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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테 Oct 05. 2024

처음 느낀 그대 눈빛은

내게 가을 바다는 - 1

내게 가을 바다는 그곳이다. 햇살은 따사롭고 모래가 곱고 물결은 잔잔하고 여름의 열정이 미련 없이 빠져나가 슬프도록 고즈넉한 동쪽의 어느 해변. 젖은 모래에 닿는 맨발의 감촉이 가슴속까지 시려서 이유 없이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려도  아무렇지 않은 곳이었다. 저 멀리 수평선 가까이 떠 있는 함대조차도 느긋한 오후의 한 퍼즐조각이 되는 곳. 그 바다를 마주하고 서 있으면 벅차올라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만드는 무기력을 선물처럼 던져주는 곳. 그곳은 그런 바다였다.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던 그 해 가을 나는 인증준비로 미뤄두었던 여름휴가를 받았다. 가을이니 가을휴가가 맞겠다. 인증이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보너스 기간 일주일을 더 해 보름의 시간을 쓸 수 있었다. 대관령을 막 넘어가는데 눈발이 날리었다. 산 아래는 가을 햇빛이 촘촘하게 비치는데 대관령을 통과하는 도로는 흰 눈이 사뿐사뿐했다. 정확히 10월의 한가운데 날이었다. 대관령을 지나서 강릉에 도착하니 찬란한 가을 햇살이 여전했다. 거기서 버스를 갈아타고 양양으로 향했다. 그 시절 하조대까지 가는 길은 다섯 손가락을 다 접어도 모자랄 만큼 환승을 해야 하는 먼 곳이었다.




Y를 처음 본 날은 새내기들을 낚으려고 학생회관 로비에 동아리 홍보 부스를 만든 지 사흘 째 되는 날이었다. 동아리 회원들은 앵글로 짜 맞춘 책상을 내어놓고 학과수업이 없는 빈 시간마다 진을 치고 앉아서 동아리를 홍보했다. 새내기처럼 보이는 풋풋한 학생들이 지나가면 기회를 포착하고 부스 쪽으로 데리고 오거나 부스에 앉아서 낚시해 온 새내기들이 동아리에 가입하도록 홍보를 했다. 여자새내기들은 주로 남자 회원이 맡고 남자 새내기들은 여자 회원이 맡았다.

홍보부스로 가는 길에 교내 우체국 문을 막 나서는 Y와 눈이 마주쳤다. 기회를 놓칠세라 방긋 웃어주고 그에게 다가갔다. 일단 우리 홍보부스 쪽을 향해 걸으며 말을 건네 새내기인지, 동아리에 가입했는지 여부를 물어야 했다. 물론 다른 동아리와 양다리 가입도 가능했고 새내기가 아니어도 가입은 가능했지만 학년에 관계없이 가입되는 해에 따라 동아리 기수가 정해지기 때문에 새내기가 아니면 가입을 꺼려했다.


Y는 온순하게 우리 부스까지 이끌려갔다. 구릿빛 피부에 180cm 정도 되는 키, 체격이 다부져서 얼핏 보아서는 체육학과 학생 같았다. 수줍게 웃는 인상이 순하고 착해 보이는 새내기였기에 우리는 칭찬으로 집중 공략해서 Y얼을 빼놓은 정신 차리기 전에 가입신청서를 내밀었다. 작전은 성공했고 바로 학생회관 4층에 있는 동아리 방으로 안내했다. 동아리 방에서 대기조가 새내기들에게 학식과 자판기 커피를 쏘면서 친목을 도모했다.

 Y는 다음 날 절친을 데리고 동아리 방에 나타났다. 그 둘은 고등학교 친구이면서 동시에 같은 과에 적을 두었다. 이런 경우 동아리를 탈퇴할 때 둘 다 빠져나가는 위험성이 있긴 했다. 우리는 그렇게 2정도를 새내기 포섭에 힘 쏟았다.


Y와 절친 J는 2학년인 나의 후배로 동아리에 가입해서 활동을 시작했다. 조용한 듯하면서 동아리 행사에는 빠짐없이 참석했고 체격이 좋아 힘쓰는 일을 나서서 했다. 신입생 환영회와 봄 축제 가두판매현장에서도 초여름의 강하구둑까지의 하이킹에서도 Y는 조용하고도 듬직하게 선배들을 돕고 말을 잘 따랐다. Y와 친구 J는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다. 그렇다 보니 다른 동기들과 친밀함이나 선배들과 어울리는 시간은 당연히 적었다.

Y가 고3 때 그의 가족이 살던 지역을 떠나 서울로 이사 가는 바람에 할머니댁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방학이 되면 Y는 가족이 있는 도시로 가지 않고 시골에서 홀로 지내는 할머니댁에 머무르면서 할머니 일을 돕고 가끔 학교에도 나타났다. 그가 살던 지역은 집성촌이어서 동네 분들이 거의 친적이라고 했다.


 그즈음 내게 남자 친구는 없었다. 후배들이 '누나, 누나'하고 잘 따라서 후배들 응대하느라 바빴다. 조용하고 얌전한 동기들은 축제기간이든 아니든 시도 때도 없이 미팅에 나가느라 발바닥이 불나는데 나는 후배들 놀아주고 뒤치다꺼리하느라 실속이 없었다. 남자 후배 중 하나는 남도 끝자락에서 올라온 B였는데 재수를 해서 나와 동년배였다. 유독 내게 들이대는 통에 골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좋다고 고백하는 것도 아니고 은근히 놀려대며 기분 나쁘게 신경을 건드리곤 했다. 벚꽃 같은 색상의 새 스니커즈를 처음 신고 간 날 대뜸 유성매직으로 핑크핑크한 신발 앞부리에 커다란 점을 찍어놓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그런 나를 보고 사과는커녕 껄껄거리고 웃어 결국 화나게 만들었다. 화를 내면

"선배 화났어요? 큭큭 에이, 뭐 그런 걸 가지고."

'뭐 그런 걸 가지고'... 이런 말은 잘못한 사람에게 너그러움을 베풀 때 괜찮다는 말과 함께 하는 말이 아닌가? 마른 멸치대가리 같은 그 후배는 절대 미안하단 말은 안 하고 나를 속 좁은 사람으로 난처하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나는 점차 남자 후배들에게 거리를 두어야겠다고 생각할 지경이 되었다. 이러니 Y가 내 안중에 없는 것은 당연했다.


2학년 여름방학이 되어 나는 고등학교 친구와 컨트리클럽에 딸린 야외수영장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중간에 쉬는 날 없이 40일 동안 해야 하는 일이었다. 한 번 시작하면 중간에 그만둘 수 없다는 약속을 하고 일을 시작했다. 서머시즌 한시적인 일이라 관리과장님을 제외하고는 모든 스텝이 대학생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심지어 구조요원도 체육학과생이었다. 구조요원 예비역을 빼놓고 대부분 1, 2학년이었기에 우리는 쉽게 친해졌고 즐겁게 근무했다. 팀워크도 좋아서 10시간 근무가 힘들지 않을 정도로 서로 배려했다. 그들 중에는 썸을 타는 관계도 생겨났다.

Y가 수영장 아르바이트 하는 내 소식을 들었는지 퇴근 후 집에서 쉬고 있는 내게 전화를 했다.

수영장 위치를 묻는 전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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