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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테 Nov 05. 2024

어설픈 솜씨 낡은 재봉틀

'짓다'라는 낱말을 좋아한다. 국어사전에는 이런 뜻으로 풀이된다.

재료를 들여 밥, 옷, 집 따위를 만들다,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 약을 만들다, 시, 소설, 편지, 노래 가사 따위와 같은 글을 쓰다. 유의어로는 그리다, 긋다, 꾸미다...

브스마을 작가님들은 글을 짓는다. 게다가 직업에 따라 옷, 집, 약, 밥을 짓기도 한다. 여기에 꿈을 짓는다고 하나 더 얹어보고 싶다. 직업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지을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사회 초년생 일 때 직장과 집을 오가는 무료한 생활을 하던 중 취미로 뭔가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그때 선택한 것이 홈패션강좌였다. 직장이 도시의 변두리 쪽에 위치해 있다 보니 학원이 있는 곳까지는 퇴근 후 30분을 넘게 이동하여야 했다. 왜 그걸 선택했는지 뾰족한 계기는 없었다. 굳이 찾자면 혼자 조용히 앉아서 꼼지락꼼지락 하는 것을 좋아하는 취향 때문이었을 것이다. 학원에 등록한 시기가 그러고 보니 딱 이 즈음이었다. 겨울옷을 입기에는 부담스럽고 해가 진 후의 싸늘한 바람을 막기에 가을옷은 얇아서 버스를 타고 학원 앞에 내리면 스산한 바람에 추웠던 기억이 난다.

6개월 코스가 기본인데 주 5일, 석 달만 다녔던 것은 한 겨울 추위에 버틸 재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라 겨울이 힘들다.)

처음에는 재봉틀 부위 명칭과 사용법부터 시작해서 기본박음질. 갈수록 조금 더 복잡한 과정으로 들어갔다.

퇴근 후 시내버스를 타고 학원으로 이동하여 7시 강좌를 듣고 9시 조금 넘는 시간에 학원에서 나와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고 내려 빙판길을 걸어 집에 오면 10시가 다 되는 일상을 석 달 정도 보냈다. 6개월 코스의 마지막은 침대커버와 커튼제작인데 나는 거기까지 이르지 못했다. 추위에게 지고 말았다. 정말 꽁꽁 추웠다.

학원수강을 그만두고 손을 놓았다. 재봉틀이 없기도 했지만 20대 중반의 발랄한 시절이니 재봉질 외에도 신나고 재밌는 일은 얼마든지  많았다. 옷 솔기가 뜯어지거나 양말이 구멍 나면 손으로 꿰맸다. 박음질 같은 것은 까마득히 잊고 지냈다.

내 재봉틀은 19년 정도 사용한 오래되고 낡은 것이다. 판매 당시에도 가정용 일반 사양이어서 없는 기능들이 많다. 사용하다 보면 아쉬운 기능들이다. 그동안 수리를 딱 세 번 했다. 소모품 교체 두 번과 밑판 부품갈이.

대한민국 재봉틀 만드는 기술이 참 좋다. 수리하러 서비스매장에 가면 눈이 휘둥그레진다. 고급진 재봉틀 구경에 감탄을 하다 고쳐진 재봉틀을 들고 돌아온다. 아쉬운 대로 지금 사용하는 것도 그럭저럭 쓸만하다.

다른 가전제품도 그렇지만 고장 난 것은 다짜고짜 새 제품으로 교체하지 않는다. 수리해서 쓸 수 있는 데까지는 사용하는 것이 환경보호 차원도 그렇고 개인적 국가적 낭비를 줄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현재 사용하는 핸드폰도 5년째 사용 중이다) 내 생각이 고루할 수 있다. 그렇다고 소비와 공급의 순환이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19년 동안 아낀 수선비를 세세히  따져보지는 않았지만 꽤나 쏠쏠했다. 의류제작을 배운 것도, 수선을 배운 것도 아니지만 바느질이 거기서 거기. 쉬운 작업은 대충 수선해서 입는다. 이불커버나 간단한 커튼, 피아노 덮개, 에어컨 커버, 식탁보 등 이런 종류를 만들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주로 소품류를 제작했다.

부끄럽지만 지역 극동방송에 1년 반 넘게 소품류를 협찬했다. 방송국과 관련한 모임이 있어서 자연스레 협찬할 기회가 생겼다. 바자회 등의 특별 행사 때는 티슈커버, 가방, 파우치, 쿠션, 방석 정도의 소품을 협찬하고 평소에는 대형기도방석이다. 기도방석은 새벽기도 때에 요긴하게 사용되어서 주로 새벽기도를 하시는 여자분들이나 목사님들께서 사용하시기 좋다. 두툼해서 쿠션감이 좋다.(방석솜은 구매하고 나는 커버만 만든다)

브런치스토리 생활을 하면서 재봉질할 시간이 부족하다. 지인들에게 선물드리고 싶은 것은 많은데 주문해 놓은 원단에 먼지만 쌓이고 있다.

핸드메이드가 그렇다. 받으실 분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축복기도하며 정성을 들여 제작하지만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가끔 판매주문이 들어올 때가 있는데 가격 책정이 곤란하다. 원재료와 시간당 최저를 적용해도 차라리 기성품 구매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원재료비는 차치하고라도 시간과 정성을 돈으로 따져 가격을 책정하기가 민망하다. 그래서 대부분 선물로 드린다. 그런데 이게 누적이 되다 보니 원재료비만 줄 테니 만들어 달라거나 대놓고 선물해 달라는 의도를 보이는 분들이 있다. 그럴 때는 과감히 기성품 구매하시라고 권유한다. 짓궂은 면이 내게 있다. 판매해서 마음이 불편하기보다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선물드리는 게 훨씬 좋다. 가성비보다 가심비다. 선물드린 소품을 소중하게 여기고 오래 사용하시는 분들을 볼 때 보람 있다.

어설픈 솜씨로 낡은 재봉틀을 만질 때 즐겁다. 사용하실 분을 생각하며 그를 축복하는 마음으로 만드는 정성을 그분들도 아신다. 서로에게 소소한 기쁨이다. 원단에서 나오는 먼지가 풀풀 날리는 만큼 행복도 풀풀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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