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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나현 Jun 04. 2020

마늘 큐브 볶음밥

친한 친구의 자취집에 놀러 갔을 때, 친구는 냉동 볶음밥을 해준다고 했다.

냉동실에서 냉동 볶음밥 봉지를 꺼내더니 옆에 있던 반찬통에서 노란 무엇인가를 꺼냈다.

그건 마늘 다진 것을 작은 네모 모양으로 잘라서 하나씩 얼려 놓은 것이었다.

그런 걸 처음 봐서 이게 도대체 뭐냐고, 이런 걸 파는 거냐고 물었더니 친구는 아무 표정 변화도 없이 엄마가 준 거라고 했다.

순간

"아니, 너는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거야..?"

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제야 친구는 나를 의아한 눈으로 쳐다봤다. 얘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라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 표정을 보고서야 정신이 차려졌다.

‘아차차... 다들 이런 삶을 산다고 했지.’



언니가 말해준 것이다.

언니의 시어머니는 일하랴 살림하랴 바쁜 와중에도 쉬는 날에는 무조건 아들과 손주 며느리들에게 줄 음식, 양념, 김치를 끊임없이 만든다고 했다. 그뿐이 아니라 제철 과일이나 한번 맛있게 먹었던 음식들은 일단 사놓고 자식들을 기다리신다고 했다.

언니도 처음에는 놀랐지만 이제는 그냥 '아, 이런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하고 그러려니 한다고 했다.

내가 언니네 집에 며칠 다니러 갔을 때에도 시댁에 다녀온 언니의 양손엔 음식들이 그득그득했다.

경탄스러운 눈으로 형부를 쳐다보면서

"와, 형부 진짜 좋겠다. 부러워요."

라고 말했을 때 형부의 표정과 마늘 큐브 볶음밥을 만들어 준 친구의 표정은 똑같았다.

이게 뭐가 부럽다는 거지? 새삼스럽게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다.

어머니의 노고와 정성은 그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일이지만 나는 내가 살고 있던 세계가 흔들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저런 삶을 사는 사람도 있단 말이지?라는 생경한 느낌에 더불어 뭉근하게 피어오르는 부러움의 감정까지.



그날 먹은 냉동 볶음밥은 완벽한 맛이었다.

내가 전자레인지에 4분 30초를 돌려서 먹었을 때처럼 기름이 뒤덮인 축축한 맛이 아니었다.

단지 냉동 볶음밥 한 봉지 뒤에도 엄마의 섬세한 정성이 들어가면 그토록 훌륭한 맛이 나는 줄 모르고 살았던 지난 삶이 더 축축하게 느껴졌다.


나를 위해 얼려 놓은 마늘 큐브는 세상 어느 냉동실에도 없을 테지만 축축한 볶음밥을 다시 먹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날 일기장에 써 놨다.

'나를 위한 마늘 큐브를 얼려 둘 것..!!’


나를 돌보고 먹이는 일에 항상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숭숭 뚫린 구멍이 많다.

빈자리로 인해 생긴 구멍을 메우려면 앞으로도 고단한 일들을 겪어야겠지만 결코 게을리해서는 안 될 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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