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새해 선물
조혈모세포 기증을 신청한 지 27년 만에 HLA(조직 적합성 항원)이 일치하는 환자가 나타났다.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KMDP)는 내게 기증 동의 여부를 재확인했고 나는 동의한다고 재확인했다. 이후 양양군보건소에서 혈액 샘플을 채취해 KMDP로 보냈다. 유전자 정밀검사를 위해서다. 진짜로 내 몸에서 추출한 조혈모 세포를 환자에게 이식해도 거부반응이 일어날 우려가 없는지를 가려내는 작업이다. 이게 4~5주 정도 걸린다고 한다. 그동안 딱히 나에게 주어진 미션은 없다.
이왕 결심도 했고 팔뚝에 주삿바늘도 꽂았고 피도 뽑았으니 끝까지 잘 진행돼야 한다. 그래서 몸관리도 잘해야 한다. 그렇지만 감기에 걸려버렸다. 진통제로 버티다가 3일째 이비인후과에 갔는데 감기라면서 약을 한 보따리 안겨줬다. 이 약은 먹어도 되는 걸까? 조혈모세포 기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걸까?
찾아봤다. 기증 부적합 요인이다. 굉장히 까다로운 기준을 두고 있다. 일단 나이는 55세 이하여야 하고, AIDS 진단을 받으면 안 된다. 심각하거나 생명에 위협을 주는 알레르기를 갖고 있다면 불가. 류마티스, 민감한 건선 관절염 등 심각한 관절염이 있다면 불가, 중증 천식과 심장 발작 등 심장질환 불가, B형, C형 간염 진단받았다면 불가, 허리수술이나 만성 허리통증으로 병원 치료가 요구되면 불가, 심각한 감기나 독감 증상을 보이는 기간에는 불가, 이 밖에도 안 되는 조건이 굉장히 많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감기는 "심각한 증상을 보이는 기간에는" 불가하다고 한다. 빨리 나으면 별 문제는 없을 것 같다.
예전에는 이 조혈모세포 기증이 골수기증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막연한 두려움이 휩싸여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왕주사로 허리에 찔러 골수를 채취하는 방식. 통증도 엄청나고 출혈이 있을 수도 있고, 기증 후 일상 회복에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두려워할만했다고 본다. 지금도 골수기증 방식은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요즘엔 말초혈조혈모세포 기증 방식이 주를 이룬다. 성분헌혈하는 것처럼 팔뚝에 주삿바늘을 꽂고 피를 뽑아낸 뒤 기계에 넣고 조혈모세포만 뽑아내고 나머지는 다시 몸으로 돌려주는 방식이다.
물론 이 방식에도 고통은 따른다. 조혈모세포 추출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조혈모세포성장인자주사(G-CSF)라는 걸맞게 된다. 이게 골수를 자극해서 조혈모세포를 평상시보다 더 많이 생성하도록 하는데 이 과정에서 통증이 유발된다. 사람마다 편차가 커서 어떤 이는 아무런 느낌도 없을 수 있고, 다른 이는 굉장한 통증을 느낄 수 있다. 통증 부위도 두통부터 뼈 통증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이 통증은 진통제로 조절될 수 있는 수준이라고 KMDP는 설명한다. 그러나 온라인에 떠도는 조혈모세포기증 후기는 공포와 불신을 조장하는 내용들도 더러 눈에 띈다. 나중에 한 번 팩트체크를 해보도록 하겠다.
생태유학이 끝나고 도시로 돌아가게 되면 그동안 미뤄놨던 각종 치료 스케줄을 잡아야 하는데, 조혈모세포 기증과 상관관계는 어떻게 될 지도 다시 한번 상세히 알아봐야겠다. 생명을 살리는 것은 정말 숭고한 일이고 설레는 일이다. 그런데 나도 건강하고 행복하지 않으면 그 의미는 크게 퇴색될 것 같다. 그렇기에 나도 건강+행복하고 생명도 살리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2025년 1월1일 0시를 갓 넘긴 시간에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내가 너무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