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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붕어만세 Aug 12. 2024

남녀의 소통 오류에 관한 연구

설거지를 중심으로

아내가 남편에게 간단한 심부름을 부탁합니다.


"마트에서 계란 12개 사고, 만약에 우유 있으면 2개만 사와.“


분해해 보면 이런 뜻입니다.


1. 마트에 가라.

2. 계란 12개짜리 한 판을 사라.

3. 우유도 2개 사라.

4. "만약에 우유 있으면" - 이건 그냥 문장을 매끄럽게 이어주는 용도야. 마트에 당연히 우유 있겠지.


공대 나온 사내 새끼들은 이렇게 이해합니다.


1. 마트에 간다.

2. 조건문을 확인한다.

 2-a) 혹시 우유가 있다면, 계란을 2개 사고

 2-b) 혹시 우유가 없다면, 계란을 12개 산다.


오! 완벼카다.




물론 이건 웃자고 해본 소리입니다. 현실 세계는 공대생 유머처럼 녹록치 않죠. 실전 문제를 하나 풀어 볼까요?


자, 먹었으면 설거지 해야지?


싱크대에 설거지 좀 정리해 줘.

역시 분해해서 하나씩 해석해 봅시다.


1. 싱크대에 : 일단 싱크대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2. 설거지 : 메인 태스크

3. 좀 : 고급 단어가 나왔네요. 설거지 옆에 붙은 “좀”은 “내가 오늘 좀 힘들다”의 축약형입니다.

4. 정리해 줘 : 설거지와는 호응하지 않는 "정리하다"가 사용되었죠? 설거지를 잘 정리해봐야 욕만 먹을게 뻔하니까, 여기서 "정리하다"는 설거지가 아니라 싱크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아마도 설거지를 끝내고 그릇을 정리하면서, 싱크대도 좀 치우라는 말이겠죠. 서로 호응하지 않는 두 요소 사이의 관계를 통해, 전체 맥락을 읽어내는 것이 이 문장의 킬 포인트입니다.


즉, 얼핏 단순해 보이는 이 문장은 사실 세 개의 문장을 하나로 합친 문장입니다.


1. 내가 오늘 좀 피곤하다.

2. 설거지는 니가 해라.

3. 그리고 하는 김에 싱크대 반경 2m 정도를 정리해라.


그러나 대부분의 남자들은 이 문장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1. 싱크대에 : 위치 정보

2. 설거지 : 물리칠 대상

3. 좀 : 의미 없는 부사

4. 정리해 줘 : 사후 처리 방식의 지정 - 그릇을 소팅해라.


즉, 설거지를 해치우고, 그릇을 소팅해라.

오! 완벼카다.




장모님이 마나님께 전화를 하셨습니다. 장모님과 어르신이 설거지로 한 푸닥거리하신 모양입니다. 설거지 좀 해 달랬더니 설거지만 하셨데요. 설거지 끝내고 누워서 태래비 보신 모양입니다. 장모님은 ”저 화상이 또.. “ 로 포문을 여셨고, 장인어른은 이번에는 진짜 억울하다며 울분을 토하셨습니다.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남자들은 이 문제의 원인이 “불명확한 오더”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분홍과 핑크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는 극소수의 남자들을 제외하고, 절대 다수의 남자들은 이런 문학적인 문장을 이해하지 못하거든요. 이해는커녕 써진대로 하는것조차 어려워 합니다. 더군다나 ”좀”처럼, 옆에 호응하는 단어가 뭔지, 성조는 어땠는지, 장음인지 단음인지에 따라 의미가 크게 변하는 고급 단어들이 포함된다면, 오독의 확률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갑니다.


따라서 이런 유형의 문제들은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냥 외워야 합니다. 외국어 처음 배울 때 그냥 문장 전체를 외우잖아요. 행운을 빈다면서 왜 Break a leg (다리 뿌러져라!) 라고 하는지 이해하려 하지 말고, 쟤네는 그냥 원래 그런가 보다.. 하고 외우는 것처럼요.


일상 생활중에 유난히 자주 들으면서, 항상 난이도가 높은 숙어들을 몇 개 더 볼까요?


나 오늘 어때?

이건 의상이나 악세서리, 혹은 헤어스타일이 바뀌었을 때 등장합니다. 이때는 당황하지 말고 차근차근 시간을 끌며 주의 깊게 살펴보세요. 아마 절대 못 찾겠지만,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게 중요합니다. 참고로 10년지기 친구가 쌍커풀을 하고 와도 모르는게 사내 새끼들입니다..


뭐가 미안한데?

모르죠. 네. 우린 그런거 잘 모릅니다. 애초에 뭐가 미안한 줄 알면 그런 짓을 안하죠.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설명을 들어도 잘 모릅니다. 어차피 모르는 거 굳이 이해하려 들지 말고, 빠른 사과로 일단 화를 누그러트리는데 집중하세요.


아! 좀! : 당장 해라. 재촉이나 채근에 가깝습니다.

쫌! : 그 문제는 더 이야기하기 싫다.

쫌 쫌 어? :  왜 말을 안 듣는 것이냐. 강한 경고입니다.

아..좀.. : 적당히 하지? 완곡한 만류입니다.

오늘은 좀 그른가? : 나는 준비 되었다. 가서 씻고 와라.




그냥 외웁시다.

녀자 사람과의 대화는 기본적으로 외국어의 연장선이며, 완벽한 암기는 이해와 구분되지 않습니다.


Break a leg! (당신의 다리가 뚝 뿌러지길!)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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