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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정수 Aug 23. 2024

[팩트체크] 합리적 차별 괜찮다는 ILO 차별금지 협약

나경원의 빗나간 해석

1. 필리핀에서 온 가사관리사 100명이 다음 달부터 신청자 가정에 투입되는데요이를 두고 외국인에게는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데요먼저 어떻게 된 건지 좀 짚어보죠.

- 아이돌보미, 가사관리사, 간병인 등 돌봄 관련 인건비가 대부분 가정이 지불하기에 굉장히 부담스러울 정도로 높아졌습니다. 이에 따라 해외 돌봄 인력을 낮은 비용에 들여오자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는데요.

매일경제 등 경제지를 중심으로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도입하자는 연속보도가 나오기도 했고요. 지금은 국민의힘으로 당적을 옮긴 조정훈 의원이 21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오세훈 서울시장이 시범사업을 추진하기로 했고 지난 6일 필리핀 가사관리사 100명이 입국해서 기본 교육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이들은 9월 초부터 신청 가정으로 일을 하러 가게 된다고 합니다.     


2. 신청 가정이 강남권에 쏠렸다는 이야기도 나오는데요어떻습니까?

지난달부터 서울시가 신청 가정을 모집했는데요. 모두 731 가정이 신청을 했고 이 중 157 가정을 선정했습니다. 서울시는 "한부모, 맞벌이, 다자녀, 임산부의 우선순위와 자녀 수, 나이, 이용시간, 지역배분 등 여러 조건을 고려했다"라고 밝혔는데요. 선정 결과를 살펴보면 동남권(서초, 강남, 송파, 강동)이 59 가정(37.6%), 도심권(종로, 중구, 용산, 성동, 광진, 서대문, 동대문)이 50 가정(31.8%), 서북권(은평, 마포, 양천, 강서)이 21 가정(13.4%), 서남권(구로, 영등포, 동작, 관악) 19 가정(12.1%), 동북권(중랑, 성북, 노원, 강북) 8 가정(5.1%) 순서였습니다. 일각에선 '돈 많은 강남권 엄마들만을 위한 정책 아니냐'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집에서 영어과외 목적으로 이 가사관리사를 데려다 쓰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요.

필리핀 가사관리사를 사용하는 가정은 하루 8시간 기준으로 월 238만 원을 지불해야 하는데요. 한참 아이돌봄 수요가 많은 30대 가정의 중위소득이 509만 원이거든요. 부부 중 한 명 월급은 고스란히 가사관리사 비용으로 지불해야 하는 상황인 거죠.     


3. 비용을 절감하자고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도입했는데크게 비용이 절감되지는 않는 상황이로군요.

- 그렇습니다. 서울시는 "현재 공공 아이돌보미보다 9.2%, 민간 가사관리사 평균보다 20% 이상 저렴한 수준”이라고 강조하지만 여전히 부담스러운 금액인 것은 사실입니다. 

관련해서 한국은행이 지난 4월 <돌봄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 부담 완화 방안>이라는 보고서를 내놨는데요. 보고서는 두 가지 방안을 제시합니다. 개별 가구가 사적 계약을 통해 외국인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는 방식과 외국인 고용허가제 대상업종에 돌봄서비스를 포함시키는 방안입니다. 개별가구가 사적계약을 통해 외국인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는 방식은 싱가포르와 홍콩 등이 사용하는 방식인데요. 싱가포르와 홍콩은 고용주가 낮은 임금을 지불할 수 있지만, 가사관리사에게 식사와 주거를 제공할 의무를 포함해 여러 가지 의무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제도를 운영한 경험도 있고요. 우리나라에서 가사관리사에게 별도의 방을 제공할 수 있는 가정이 얼마나 될까 하는 의문이 제기되는 지점입니다. 한국은행은 사용자조합을 만들어서 공동 숙소를 제공하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긴 합니다.

두 번째는 고용허가제 업종에 돌봄 노동을 포함하는 건데요. 이 경우엔 돌봄 업종의 최저임금을 다른 업종보다 낮게 정하는 최저임금 차등화가 필요하다고 보고서는 주장합니다.


4. 관련 토론회에서 나경원 의원이 "ILO 차별금지 협약을 합리적 차별은 가능하다고 해석하는 게 맞다"라고 주장했는데요이건 사실입니까?

- 전혀 사실과 다릅니다. ILO 차별금지 협약은 "인종, 피부색, 성별, 종교, 정치적 견해, 출신국 또는 사회적 신분에 근거한 모든 구별·배제 또는 우대로서, 고용 또는 직업상의 기회 또는 대우의 균등을 부정하거나 저해하는 효과를 가지는 것"을 차별로 규정하고 금지합니다.     

한국은행도 최근 펴낸 보고서를 통해 외국인에게 더 낮은 금액을 지불하는 방식의 최저임금 차등제를 실시하려면 ILO 협약에서 탈퇴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5. 의원뿐만 아니라 여당과 산업계에선 외국인에게 더 낮은 최저임금을 주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데요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배경은 무엇입니까?

- 돌봄과 마찬가지로 중소 제조업체들은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거든요. 그런데 여태까지 낮은 인건비와 저비용을 기반으로 운영을 해왔기 때문에 국내 인력으로부터 외면을 받게 됐죠. 돈 적게 주고 험한 일을 시키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산업계는 낮은 비용으로 외국인력을 도입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고요. 그래서 외국인력을 도입해서 최저임금을 지급하고 있는데요. 최저임금도 부담하기 어려우니까 외국인에 한해서는 최저임금을 낮춰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 ILO 협약이라든지, 국내법에는 분명히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할 수 없도록 규정이 돼 있거든요. 우리나라 근로기준법 6조는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해여 남녀의 성을 이유로 차별적 대우를 하지 못하고, 국적 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합니다. 또 외국인고용법 22조는 "사용자는 외국인 근로자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차별하여 처우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하고요.


6. 외국인 가사 노동자 도입에 관한 찬반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는데요찬성과 반대 각각 어떤 근거를 내세우고 있습니까?

- 찬성하는 쪽은 외국인 가사 노동자를 낮은 비용으로 도입하게 되면 우리나라 여성과 산업 경제 전반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돌봄에 지불되는 비용을 낮추면 여성의 경력 단절을 어느 정도 개선할 수 있고, 출생률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국내 돌봄 시장이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도 찬성의 근거로 제시됩니다.

반대쪽에서는 홍콩과 싱가포르가 30년 넘게 가사분야 외국인 인력을 도입해 왔지만 합계출생률이 오히려 하락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듭니다. 또 외국인력 도입에 따른 기존 가사 및 돌봄 분야의 부정적 파급효과를 우려하는데요. 외국인력의 비용이 낮은 수준에서 형성되면 동종 업계에 종사하는 내국인 가사노동자도 노동조건 하락을 겪게 된다는 취지죠. 여기에 외국인 가사노동자에 대한 인권 노동권 침해 및 차별 우려도 제시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7. 싱가포르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요싱가포르의 가사도우미 제도는 어떻습니까?

- 싱가포르는 45년 동안 이주 가사노동자 제도를 운영하면서 쌓아 올린 경험이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을 주기는 하지만 이주 가사노동자의 권익을 보장하기 위한 다중의 장치를 구비하고 있습니다. 고용주는 이주 가사노동자가 근무지를 이탈해 불법체류 할 우려를 대비하는 보증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합니다. 고용주는 노동자를 위한 의료보험 및 개인사고 보험에 가입해야 합니다. 6개월마다 정기 건강검진을 받도록 비용을 부담해야 합니다. 고용주는 이주 가사노동자의 건강과 복지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고용주는 노동자에게 휴식일, 적절한 숙소, 적절한 의료 서비스 및 안전한 근무 조건을 제공해야 합니다. 이주 가사노동자는 노동법의 적용을 받지는 않지만 안전계약서를 의무적으로 작성해 시킬 수 있는 일과 시키지 못하는 일을 구분하고, 고용계약서를 작성해 고용 조건을 문서로 남겨놓도록 권고합니다.

그럼에도 고용주에 의한 학대 사건이 빈번히 발생합니다. 싱가포르 정부는 이주 가사노동자가 사회적 최약자라는 점을 고려해 학대 사건을 강력하게 처벌합니다. 고용주가 이들에 대해 학대를 저질렀다가 적발되면 최대 징역 3년 또는 5000 SGD(한화 약 500만 원)의 벌금형에 처해지고 죄질에 따라 평생 동안 이주 가사노동자를 고용할 수 없게 되기도 합니다. 이주 가사노동자가 임신을 하게 되면 고용계약이 해지되고 당사자는 출국을 해야 하는 법 규정도 있습니다. 고용주는 잠재적인 위험을 막기 위해 이주 가사노동자의 외출을 제한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주 가사노동자에겐 주 1회의 휴일이 부여되는데 휴일을 부여하는 대신 휴일 수당을 주고 일을 시키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싱가포르 정부는 이주 가사노동자의 휴식권을 보장하기 위해 지난해 1월부터는 매월 1회 의무적으로 휴일을 부여하도록 조치했습니다.

무엇보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영어가 공용어라서 필리핀 가사 노동자와 소통에 크게 어려움이 없는데요.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잖아요. 아무리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이 한국어를 배운다고 해도 기초적인 회화 능력만 보고 선발하고 있는 실정인 것을 감안하면 소통의 어려움이 부각될 우려가 큽니다.     


8. 해외에선 외국인에게 더 낮은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나라가 있나요?

- 미국 일본 독일 호주 벨기에 스위스 등의 나라가 최저임금 차등제를 실시하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외국인에게 더 낮은 임금을 주는 방식의 최저임금 차등제를 실시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최저임금 차등제는 업종별, 산업별, 지역별 등의 최저임금을 달리 책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어떤 경우에라도 국가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허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외국인에게 더 낮은 임금을 지급하는 최저임금 차등제를 실시하려면 일단 앞서 말씀드린 근로기준법, 외국인고용법 등 법을 바꿔야 하고, ILO 협약에서도 탈퇴해야 합니다. 현재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활용하고 있는 싱가포르는 최저임금 제도가 없고요. 홍콩은 ILO 차별금지 협약을 비준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만은 ILO 회원국이 아니고요. 게다가 ILO협약은 여러 FTA와 연결돼 있는데요. EU 등 많은 나라들이 국제노동기준을 준수하기로 하는 조항을 FTA에 포함시키고 있어서 우리나라가 ILO 차별금지 협약을 탈퇴할 경우 무역분쟁에 휘말릴 소지가 다분합니다.

이 시범사업은 내년 2월까지로 예정돼 있는데요. 시범사업 기간 동안 노출되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잘 취합해서 다각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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