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슈즈를 벗어던진 이사도라 처럼
19세기 말, 클래식 발레만이 무용예술로써 인정받던 당시 맨발에 가벼운 원피스 차림으로 춤을 추던 이사도라 던컨의 등장은 가히 신선한 충격이었다. 토슈즈와 튀튀를 벗어던진 그녀의 혁명적인 시도는 예술에 있어 진보적이지 않았던 그녀의 고국 미국이 아닌 유럽으로부터 열광적인 지지를 얻었고 그로써 던컨의 본격적인 예술 활동은 유럽에서 꽃피우게 되었다. 발레의 기본과 테크닉, 인위적이고 기교적인 동작들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생각, 감성을 음악에 맞춰 자유롭게 표현한 맨발의 이사도라는 독일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 그녀의 자유로운 춤을 퍼뜨렸고, 그것은 이후 현대무용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시조가 되었다.
이사도라의 맨발의 춤은 무용의 역사와 관행을 거부한 것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신체와 정신을 속박하는제도와 통제로부터 자유로워 진 것을 의미했다. 토슈즈와 튀튀를 입고 판타지 세계의 요정이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닌, 살아있는 인간으로서 자신의 몸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 정규 무용교육과정을 밟지 않았던 그녀가 무용의 역사를 새로 쓰게 된 이유이다.
토슈즈와 튀튀를 입은 요정. 발레리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일 것이다. 발가락 부분이 나무로 되어 있는 토슈즈는 발레리나가 마치 요정과 같은 신비한 대상이 되어 발끝으로 하늘을 향해 곧고 가볍게 설 수 있도록 지지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발레리나 강수진의 상처투성이 발을 담은 사진 한 컷을 통해 알 수 있듯, 토슈즈는 매우 고통스러운 통증을 준다. 오직 발끝으로 온 몸을 지탱해야되는 만큼, 그 딱딱한 신발 안의 작은 발가락은 늘 상처를 입고 발톱은 수시로 빠지기도 한다. 중력이 느껴지지 않는 가볍고 아름다운 몸짓을 위해 짓눌리는 발의 통증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한편 코르셋과 같이 허리부분을 잘록하게 감싼 상의에 스커트가 달린 튀튀는 발레리나의 몸을 그대로 드러낸다. 튀튀를 입은 가볍고 가녀린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발레리나는 평생 몸매 관리를 해야 하는데, 대부분 어렸을 때부터 발레를 배우며 10대 때부터 지속되는 식이 조절은 올바른 성장을 방해하고만성적인 섭식 장애를 유발하기도 한다.
토쥬스를 신고 발끝으로 서는 동작 뿐 만 아니라 한 쪽 다리를 옆으로 높게 들어 수직으로 일직선을 만드는 동작이나 뒤쪽으로 들어 발끝이 머리에 닿게하는 동작 등 대표적인 발레 테크닉을 비롯해 양 발 끝을 바깥방향으로 벌려 ‘턴 아웃(Turn-out)’하는 자세, 목을 일자로 펴고 엉덩이를 안쪽으로 밀어 넣어 척추를 일자로 만드는 자세 등 발레 훈련을 위해 기본으로 수행되어야 하는 자세들은 모두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위해 발레리나가 감수해야하는, 어떻게보면 그들의 몸을 통제하는 장치들이기도 하다. 이러한 동작들은 발레리나를 마치 동화 속의 신비한 대상으로 형상화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몸을 망가뜨리기도 하기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수의 발레리나들이 40대에 들어서면 고관절치환술을 비롯해 여러 시술 및 수술을 받고, 일자목으로 인한 만성 통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모든 발레리나가 이사도라처럼 토슈즈를 벗어던져야 함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에도 클래식 발레는 여전히 예술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지속되고 있고, 엄청난 기교를 선보이는 발레리나와 발레리노들은 말 그대로 인간의 한계를 넘나들어 마치 허구의 존재인 듯 한 놀라움과 감동을 준다. 이러한 완벽한 발레동작들을 더욱 돋보이게 할수 있도록 돕는 토슈즈와 그것을 위해 희생하는 발레리나들의 노력은 존경받을 만 하다. 다만 이사도라의 정신을 기반으로 토슈즈와 튀튀를 여성의 몸을제한하고 통제하는 장치로써 확장해, 비판적 통찰로 나아갈 필요도 있을 것이다. 특히 대중에게 주로 소개되는 무용이 여전히 발레인 만큼, 가볍고 유연한, 마치 요정과 같은 몸이 이상적인 이미지로 소비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 같다.
규정된 아름다움을 거부하고 나 자신이 되기 위해 토슈즈를 벗어던진 이사도라. 한 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그녀의 가치관은 무용수 뿐 만 아니라 오늘날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강요받는 수많은 여성들에게 영감을 준다.
(이글은 문화월간지 쿨투라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2019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