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요양원의 닫힌 문

[시즌 1] 어느 은퇴자의 은밀한 취미생활

by 공감디렉터J


며칠 뒤, 무지개 시장.

폐공장 소탕 작전 이후 시장에는 기분 좋은 활기가 돌았다. ‘청춘 만세’ 사기단은 흔적도 없이 증발했고, 최말동 노인은 경찰서에서 잃어버린 돈의 일부를 돌려받았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콧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평화는 길지 않았다.

시장 삼거리에서 40년 넘게 가위를 잡았던 '장수 이발관’의 송 영감이 자취를 감춘 것이다.

“장 사장, 송 영감탱이 말이다. 며칠 전부터 문 닫고 안 보이더니만, 그 '새소망 요양원’인가 뭔가 하는 데로 들어갔다 카대.”
국밥집 강옥분이 뚝배기를 내어오며 혀를 찼다.

“요양원이요? 송 어르신은 정정하시잖아요. 매일 아침 자전거 타고 출근하시던 분이.”
기철이 숟가락을 멈추고 되물었다.

“내 말이 그 말이다! 자식 새끼들이 요새 송 영감이 깜빡깜빡한다면서 억지로 모시고 갔다는데... 이상한 건, 면회도 안 되고 전화도 안 된다 카는 기라. 며느리라는 년은 바쁘다고 전화도 잘 안 받고.”

옥분의 말에 기철의 미간이 좁아졌다.


‘새소망 요양원’. 최근 무지개 시장 인근 야산 중턱에 새로 지어진 고급 요양 시설이었다.

최신식 호텔급 시설을 자랑한다며 동네 곳곳에 현수막을 걸어놓았던 곳.

“면회가 안 된다고요?”
“어. 코로나 때처럼 뭐 전염병이 돈다나 어쩐다나 하면서 문을 꽉 잠가놨다더라. 송 영감이 내한테 빌려 간 돈이 십만 원인데, 돈 떼일까 봐 그러는 거 절대 아이다!”

옥분이 괜히 목소리를 높였지만, 그녀의 눈빛에는 오랜 이웃을 향한 불안감이 역력했다.

기철은 국밥을 비우고 인쇄소로 돌아왔다.
그는 컴퓨터를 켜고 '새소망 요양원’을 검색했다. 겉보기엔 멀쩡한 홈페이지였지만, 설립자 명의와 재단 자금 출처를 파고들자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얼마 전 박살 냈던 보이스피싱 콜센터 '청춘 만세’의 페이퍼 컴퍼니와 동일한 법무 법인이 개입된 흔적.

점조직 사기단의 꼬리를 잘라냈지만, 몸통은 여전히 이 동네에 똬리를 틀고 새로운 사냥터를 구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밤. 인적 드문 야산 중턱.

기철은 검은색 윈드브레이커의 후드를 깊게 눌러쓴 채, 새소망 요양원의 높은 철제 담장 아래 몸을 숨겼다.

'호텔식’이라는 광고와 달리, 건물 외벽의 창문들은 모두 두꺼운 쇠창살로 막혀 있었고, 외부와 연결되는 유일한 정문에는 사설 경비원들이 삼엄하게 보초를 서고 있었다. 요양 시설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교도소에 가까운 구조였다.

기철은 담장 주변의 CCTV 사각지대를 계산한 뒤, 가볍게 도약하여 3미터 높이의 담장을 소리 없이 넘었다.

착지하자마자 코를 찌르는 역겨운 냄새가 훅 끼쳐왔다.
오래 방치된 배설물 냄새와 독한 소독약, 그리고 정체불명의 쉰내가 섞인 악취였다.

그는 건물 뒤편의 환풍구를 뜯어내고 좁은 배관을 타고 내부로 잠입했다.


2층 병동 복도.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이기도 했지만 병동 내부는 기괴할 정도로 고요했다.

노인들의 기침 소리나 뒤척이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기철이 복도 모퉁이를 돌려던 찰나, 요양 보호사 복장을 한 건장한 사내 두 명이 낄낄거리며 걸어왔다.

“아, 304호 영감탱이 오늘 밤은 조용하네. 수면제 용량 두 배로 때려 넣었더니 아주 송장이 따로 없어.”
“야, 그래도 숨은 쉬는지 확인해. 저번처럼 기저귀 안 갈아줘서 발진 난 거 걸리면 원장한테 또 깨진다.”
“알 게 뭐야. 어차피 치매 걸려서 말도 못 하는 늙은이들, 대충 침대에 묶어놓으면 그만이지.”

사내들의 대화에 기철의 눈동자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그는 사내들이 휴게실로 사라진 것을 확인한 뒤, 304호 병실 문을 소리 없이 열었다.

달빛이 비치는 병실 안.
기철은 참혹한 광경에 호흡을 멈췄다.

여섯 개의 비좁은 침대 위에는 깡마른 노인들이 짐짝처럼 누워 있었다. 그들의 손과 발은 침대 난간에 거친 강박대로 꽁꽁 묶여 있었고, 초점 없는 눈동자들은 천장만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약물에 취해 저항할 힘조차 빼앗긴 채, 배설물로 범벅이 된 기저귀를 찬 채로 방치된 상태였다.

그중 창가 쪽 침대.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무지개 시장의 단골 이발사, 송 영감이었다.

“송 어르신.”

기철이 다가가 결박된 끈을 풀려 하자, 송 영감이 화들짝 놀라며 발작을 일으키듯 몸을 떨었다.

“아... 아아... 안 해... 밥 안 먹어... 때리지 마...”

송 영감의 환자복 소매가 걷혀 올라가며, 팔뚝과 어깨에 선명하게 남은 시퍼런 피멍 자국들이 드러났다.

누군가에게 상습적으로 구타당한 흔적이었다. 정정하게 자전거를 타며 넉살 좋은 웃음을 짓던 시장 골목의 이발사는, 불과 며칠 만에 공포에 질린 짐승처럼 변해 있었다.

기철의 턱관절에 굵은 핏대가 섰다.


분쟁 지역에서 수많은 시체를 보아왔지만, 무방비 상태의 약자를 상대로 한 이토록 교활하고 일상적인 폭력은 그의 속을 뒤집어놓기에 충분했다.

‘이곳은 요양원이 아니다. 노인들의 생명과 존엄을 갈아 먹는 도축장이다.’

그 순간, 복도 쪽에서 묵직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휴게실로 갔던 사내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기철은 묶여 있던 송 영감의 손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며 낮게 속삭였다.
“어르신. 며칠만 버티십시오. 제가 이 지옥을 끝내러 다시 오겠습니다.”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기철의 그림자는 창문 밖 어둠 속으로 흔적도 없이 스며들었다.

거대한 사냥을 위한, 가장 차갑고 잔혹한 분노가 장전되고 있었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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