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이테 Nov 09. 2024

연재소설 배경지 2-정읍

소소한 기쁨  & 애기단풍 나들이

이번 주 좋은 소식이 두 가지가 날아들었다. 지극히 사사롭고 소소한 일인지라 이야기 꺼내기가 부끄럽지만 내게는 의미가 큰 일이다.

한 가지는 올 연초에 '어머나 운동본부'에 했던 머리카락 기부 스토리에 관한 일이다. 사이드뷰가 대한민국사회공헌재단과 함께 어린 암 환자들을 위한 머리카락 나눔 운동인 '어머나'에 머리카락을 기부한 분들의 사연을 연재하는 코너의 기사로 작성하고 싶다는 메일을 받았다. ' 뭐 그런 일을 드러내?' 생각했다가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내 스토리를 읽은 누군가가 머리카락 기부를 작정하게 되면 선순환이 되지 않을까 하여 허락을 했다. 그리고 기사로 송출되었다는 사이드뷰 기자의 메일을 받았다.


또 한 가지는 그동안 교회에서 교사로 20년 섬긴 것을 치하하는 모범상을 소속 노회로부터 받게 되었다는 소식이다.

대통령 훈장도 타시는 분들이 많고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고 섬김을 하거나 아무도 모르게 위대한 일을 조용히 하시는 분들 앞에서 이런 일을 드러내는 것이 마냥 부끄럽기는 하다. 한편으로는 한 해가 저물어가는데 적어도 빈 손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이에게 엄마로서 본이 되는 일이기에 가족 단톡방에 기사송출 링크를 공유하고 모범상 수상 사진도 올렸다.




산림청은 11월 초를 단풍 절정시기로 예측했지만 초순이 다 지나는 오늘도 산에는 단풍이 절반도 들지 않았다. 오늘까지 5주째 [혼자 걷는 길] 매거진의 스토리를 이어나갔다. 드디어 오늘은 싱글탈출, [둘이 걷는 길]이었다. 연재소설의 주인공 내 친구 은채와 함께 단풍 나들이를 다녀왔다.


연재글이 중반부를 달리고 있다. 그녀에게 들었던 토막 난 이야기들에 허구를 첨가해 스토리를 이어나가고 있는데 이쯤 해서 조금 더 상세한 이야기가 듣고 싶어졌다. 워낙 우리 범인들이 상상할 수 조차 없을 정도의 폭력을 당했기 때문에 그녀의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는 게 그녀도 듣는 나도 힘들다. 실제 겪은 일을 그대로 소설에 묘사하게 되면 너무도 잔인하고 가혹해서 초보작가 습작 연재글로는 도저히 써낼 재간이 내게 없다. 지금 연재글은 최하위급 폭력으로 묘사해 나가고 있다. 지금도 독자를 너무 아프게 해 드려 글 발행 후 항상 죄송한 마음이다. 그럼에도 그녀의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다. 오히려 그녀가 더 적극적이어서 겪은 일을 최대한 담아내는 내용이면 좋겠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무리다. 그러기엔 쓰는 내가 앓아누울 것 같아서 겁이 난다.


매거진의 지난 글 '김제평야'는 그녀가 살았던 지역이다. 더 좁은 범위로는 만경강을 끼고 있는 만경평야 즉, 성덕면에 속한 곳이다. 지금도 그녀는 그 지옥 같던 시절의 흔적으로 온몸 구석구석에 크고 작은 상흔이 있고 정서적 학대로 야뇨증이 심해서 고생을 많이 했고 방광염이 고질병이 되었다고 한다.


오늘은 작정하고 그녀의 이야기를 더 깊게 들을 겸 그녀가 탱자나무집을 가출해서 살게 된 지역 정읍에 다녀왔다. 애기단풍으로 유명한 내장사와 조금 더 남쪽에 위치한 장성 백양사까지 찍고 왔다.

모범상 수상식이 오늘 있어서 최대한 이른 시간에 서둘렀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아침밥을 꼭 먹어야 하는 그녀를 위해 주먹밥을 준비하고 텀블러에 끓인 물과 허브티를 챙겨 그녀의 집 앞으로 갔다. 5시 30분에 은채를 만나 어둠을 뚫고 고속도로를 타고 달렸다.

단풍철이라 이른 시간부터 이동한 분들이 꽤 많았다. 7시쯤 백양사에 도착했는데 주차장에 차가 속속들이 들어왔다. 기온이 많이 떨어져서 차 안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있으니 어둠이 물러갔다. 출사를 나온 단체팀은 도대체 얼마나 일찍 도착한 건지 핫플은 그들이 다 차지하고 있었다. 등산객들도 많았고 계곡 근처에는 캠핑하시는 분들이 일찍이 모닥불을 피우고 불가에 앉아 책을 보거나 차를 마시는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취미생활을 위해 진심인 모습이다.

우린 등산은 아니고 산책이니 주차장에서 산사로 이어지는 길을 걸었다. 어쩌면 올해 절정은 끝내 없을 것 같은 아쉬운 단풍으로 먼 길을 달려온 수고를 털어냈다.

막 떠오른 해가 산그늘을 다 몰아내지는 못해서 더욱 이쁜 풍경을 담아 올 수는 없었다.


그녀는 따끈한 차 한 잔을 손에 쥐고 지나 온 어두운 날들을 회상했고 나는 그저 "사람이 어쩜, 어쩜.." 추임새로 그녀가 쏟아내는 기가 막히는 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긍정녀 은채는 뭐든지 감사란다. 지금 살이 조금 쪄서 옷이 작은 것도 감사하고, 몸이 아프지만 더 많이 아프지 않아서 감사, 일 할 수 있는 곳이 있어서 감사, 아들이 있어서 감사란다.

핸드폰 뒷면에 끼워둔 작은 사진을 보여준다. 3*4cm 크기의 사진에 청소년 남자아이들 예닐곱 명이 함께 찍은 사진이다. 사진도 오래되었고 얼굴이 너무 작게 나와서 식별하기가 어려운 정도인데 그중 뒷줄 왼쪽 아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웃는다. 연재소설 앞부분에 보이스피싱으로 구속된 상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최근 그 아들 일로 펑펑 울었다는 사연을 들려주었다. 얘기하면서도 눈물이 글썽하다.


살아온 날들 중 지금이 가장 행복하단다. 50대를 지나는 지금이 인생 최고의 리즈시절이란다. 그동안 월세로 살다가 대출을 90% 정도 안고 30년 가까이 되는 구축 아파트를 마련했단다. 기적이고 꿈만 같단다. 양육에서 벗어났으니 이제 시간도 있단다. 몸이 지금도 여기저기 삐거덕거리는데 더 아프기 전에 가까운 곳이라도 여행을 다니고 싶단다. 아들이 포항에서 해병대 부사관으로 복무하고 있어서 포항 여행은 갔냐고 물었더니 아들 마중, 배웅하러 갔을 뿐 포항 구경은 못했단다. 기차여행도 하고 싶단다.

사립 여학교 급실식 조리사로 일하는 그녀는 12월 말에 학교 방학을 한다고 넌지시 얘기한다. 나도 그때 휴가 제출을 할 테니 함께 가자고 했다. 아이처럼 기뻐한다. 벌써부터 떨린다고 한다.

내 친구 은채는 그런 여자다.

그녀 은채
매거진의 이전글 직장인의 일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