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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테 Nov 23. 2024

다시, 섬진강



허름한 밥상의 짠지처럼 생기를 잃고

다시 돌아올 그때는 어찌 될 망정

뒷걸음으로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수박 냄새가 난다는 물고기의 비늘이라도

윤슬처럼 거기 떠다닐지 모른다는

터무니 없는 구실을 삼을 것까진 없었다


멀리 사오십 리 되는 물길을 어디서 날아올랐는지

봄날의 보리밭에 숨어든 실성한 여인처럼

물새는 끼악끼리악 목울음을 놓아 울었다


두가세월 다리를 건너는 나그네 발길이 가여워

우르릉 우르릉 달랠 길 없이 너는 울고

마음놓고 물버드나무는 머리칼을 풀어헤쳤다


세월에 문드러이끼 같은 나는

뽀얀 사발 속 푸른 다슬기국 같은 눈물을

천년 전설처럼 거기 게워내고 돌아섰다



누이 닮은 붉은 꽃 산그늘마다 흔전 만전 할 때

겨우내 묻어 둔 녹슨 기적소리도 꺼내어 닦고

너를 만나는 길목에 봄볕을 융단처럼

깔아 두리라 그때는





일주일을 하릴없이 코레일톡앱을 드나들었다. 기차시간을 검색해 보고 기상청의 일기예보를 눈여겨봤다.

주말에 기온이 급강하한다고 했다. 추위를 무서워하지만 이미 기울어진 마음을 날씨도 막을 수는 없었다.


늦더위가 가을을 절반이나 집어삼킨 게 억울했다. 짧아서 더 아쉬웠다.

내 기준으로 올해 마지막 가을 주말이다. 그냥 보낼 수 없었다.

다시 섬진강에 가고 싶다 하니 마음 따뜻한 염려를 보태주셨다.

그 우렁찬 물소리를 다시 듣고 싶었다.


올 가을 들어 가장 기온이 낮게 내려간 날.

다시 섬진강에 섰다.

지난 섬진강 둘레길을 2/3 지점에서 되돌아왔다. 가지 못한 구간이 궁금했다.

이번에는 직접 차를 달려 다시 가정역에 도착했다.


여전히 아름다운 강.

오늘은 유난히 물새소리가 자주 들렸다. 물가에선 물새소리가 들리고 낡은 선로를 달리는 증기기관차의 기적소리는 다정했다. 그곳은 햇살에 찬란하고 눈부셨다.

야영장의 텐트들도 여전했고 가정역의 출렁다리도, 레일바이크 승차권을 판매하는 창구 직원안녕했다. 출렁다리 입구의 지역 노인들이 깔끔하게 다듬은 쪽파와 대봉시를 판매대에 가지런히 놓아두셨다. 간이식당에서 풍겨 나오는 군밤 익는 냄새도 그대로였다. 변한 게 있다면 수목들이었다.

두가세월교 입구에 차를 놓고 강가 좁은 모래톱에 내려가서 오래 물멍을 했다.

걷지 못한 구간을 레일바이크로 달리고 차로 서행을 하며 메타세쿼이아 나무구간에는 탄성을 질렀다.

그런데 여전히 충족되지 않고 아쉬웠다. 남은 구간을 다시 내년 봄에 걷기로 하고 되돌아 섰다.


삼시세판 아니던가. 이제 한 번만 더 섬진강에 가면 나는 정말이지 섬진강을 진심으로 사랑할 것 같다.

낙엽 밟는 소리
섬진강물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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