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이테 Dec 20. 2024

직장인의 일상 2

내가 좀 화났어!!!

말 안 하면 모른다 하지만 그건 핑계일지 몰라. 다른 땐 내 알 바 아니고 이번엔 그래.

이건 약속과 다르잖아.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 그건 나도 좋아. 그래서 기다렸잖아.

그땐 그랬고 지금은 아닌 거야?

뭘 그런 일로 그런 거냐고 속 좁은 사람 만들지 마. 생각만큼 속 좁았으면 지금까지 기다리지 않았어.

아쉽고 간절한 네 눈빛 때문에 나도 할 말은 있었지만 삼키고 그다지 내키지 않은 결정을 했어.

너를 위한 배려라고, 그게 네 뒤에 숨어 보이지 않는 네 아들 셋을 위한 일이기도 하고 결국 그게 나를 위한 것이고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어.

약속 기한이 지나고 출근한 네 모습에 나는 할 말을 잃었어.



그때는 이제나 저제나 조석의 건조하고 서늘한 바람을 기다리던 가 급기야 9월 한 달을 야금야금 먹어버리는 여름더위에 내주고 말았던 10월 초의 황금연휴였잖아. 서장군(暑將軍) 기세가 등등하여 물러서지 않을 것 같더니 한 차례 내린 비로 꽁무니를 빼고 달아났고 한낮이 아니면 조금 따가운 햇볕 정도야 견딜만한 날씨여서 다행이라고 좋아했지.

마침 윤정부에서  임시공휴일도 하루 추가해 주고 거기에 징검다리처럼 끼어 있는 날을 다른 동료와 겹치지 않게 4일을 연달아 있는 시간이 생겨서 나는 얼른 휴가 찬스를 꺼냈지.

마지막 학기를 지나는 아들의 가을 교정도 밟고 싶고 브런치스토리에서 알게 된 동생도 만날 겸 오랜만에 기차를 타는 여정에 마음이 한껏 부풀어 있었어.


너의 사고 소식이 들렸어. 데이트하다 넘어져서 팔이 부러졌다고. 너는 내게 울먹이며 전화를 했어.

데이트를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분명 옆에 남자 친구가 있어서 응급조치도 다 하고 이미 입원까지 마치고 수술 날짜도 다 정한 상태였는데 말이야. 난 이틀후면 휴가를 떠나야 했다고 그때.

모르겠어. 남자 친구랑 얼마나 깨발랄 시간을 보내느라 전날 내린 비로 바닥이 채 마르지 않은 비밀정원을 퐁당거리고 뛰어다녔는지는.

내게 전화해서 어쩌자는 건데? 휴가를 가지 말라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았어.

내가 맘보가 그랬나?


물론 좋은 맘으로 다친 팔을 걱정했지. 지금 어디냐고 네게 물었더니 너는 잠깐 입원짐을 챙기러 집에 왔다고 하더라고. 세수도 안 하고 허드레 옷을 입은 나는 모자만 눌러쓰고 튕겨 나가려고 내가 지금 주차장으로 갈 테니 기다리라고 병원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지. 차가 없는 네 생각이 먼저 떠올라서. 그랬더니 너는 남자 친구가 지금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하더군. 네가 내게 전화한 건 당장 도움이 필요한 게 아니라 내가 휴가 떠나는 이틀 후부터 업무에 공백이 생길 거라는 선포였던 거야. 바보같이 나는 그건 생각도 못하고 아픈 네 팔과 울먹이는 네 목소리에만 집중했지.


몸무게가 많이 나가거나 몸집이 거대한 것도 아니고 달리는 상태에서 넘어진 것도 아닌데. 너의 무시무시한 표현의 말에 의하면 골절이 여섯 조각이 나고 부러진 팔이 뒤로 돌아갔는데 그 나이에 걷다가 미끄러져 넘어진 골절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상태의 골절이라잖아.

철심을 박는 수술과 회복을 위해 2주 동안 입원치료를 하고 이후 두 달 동안 팔을 사용해서는 안되며 이후에 재활과정을 거치면서 상태를 봐서 기간이 더 연장될지도 모른다는 진단 결과가 나왔다고 했어. 당장 대체근무자를 구할 수 없어서 내 휴가는 물거품이 되었잖아. 이런저런 사연이 있는 네가 휴직을 하지 않기로 하고 복무를 결정하는 오너의 이야기도 수긍했어. 내가 그렇게 인정머리 없는 사람은 아니잖아.

내 휴가는 날아가버렸지.


너와 가장 밀접한 협업을 하는 나는 한 손만 자유로운 네가 감당해야 할 업무의 상당 부분을 그때부터 떠맡게 되었어. 가장 좋아하는 계절의 퇴근 시간은 늦어졌지만 오매불망 내 퇴근을 기다리는 가족이 없다는 것과 퇴근 후 매일 가야 할 행선지나 꼭 해야 할 일이 없다는 걸 다행으로 여겼어.

한 고비 넘기면 또 한고비. 어휴, 연내에 받아야 할 온라인 교육과 시험이 연거푸 추가되어 슬슬 짜증도 났어. 큰 도움 안 되는 것들을 굳이 교육받아야 하는 것이 불만이었으니. 그러는 사이 나는 주말 일탈 감행으로 숨통을 야 했고 그렇게 가을이 훌쩍 지났고 치료과정인 2개월이 지났어.

2개월이 지나자 너는 깁스를 완전히 풀고 팔 보호대와 목에 두르는 팔걸이를 끼우고 출근을 했어. 두 달 동안 수술 시 절개했던 상처도 잘 접합되어 흉터만 남았고. 통원재활치료는 따로 하지 않았다지만 집에서 간단히 재활운동을 한 덕분에 예상보다 다행히 호전 상태가 좋다고 했어.


12월 첫 주 출근한 너는 여전히 깁스 팔걸이를 걸고 와서 이제 내게 일임했던 본인의 업무를 담당하겠다고 했어. 솔직히 두 달 동안 군소리 없이 네 업무까지 감당한 나도 좀 지칠 때가 되기도 했어. 그런데 조금 고민이 되었지. 여전히 골다공증 약은 복용하지 않고 (이유를 물으니 아직 그러기엔 이른 나이라서 인정하고 싶지 않다니 T.T) 팔걸이를 한 팔로 어찌 일을 할 것인지 걱정스러웠으니까. 너는 더 이상은 미안해서는 안 되겠다고 했지만 마음 꾹 먹고 딱 2주만 더 내가 감당하겠다고 제안했어.

왜 그랬냐면 네게 뼈 상태를 물어보니 지금 골절된 부위가 붙어가고 있다는 말을 들어서였지. 물론철심을 박았으니 다시 뼈가 벌어지지는 않을 테지만 간신히 붙었던 뼈가 걱정이 되기도 했고 두 달 넘게 팔을 사용하지 않았으니 사고 이전처럼 자유롭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어. 네 팔이 내 팔이다 역지사지.


뼈도 막 붙기 시작했을 때 잘 붙어야지. 최소 석 달은 조심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이 자꾸 귀에 왱왱거려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기도 했고. 추가된 그 2주마저 지났어. 여전히 너는 골다공증 약을 처방받지 않았고 다만 커피를 줄였다고 했어. 내 몸이 아니니 내가 나서서 왈가왈부할 수는 없는 일이지.

주말이 지나고 지난 월요일 출근한 네 모습을 보고 나는 기분이 상했어. 너는 여전히 팔 보호대와 거치대를 끼고 출근해서 손이 많이 부었다는 말부터 꺼냈지. 내가 보기엔 네 업무를 담당할 준비가 전혀 안 된 것 같아 보였어. 나는 두 달 반 동안 최선으로 네 팔이 호전되기를 배려했어. 나도 할 만큼은 했어. 그러는 동안 얼굴 한 번 찌푸리지 않았고 그걸 너도 고마워해서 별다방 조각케이크와 커피 쿠폰을 보내왔지.


그런데 이건 좀 아니잖아?

언제까지 그걸 목에 두르고 팔 보호대를 착용하고 있을 건데? 그런 손으로 무슨 일을 하겠다고. 너는 쭈뼛거리며 이제 내 일은 내가 해야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슬슬 내 눈치만 보면서 일을 미루는 거 내 눈에 다 보여. 내가 바보도 아니고 언제까지 그럴 건지 지금 지켜보고 있는 거야.

어디 한 번 해봐. 두 달 반을 해줬는데 한 주라고 더 못해주겠어?


너도 노력을 좀 했다면 내일 미술관 가는 길에 동행하려 했는데 마음이 썩 내키지 않아서 혼자 가기로 했어.

그래 나 속 좁아.



속 좁은 오린이의 볼멘소리입니다.ㅠ

사실, 제 자신에게 화가 났겠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