 있다.

멍 주사는 출산하기 일주일 전까지

매일 배에 맞아야 했는데,

만삭의 배에 놓을 때는

남편도 식은땀이 절로 났을 것이다.)



시험관을 하겠다고 결정했을 뿐인데,

갑자기 먹어야 할 약이 생겼다.


정상범위에 있던 갑상샘 수치도

임신을 위해 좀 더 조절하자고 했다.


주사는 보냉백에 담아 주었는데,

1층 카페에서 본 청록색 가방들의 출처가

여기였다는 사실에 괜히 숙연해졌다.


이제 나도 그들처럼 청록색 가방을 들고

여길 오가게 되겠구나.

기약 없는 기다림을 시작하겠구나.

두 다리를 얻기 위해 목소리를 내어준

인어공주처럼,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이유로

아이를 얻기 위해 시간 맞춰 약을 먹고,

배에 주사를 찔렀다.


하지만, 비장한 각오로 덤벼도

묘약이 모두에게

단번에 효험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누구는 한 번에, 누구는 몇 년간,

누군가는 셀 수 없는 밤들을

이렇게 보내야 할 터였다.



그간 시험관 시술 과정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거나,

무용담처럼 기록하지 않은 이유는 단순하다.

나는 운이 좋은 자였기 때문이다.


나는 두 번의 채취,

두 번의 이식 후 졸업장을 받았다.

병원 대기실에서 진행되는

졸업식(?)에서는 나와 남편이

긴 초음파 사진을 들고 상기된 표정으로 찍은

폴라로이드와 아기용품을 선물로 받았다.


병원을 찾은 이들이 꿈꾸는 해피엔딩.


나는 인생이 계획대로 착착 흘러간다는

안도감과 묘한 성취감,

다가올 날들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기대로 뒤엉킨 채, 두 아이의 엄마가 됐다.


그렇다. 두 아이.

내 인생에 출산은 없다고 외치던

내가 쌍둥이 엄마가 된 것이다.


딱 한 명,

우리를 닮은 한 명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축하합니다. 임신이네요.”

“감사합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던 그 순간,


“아기집이 두 개네요. 쌍둥이입니다.”


눈물이 쏙 들어간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구나, 싶었다.


좋고 싫음이 아니라 그저 당황해서

그날 진료실을 어떻게 걸어 나왔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내 손에 들려있던,

길고 긴 초음파 사진을

가방에 숨긴 채

병원 밖으로 나와 하늘을 올려다봤다.


내가 과연,

하나도 아닌

두 생명을 품고 잘 길러낼 수 있을까.




햇볕이 쨍쨍 내리쬐던,

후덥지근한, 초여름의 어느 날.


나는 큐시트에 없던 쌍둥이를 만났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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