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 해석 못하는 언론들
1. 오늘 팩트체크 주제는 <고립은둔 청소년>인데요. 최근 여성가족부가 고립은둔 청소년에 관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고, 많은 언론이 이 내용을 다뤘는데요. 잘못된 보도가 눈에 띈다면서요?
- 네 지난 25일 여성가족부와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은 2024 고립은둔청소년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 내용을 바탕으로 많은 언론이 기사를 내보냈는데요. 몇몇 보도의 제목을 좀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나라 청소년 10명 중 3명, 고립·은둔 경험…“벗어나고 싶다”>(KBS) <청소년 10명 중 3명은 '고립, 은둔', 90%는 가족 동거>(SBS biz) <방 안에 갇힌 청소년 '28.6%'… 정신건강도 위험 수위>(EBS) <“방에서 뭐하니, 왜 나오질 않아”...10명중 3명은 심각한 고립·은둔청소년>(매일경제) 이렇습니다. 이 보도들은 우리나라 청소년 10명 중 3명이 고립은둔 상태라고 짚었습니다.
2. 청소년 10명 중 3명이 고립은둔 상태다.. 엄청나게 많은 청소년들이 고립 은둔에 해당한다는 이야기인데요. 사실인가요?
-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례로 꼽은 보도들은 통계 해석에 실패한 걸로 보입니다. 해당 조사는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지난해 6월부터 8월까지 웹조사로 실시했습니다. 응답자가 스스로 링크를 클릭해 설문에 참여하는 방식인데요. 청소년정책연구원은 조사기간 중 온라인 링크 접속을 집중적으로 홍보했습니다. 언론을 통해서도 홍보를 했고요, 고립은둔 관련 인터넷 카페나 오픈 채팅방 등 온라인 커뮤니티, 또는 지자체 고립·은둔 관련 지원기관, 카카오톡(다음) 연계 배너 광고 등을 통해 조사 링크를 홍보했습니다. 그 결과 1차 조사에 19,160명이 응답을 마쳤습니다. 이들이 제출한 설문을 분석해 은둔 및 고립에 해당하는 청소년을 선별했는데요. 고립청소년이 12.6%, 은둔청소년은 16%로 나타났습니다. 고립은 최소한의 사회관계는 있으나 필요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유의미한 인적 지지체계가 없는 상태를 뜻하고요. 은둔은 방안에서조차 거의 나오지 않아 사회적 관계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고립 12.6%, 은둔 16%를 합쳐서 28.6%가 되니까 앞서 말씀드린 언론사들은 청소년 10명 중 3명은 은둔고립 상태다라고 보도한 거죠.
3. 좀 이상한데요.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웹 조사에 응답한 걸 두고 전체 청소년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요?
- 보통 여론조사라든지 정밀한 실태조사 같은 경우는 모집단의 특성을 살려 설문대상을 모집합니다. 표본추출방식이라고 하는데요. 실제와 가까운 정밀한 연구나 조사 결과를 얻으려면 이 표본을 얼마나 모집단과 비슷하게 설정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조사는 애초에 고립은둔 청소년 규모를 파악하려는 목적이 아니라서 표본추출 방식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고립은둔 청소년들이 어떻게 지내는지를 파악하고, 그들을 실질적으로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실마리를 찾아보자는 취지로 설계된 조사거든요. 그래서 이 조사는 애초에 고립은둔 청소년들이 많이 찾을 만한 곳에 링크를 뿌려놓고 접속을 유도한 겁니다.
4. 그렇지만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청소년과 청년들의 이야기를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들을 수 있단 말이죠. 도대체 고립은둔 청소년은 얼마나 많은 거죠?
- 10년 전쯤에는 이웃나라 일본 이야기인 걸로만 알았던 고립은둔자를 우리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고립은둔에 관한 정밀한 조사를 벌인 적은 없습니다. 다만 통계청의 사회조사를 통해 고립은둔에 대해 추정할 수 있는데요. 사회조사의 청소년 대상 설문지엔 갑자기 큰돈을 빌려야 할 경우, 낙심하거나 우울해서 이야기할 상대가 필요한 경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를 묻는 문항이 있습니다. 또 평소에 대면, 인터넷, 전화 등으로 교류하는 사람이 있는지를 묻는 문항도 있는데요. 이 문항들에 대해 모두 없다고 응답하면 고립 또는 은둔 상태로 판단을 합니다. 2023년 사회조사에서 13세부터 18세까지 청소년들은 5.28%가 없다고 응답한 걸로 나타납니다. 이 나이대의 청소년 인구 270만 명을 적용하면 14만 명 정도가 고립 은둔 상태인 걸로 추정됩니다. 19세부터 34세까지 청년을 살펴보면 5% 정도가 고립 은둔 상태인 걸로 추정되는데요. 전체 청년 인구로 따지면 54만 명 정도로 추산됩니다. 고립은둔 청소년과 청년만 따져도 대략 70만 명 정도인데요. 전북 전주시 인구가 65만 명 정도이고 경기도 남양주시 인구가 73만 명 정도 되는 걸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숫자가 고립 은둔 상태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5. 언론이 통계 해석을 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조사로 나타난 고립은둔 청소년들의 생활은 어떤가요?
- 1차 조사에서 고립 은둔 청소년 5484명을 선별했고 이 중 2139명이 2차 조사에 응했는데요. 72.3%가 18세 이하에 고립·은둔이 시작됐다고 응답했습니다. 65.5%는 친구 등 대인관계 어려움을 고립·은둔 이유로 꼽았습니다. 19~24세의 경우 “진로/직업 관련 어려움” 비율이 다른 연령대보다 높은 47.2%를 차지했습니다.
고립·은둔 기간에 대해선 2년 이상∼3년 미만이라는 응답이 17.1%로 가장 많았습니다. 1년 이상∼2년 미만 16.7%, 6개월 이상∼ 1년 미만 16.6%, 3년 이상도 15.4%나 차지했습니다.
고립은둔 청소년 중 40%에 가까운 응답자는 일상생활 복귀 후 재고립·은둔을 경험하고 있는 걸로 나타났습니다. 재고립·은둔 이유로는 힘들고 지쳐서 30.7%, 고립·은둔하게 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20.9%, 돈이나 시간 등이 부족해서 17.4%가 주된 이유로 꼽혔습니다.
6. 고립 은둔 상태가 지속되면 청소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줄 것 같은데요?
- 고립·은둔 기간에 주로 한 활동에 대해 조사했는데요. 유튜브, 넷플릭스 등 OTT 서비스 시청이 59.5%로 가장 많았고요. 다음으로 SNS, 커뮤니티 등 활동 48.0%, PC/모바일 게임 45.1%, 잠 41.7%, 특별히 하는 것이 없음(누워있기 등) 33.2% 등의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일상생활에 있어선 규칙적으로 식사하는 경우는 25.5%에 그쳤고,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한다고 응답한 비율도 56.7%에 달했습니다. 자기 관리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요. 일주일 넘게 옷을 갈아입지 않는다 7.8%, 목욕/샤워를 하지 않는다 5.9%, 세수/양치를 하지 않는다 4.3%, 내 방의 어질러진 물건들을 정리 정돈하지 않는다 46.0%로 나타났습니다. 자신의 건강 상태에 대한 평가도 부정적이었는데요. 자신의 신체건강이 안 좋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48.9%, 정신건강이 안 좋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60.6%로 높았습니다.
심리정서적으로도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요. 지난 7일간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됨 68.8%,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음 63.1%로 응답했습니다. 외로움 52.7%, 사람 만나는 것이 두려움 50.2%, 아는 사람을 만날 것을 생각하면 불안함 50.0%, 절망적인 기분이 들 때가 있음 59.5% 순으로 부정적 응답이 많았습니다.
7. 고립은둔 청소년과 그 가족은 정말 힘들겠는데요. 고립은둔 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은 어떻습니까?
-고립은둔 상태에 대해 본인과 가족이 어떻게 느끼는지를 묻는 항목이 있었는데요. 고립은둔 청소년들은 가족이 어떻게 나를 보고 있을까라는 항목에 대해 고립·은둔생활을 하는지 모른다(29.6%), 고립·은둔생활을 크게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27.2%) 별 관심이 없다(9.4%) 등 인식도가 낮은 경우가 66.2%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문제라고 생각함(27.3%), 갈등이 심각함(6.5%)로 심각성 인식과 개입 시도에 대한 응답은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고립은둔 청소년들은 71.7%가 현재 생활을 벗어나고 싶다고 느낀 적이 있으며, 55.8%가 벗어나기 위해 시도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현재 고립·은둔을 벗어나기 위해 주로 한 시도로는 일이나 공부를 시작했음(52.6%)과 취미활동을 했음(50.6%)이 가장 많았습니다. 인터넷에 검색함(35.6%), 심리상담을 받음(34.1%), 병원에서 진단 및 치료를 받음(30.3%), 가족이나 아는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함(17.9%) 등의 응답이 있었습니다.
8. 고립은둔 청소년들이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요?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 전문 상담인력이 있습니다. 검색창에 <청소년 1388>을 검색하셔서 내 주변 시설 찾기에서 연락처를 찾을 수 있습니다. 휴대전화에서 지역번호와 1388을 누르면 전문상담사의 상담을 받을 수 있고요. 문자와 SNS를 통한 상담도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