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유학 49. 언더독 엘, 탑독 경진, 겸을 격파!!
2024년 11월 10일. 엘에게는 잊지 못할 날이 될 것 같습니다. 산골생태유학 어린이들은 요즘 배드민턴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방과후 교실에서 배드민턴을 꾸준히 하고 있었는데요. 요즘 갑자기 어린이 세계에서 배드민턴 경쟁이 후끈 달아올랐네요. 생태유학 어린이들은 진동2리 주민들의 배려 속에 마을 체육관인 설피관애서 운동을 하고 있는데요. 아이들이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배드민턴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6학년 서윤과 겸이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선두 경쟁을 하고요. 서로 이기면 실력으로 이긴 것이고, 지면 봐준 거라고 하면서 치열하게 실력을 쌓고 있습니다. 여기에 4학년 경진이 도전장을 내밀고 있고요. 또 다른 4학년 엘도 열심히 실력을 연마하고 있습니다. 2학년 수현도 언제나 형 누나들과 맞붙을 준비가 돼 있죠. 굳이 실력 순으로 줄을 세운다면 서윤>겸>경진>엘>수현 순이었습니다. 6학년 현기와 2학년 지우 윤서는 배드민턴에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1학년 다윤은 언니 오빠들과 격차가 좀 있죠.
그러다가 4학년들이 일을 냈습니다. 단 한판도 지지 않았던 6학년 복식조를 꺾은 것이죠. 4학년 경진-엘 조가 6학년 서윤-겸 조를 이긴 겁니다. 아마 그때부터 아이들이 눈에 불을 켜지 않았나 싶은데요. 6학년 최강자였던 서윤도 겸에게 한 번 패한 이후에 더욱 열심히 연습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형 누나들이 하는 건 모두 다 끼어서 해야 하는 2학년 수현도 열심히 연습을 하기 시작했죠.
아이들이 찾아온 건 바로 접니다. 저는 배드민턴 동호회를 한 적이 있어서 배드민턴과 친하거든요. 처음에는 초등 아이들과 무슨 배드민턴을 치겠냐는 생각이었고, 워낙 아이들이 못 쳐서 별로 재미가 없었는데요. 요즘에는 아이들이 먼저 찾아와서 가르침을 청하는 게 대견합니다. 봐달라고 하고, 안 되는 게 뭐냐고 묻고,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장비에 눈을 떴습니다. 장비병으로 옮겨가면 문제겠지만요. 아이들이 무언가 깨달음을 얻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렵니다. 저는 중급자용 라켓을 쓰고 있는데 아이들이 제 라켓으로 쳐보자고 하는 겁니다. 몇 번 쓰게 해 줬더니 가볍고 탄력이 다른 것 같다고 하네요. 솔직히 좀 가볍긴 합니다. 보급형이 보통 100g 정도 하는데 제건 78g 정도 하거든요.
결국 겸엘이 엄마를 졸라서 장비를 구입했습니다. 바로 그날 업셋이 터진 겁니다. 겸엘이 그들의 모친에게 라켓을 사달라고 조르는 걸 알아챈 저는 "애들에게 비싼 라켓은 필요 없습니다"라고 강조했죠. 좀 더 기본기가 갖춰진 다음에 좋은 걸 사도 늦지 않다고요. 겸엘 어머님도 동의를 하셨는데요. 라켓을 사러 갔는데 엘이 욕심을 낸 겁니다. 모아놓은 용돈을 보태 78g짜리를 사버린 거죠. 그리고 그 라켓을 들고 경진과 겸을 잇따라 격파한 겁니다. 경진은 적잖이 충격을 먹었더군요. "내 자존심이 무너졌어~" 라면서 얼굴을 들지 못하더라고요.
그렇지만 경진은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울먹이는 것 같기도 했지만 울지는 않은 것 같았고요. 이후 경진은 겸에게 도전장을 내밀었고 겸에게 승리를 따냈습니다. 경진은 체육관을 맹렬히 뛰어다니면서 자존심 회복을 자축했고요. 겸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죠. ㅎㅎ 그러나 성격 좋은 겸은 몇 분 정도 체육관 바닥에 누워있다가 떨치고 일어났습니다. 이날은 배드민턴 세계관 랭킹이 엘>경진>겸이 됐습니다.
배드민턴을 통해 아이들이 열심히 연습하고 도전하면 언젠가 승리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돼서 좋습니다. 복식경기에선 실수하면 파트너에게 미안하다고 하고, 잘하면 칭찬해 주는 팀플레이를 배울 수 있어 좋고요. 패배를 인정하고 승자를 축하해 주는 아량도 체득하니 정말 어릴 적 운동을 배우는 건 소중한 경험인 것 같습니다. 산골생태유학을 와서 번듯한 천장 높은 체육관에서 네트 쳐놓고 라인 그어진 코트 위에서 배드민턴을 할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체육관을 쓰게 해 주신 진동 2리 관계자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P.S> 이날 엘은 보라색 옷을 입고 와서 '가지', 경진은 주황색 옷을 입어서 '흉악한 오렌지', 겸은 회색 옷을 입어서 '회색 곰팡이', 위는 흰색 아래는 검은색을 입은 저는 '탄 밥'으로 불렸답니다. MVP 가지 선수 다시 한번 축하드리고, 흉악한 오렌지와 회색 곰팡이도 매우 수고하셨습니다. 월요일 방과후 배드민턴 시간에도 즐겁게 승부를 겨루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