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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테 Nov 02. 2024

직장인의 일상

주말엔 바람처럼

훈풍이 불었다. 무겁게 습기를 품은 구름이 낮게 드리워졌다. 아침 최저기온이 뚝 떨어져야 고운 단풍이 든다는데 그렇지 않아서 단풍이 더디 오는 것이라 했다. 그래도 걸음에 바스락거릴 정도의 낙엽은 뒹굴었다.


협업하는 동료가 한 달 전 임시공휴일이 낀 황금연휴에 낙상사고로 팔에 골절상(자그마치 뼈가 여섯 조각으로 분리된)을 입고 수술을 했다. 물고인 미끄러운 흙을 밟고 넘어진 게 1차 원인이지만 2차 원인은 골다공증 가족력이 있는데 치료를 하지 않고 방치한 데에도 있다. 3차 원인으로 예측하자면 구두굽과 맞먹는 키높이 운동화가 비온 날의 미끄러운 땅에 무리가 아니었나 싶다. 수술과 치료로 2주를 입원했다. 무리 없이 회복이 되려면 퇴원 후 2주 통깁스,  깁스를 푼 후에는 물리치료를 받으며 적어도 2개월은 팔을 써서는 안 된다고 했다. 3개월 후에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데 이것도 회복 상황을 봐야 하는 것이라 했다. 골다공증이 있어서 회복이 빠르지는 않을 것이라 했단다. 업무 협업하던 그녀가 입원하고 회복하는 석 달 동안 근무할 대체인력을 채용할 줄 알았다. 그런데 동료의 업무 공백을 대체할 인력을 공급해주지 않았다.


돌싱으로 아들 셋을 키우는 속사정이 그녀에게 있었다. 그녀가 가장이었다. 첫째, 둘째는 직장인, 막내는 군복무 중이지만 당장 일을 그만둘 형편이 안되었다. 그녀가 2주 병원생활을 하는 동안 공백을 혼자 메우느라 진땀이 났다. 퇴근이 날마다 늦어졌다. 근무 중에도 쉴 틈이 없었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절인 배추가 되었다. 그 와중에 병원생활을 혼자서 어찌하는지 걱정이 되어 주말에라도 병간호하려 했더니 남자친구가 조석으로 병원에 들러 머리도 감겨주고 밥도, 약도 먹여주고 빈틈없이 다 한다고 했다. 다행이다. 남친과 데이트하다 다쳤으니 남친으로서는 더 마음이 안타까웠을 것 같다. 반찬 몇 가지를 만들고 간식비 조금 해서 병문안을 다녀왔다.


퇴원을 한 그녀는 팔꿈치부터 손가락 두 번째 마디까지 통깁스를 한 채 출근했다. 한 손을 전혀 쓸 수 없으니 얼마나 불편하며 또 그 상태로 출근을 했으니 그녀는 그녀대로 몹시 미안해했다. 그럴 수밖에. 협업하던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없으니 마음이 불편했을 것이다. 다른 동료들과의 협업도 걸쳐있지만 주로 나와의 협업이다 보니 내게 가장 미안한 마음이 컸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그녀에게 괜찮다고 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라고 했다. 내가 팔을 다친 입장이고 급여 변동이 있어서는 안 될 처지라면 어떻게 하겠냐고 물었다. 그녀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녀가 불편할까 봐 일부러 다른 때보다 더 많은 말을 하고 시답잖은 이야기도 깔깔거리고 건넸다. 잘 보지도 않는 유튭을 열어 SNL shorts 가장 웃기는 걸 골라서 링크를 공유했다. 붕어만세 작가님의 스토리 [남녀의 소통 오류에 관한 연구] 글 링크도 공유했다.

https://brunch.co.kr/@goldfish-studio/58


짬이 나면 남자 친구가 잘해주냐는 질문을 던져 그녀가 신나게 남자 친구 자랑하는 것을 부러운 표정으로 들어주었다.

그녀를 돕는 마음으로 내가 조금 더 업무를 감당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의 속내는 석 달 마음 편히 쉬었다가 복직하고 싶었다고 했다. 오너에게 말을 꺼냈지만 형편을 고려해서 그런지 그냥 그냥 조금씩 업무를 분담하면 된다고 출근하라고 했단다. 어떤 선택이 더 현명했는지는 모르겠다. 협업 당사자인 나에게는 일언반구도 없이 결정된 일이었다.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니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래그래 두루두루 좋게 가자. 난 그랬다. 내가 힘들더라도.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 의도가 점차 변하는 것 같았다. 갈수록 그녀의 심적 부담이 커지는 듯했다.

가중된 업무로 부지불식간에 내 표정이 안 좋았었나 생각을 했다. 퇴근시간이 늦어지자 그녀가 더욱 미안해했다. 이제 한 달이 지났다. 앞으로 두 달은 더 조심해야 한다. 최소 한 달은 더 조심해야 한다. 골다공증이 있어서 골절까지 안 될 상황인데도 골절이 되었으니 약을 복용하면 좋으련만 아직도 약을 먹지 않는단다. 남자친구가 건강보조제를 사다 줬다고 자랑뿐이다. 뼈 때리는 말을 한마디 했다.

"나도 2월에 빗길에 넘어졌었잖아요. 넘어졌지만 팔꿈치 찰과상으로 끝났어요. 선생님은 나보다 어리잖아요. 골다공증이 그리 무서운 거예요. 꼭 치료받아야 해요. "

그래도 여전히 약 복용을 미룬다. 다 낫지도 않은 팔로 깔짝깔짝 일하다가 골절부위가 제대로 접합이 안될까 은근 걱정이다. 비 오기 전날에는 통증이 더 심해져 골절부위가 일기예보라고 쓴웃음을 짓는다. 더 버티면 또 한마디 해야 하나?

"선생님, 동료를 사랑한다면 골다공증 약을 복용하세요. 푸하하"




가을을 좋아한다. 풍성하고 쓸쓸해서다. 나는 원래 집순이라 집에서 노는 걸 좋아한다. 솔직히 나돌아 다니는 것도 싫어하지 않는데 그다지 혼자 다니고 싶지 않은 마음이 어느새 집순이가 되어버렸다. 여행코드가 잘 맞는 최애친구가 법인장인 남편 따라 중경으로 가고 나서는 그녀만한 파트너를 찾지 못했다. 짝꿍이 있는 친구들은 하나같이 금슬이 좋아 주말엔 남편과 가족과 함께 해야 한단다. 이런저런 이유로 자연스레 집순이가 되었다. 어떤 땐 이것저것 만드느라 하루 종일 재봉틀(취미생활) 앞에 앉아있을 때도 있다. 요즘엔 소설 연재글 쓰느라 머리를 쥐어짜고 봉틀이를 감금해놓았다.

10월부터 본격적인 시즌이라 가을을 누리고 싶었다. 섬진강 둘레길이 첫 번째였다. 4주째. 매주마다 나갔다. 동료의 골절상 여파로 주중에는 피곤하고 벅찼다. 10월에 받아야 할 인강과 리포트, 시험이 추가되었다. 그래도 주말에 나갔다. 활력이 되었다. 그것이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었다. 내가 가을을 사랑하는 방법이었다.


10월 31일, 그녀의 퇴근시간에 맞춰서 남자 친구가 소담스러운 국화를 들고 직장 앞으로 모시러 왔다. 가을밤의 정취를 느끼고 싶다며 손잡고 걷기로 했단다. 나는 뭘 할 거냐고 묻는다. 뭘 하긴 퇴근해야지. 나도 영원한 내 사랑, 중동지방에서 태어나신 국제적인 그 분(Jesus christ super star)과 팔짱 끼고 집까지 걸을 거라고 말했다. 하하하 크게 웃어줬다.


어제 퇴근 전에 그녀랑 늦가을에 가보면 좋을만한 곳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헤어졌다. 겨울이 오기 전에 나는 바람처럼 돌아다닐 거라고 했더니 아침에 그녀에게 톡이 왔다. 가을에 가볼 만한 곳이라며 링크를 보내왔다. 그녀의 남자 친구는 토요일 3시까지 근무라는 것을 나도 알고 있었다. 그녀와 남자 친구의 토요일 장거리 야외 데이트는 사실상 불가다. 그녀는 운전면허증이 없다.  면허증이 있어도 팔이 불편하지. 모시러 갈 테니 준비하고 있으라 했다. 주말까지 나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며 사양했다. 괜찮다고 권유하다 그만두었다.


어제 근무 중에 한기가 들고 두통이 있더니 퇴근때 목이 칼칼했다. 종일 비가 내렸는데 그래서 추운 줄 알았더니 감기가 왔나 보다.

목을 머플러로 칭칭 감았다.  텀블러에 뜨거운 허브차와 커피를 담고 맥 버거를 드라이브 스루로 받아 느지막이 출발했다. 아플 때는 입맛 돌게 특별식. 버거는 1년에 한 번이나 먹을까 말까 한데 오늘이 그날이다.


도착하니 햇살이 찬란하다. 돈암서원 앞에 논 한 필지(1200평) 보다 넓은 코스모스밭을 만나는 행운이 기다리고 있었다. 게다가 내게 큰 즐거움을 주시는 작가님의 댓글 알림도 떠서 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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