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을 가려내는 작업의 중요성실을 가려내는 작업의 중요성
우리는 무수히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며 살고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허위정보 또는 조작된 정보가 섞여있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냈든 아니든 사실과 다른 정보가 굉장히 많이 유통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영역을 가리지 않는다. 정치인, 공무원, 언론, 기업가, 상인 등 직역도 가리지 않는다.
미디어는 많아졌지만 정작 미디어가 전하는 정보의 신뢰도는 오히려 하락하고 있다. 넘쳐나는 제품/서비스 후기만 살펴봐도 사실과 다른 정보가 유통되는 구조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식당에 들어가면 포털 사이드에 영수증 리뷰를 써주면 음료수를 무료로 준다는 문구를 많이 본다. 후기는 일종의 주관적인 경험을 풀어내는 것이라 사실 여부와 직결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대가를 받고 자신의 솔직한 심정이 아닌 제품/서비스 제공자에게 유리한 쪽으로 후기를 써준다.
언론사도 마찬가지다. 정론직필 하는 언론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회사 형태의 언론사는 영업 이익을 내야 직원들 월급을 주고 운영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수익이 꼭 필요하다. 대부분의 언론사는 광고로 돈을 벌고 있는데 기업들은 언론 광고에 대해 매력을 느끼지 못한 지 오래다. 지상파, 종편, 종이신문, 인터넷신문 가리지 않고 언론사에 광고를 준다고 매출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아예 노골적으로 돈을 받고 전주(錢主)의 이익을 반영하는 기사를 쓰는 일도 허다하다. 언론사는 사기업이기 때문에 특별한 감시를 받지도 않는다. 언론사의 매출 전표를 모조리 입수해 언론사에 돈을 준 주체에 대해 어떤 기사를 썼는지를 밝혀보면 흥미로운 결과가 나올 거다. 사실을 추구해야만 할 것 같은 언론사들도 사실보다는 이익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그럼 최근 부각되고 있는 유튜브는 어떨까? 기성 언론사가 갖고 있던 최소한의 염치도 팔아먹은 크리에이터들이 부지기수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쏟아내며 자극적으로 가공해 금전적 보상을 노린다. 극단적 성향의 정치 유튜버와 사이버렉카를 보면 확연하다. 아무런 확인 없이 퍼온 글로만 콘텐츠를 가득 채우는 블로거들도 널렸다. 허위 기만 광고, 과대 과장 광고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귀가 얇은 사람들은 이런 말도 안 되는 거짓에 속아 주머니를 털린다.
사실 사람들의 생각이 거기서 거기고, 지적 능력도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때문에 어떤 정보를 받아들이려고 할 때 약간의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면 사실 여부를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귀찮아서, 바빠서, 믿을만하다고 생각돼서, 나와 정치적 성향이 같아서 등등 다양한 이유로 내 머리로 생각하는 걸 포기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팩트체크는 귀찮고 외롭고 돈이 안 벌리는 작업이다. 사람을 들끓게 만들어야 지갑이 열리는데, 팩트체크는 사람을 선동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이 작동하게 만들어 생각하게 하고 차가워지도록 요구하기 때문에, 이 팩트체크에 선뜻 돈을 지불하는 사람이 없다. 게다가 단골로 팩트체크 대상이 되는 특정 집단이 오히려 팩트체크를 공격하며 팩트체크가 이현령비현령인 것 아니냐는 식으로 모략하며 팩트체크의 기반을 흔들었다.
그래도 팩트체크는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김시연 기자, 내일신문 정재철 기자, jtbc 팩트체크 유닛 등이 팩트체크를 꾸준히 시도하고 있다. 물론 나도 독립 팩트체커로서 팩트체크를 이어가고 있다. 팩트체크는 사실 여부를 가려야 하는 주제에 대해 객관적인 근거를 들이대는 작업이다. 그리고 판단 근거는 투명하게 공개된다. 따라서 정상적인 문해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팩트체크 결과물을 봤을 때 정치적으로 편향성을 띄었는지 금방 알 수 있다. 팩트체크가 편향성을 띈다면 독자들로부터 호응을 얻을 수가 없다.
비정치적인 주제에 대해 팩트체크는 엄청난 효용을 가져온다. 내가 팩트체크한 '코고리'. '김민', '불가리스', '손창현' 등의 사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것만 코에 끼우면 모든 호흡기 질병을 고칠 수 있다고 수십 년 동안 장사를 해왔던 코고리. 저렴한 비용을 지불하며 온갖 미디어에 광고성 기사를 실었다. 미디어와 기자들은 아무런 확인 없이 사기꾼의 주장을 기사로 만들어줬다. 결국 나의 팩트체크 시리즈 기사가 반향을 일으키면서 관계 당국의 철퇴를 맞았다.
고려대 교수, 청와대 대통령 전담 통역관 등 온갖 가짜 이력을 팔아먹으며 자칭 '스타 강사'로 활동했던 '김민'도 근거를 통해 사칭을 드러냈다. 학력과 경력을 사칭하는 사기꾼에게 '청렴강의'를 맡기는 공무원들의 허술한 실태도 함께 드러났다. 김민은 나를 언론중재위에 제소해 결국 민사소송까지 넘어갔지만 스스로 소송을 철회했다. 모든 걸 인정하니 한 번만 봐달라던 그의 메일은 아직도 내 메일함 속에 들어있다.
전문성 없는 유통기자들에게 가짜 과학으로 포장한 프레젠테이션을 펼쳐 '불가리스 코로나 억제' 기사로 도배하게 만들었다가 오너십이 교체된 불가리스 사태도 잊지 못할 언론계 흑역사다. 온갖 매체들이 수백 개의 기사를 쏟아내 '남양유업이 코로나 해결에 새 전기를 마련했다'라고 칭송했다. 남양유업의 사기적 행태도 결국 근거를 통해 밝혀낼 수 있었다.
남의 소설을 통째로 도용해 문학상을 수상하고 세상을 발칵 뒤집은 뒤에도 온갖 공모전에 도작과 사칭을 일삼았던 손창현. 그의 사칭과 사기를 밝혀낸 기사만 십 여편이다. 간단한 검색과 검증 만으로 그의 사기 행태를 밝혀낼 수 있었지만 다수의 공모전 주최기관들은 초보적인 검증도 하지 않는다는 걸 밝혀낼 수 있었다.
팩트체크는 정말 필요한 작업이다. 독지가가 나서 독립적인 팩트체크 기관을 만들고, 실력 있는 사람들을 뽑아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면서 팩트체크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모델을 구축하면 참 좋을 것 같다. 한 이십억이 면 되려나... 열심히 돈을 벌어서 팩트체크 기관을 하나 만들어 봐야겠다. 독자님들도 응원해 주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