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날 특집 팩트체크] 노인에 관한 편견들
1. 어제 10월 2일이 노인의 날이었는데요. 오늘은 노인과 관련된 오해에 대해 팩트체크 해보겠습니다. 먼저 노인의 날이 만들어진 배경에 대해 좀 짚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 유엔 총회는 1990년에 국제노인의 날을 10월 1일로 정했는데요. 우리나라는 10월 1일이 이미 국군의 날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다음날인 10월 2일을 노인의 날로 정했다고 합니다. 이듬해인 1991년 UN은 <노인을 위한 원칙>을 세우게 되는데요. 내용은 자립, 참여, 돌봄, 자아실현, 존엄으로 구성이 돼 있습니다. 자립은 노인이 독립성을 누릴 수 있는 소득과 교육에 대한 접근이 보장돼야 한다는 내용이고요. 참여는 노인의 사회참여는 단순한 임금노동 이상의 것으로 일상생활의 영위, 지역사회 참여 등을 포함하며, 노인 자신을 위한 사회운동과 단체를 형성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돌봄은 각 사회의 문화적 가치체계에 따라 가족과 지역사회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아야 하며, 신체적·정신적·정서적 안녕의 최적 수준을 유지하거나 되찾도록 도와주고,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건강보호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자아실현은 "노인들이 가지고 있는 잠재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며, 지역사회에서 제공하는 교육, 문화, 종교, 여가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라는 내용이고요. 존엄성은 노인이 존엄과 안전 속에서 살 수 있어야 하며, 착취와 육체적 정신적 학대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나이·성별·인종이나 민족적인 배경, 경제적 수준의 정도 등에 따라 차별받지 않고 항상 공정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2. 35년 전에 노인의 날이 만들어졌군요. 그런데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적으로 노인에 대한 편견이 커지고 있는 것 같아요.
- 네 그렇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2021년 보고서를 찾아봤는데요. 1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했는데 혐오 표현을 접한 경험이 있었다는 응답자는 2년 전 같은 설문에 비해 6.1% 포인트 늘어난 70.3%로 나타났습니다. 오프라인 실생활에서 접한 혐오 표현의 대상으로는 노인(69.2%), 특정지역 출신(68.9%), 여성(67.4%), 페미니스트(64.8%) 등의 순으로 많았고요. 온라인에서 접한 혐오표현의 대상, 여성(80.4%), 특정지역 출신(76.9%), 페미니스트(76.8%), 노인(72.5%) 순으로 많았습니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고 이해하고 포용하기보다는 쉽게 배척하려고 하는 요즘 세태가 드러나는 조사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노인에 관한 널리 퍼져 있는 편견 몇 가지에 대해 사실 관계를 확인해 볼까 합니다.
3. 먼저 짚어볼 노인에 대한 편견은 뭔가요?
- 노인에게 덧씌워진 편견은 <허약함, 부담스러움, 노쇠함, 의존성, 사회에 기여하지 않음, 성가신 존재> 이런 것들인데요. 이런 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 대해 가장 먼저 알아둬야 할 점은 '전형적인 노인은 없다'라는 점입니다. 허약한 노인이 있을 수 있고,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노인이 있을 수 있고, 사회에 전혀 기여하지 않는 노인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걸 모든 노인으로 확장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죠.
노인은 사회에 전혀 기여하지 않는다, 거칠게 말하면 '노인은 쓸모없는 존재다' 이런 편견이 있는데요. 이런 편견은 데이터 하나만 제시하면 손쉽게 깨집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55~79세 고령층 경제활동 참가 인구는 1001만 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이 세대 전체 인구의 60.9%에 달하는 규모입니다. 2005년까지만 해도 고령층 경제활동인구는 500만 명을 밑돌았는데요.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며 고령층 인구 자체가 늘어나는 가운데 일하고자 하는 이들의 비율도 올라가면서 20년 만에 두 배 넘는 수준으로 늘어났습니다.
15세 이상 29세까지 경제활동 참가율은 49.5%로 나타났고, 경제활동 참가 인구는 301만 명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데이터만 봐도 '노인은 쓸모없는 존재다'라는 편견은 그야말로 쓸데없는 것이 되는 거죠. 앞으로 고령층 비율이 더욱 높아지면 국가 경제 활력을 위해서도 고령층이 더 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런 편견은 하루속히 사라져야 하겠습니다.
4. 노인은 쇠약한 존재다. 이런 편견도 많이 있는데요. 어떻습니까?
- 이것도 마찬가지로 성급한 일반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노쇠(老衰)는 늙어서 쇠약하고 기운이 별로 없음을 뜻하는 말입니다. 예전에는 늙으면 병들고 약해지는 걸 당연하게 여겼는데요. 현대 의학은 노쇠(frailty)를 일종의 병적 상태로 간주합니다.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정희원 교수와 빛고을 전남대병원 노년내과 강민구 교수는 2008~2020년까지 65세 이상 노인 1만 7,748명의 연도별 건강 동향을 분석했는데요. 노쇠한 노인의 비율은 2008년 41.1%에서 2020년 23.1%까지 거의 절반이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납니다. 노쇠하지 않고 건강하게 나이 든 고령층 비율 역시 2008년 28.7%에서 2020년 44.2%로 급증했습니다. 일상적인 활동에 어려움이 있는 비율은 42.2%에서 12.0%로 줄었고, 씹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노인의 비율은 2008년 59.4%에서 2020년 33.1%까지 줄어들었습니다.
노인들의 건강 상태가 과거에 비해 좋아진 게 통계로 확인이 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도 상당수 노인이 만성 질환에 시달리고 있기는 하지만 인류 역사상 유례없이 건강한 노인들이 많은 시대가 도래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5. 노인을 괴롭히는 질환 가운데 노인들이 가장 공포를 느끼는 게 치매일 것 같은데요. 치매에 관해 잘못 알려진 사실도 많다면서요. 치매는 치료가 불가능하다. 이렇게 알고 계시는 분도 많은데요. 어떻습니까?
- 네. 치매는 진행이 되면 인지기능이 저하되면서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지는 증상인데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혹시 치매에 걸릴까 굉장히 두려워하죠. 그리고 치매는 일종의 사형선고라고 생각을 하는 분들도 많은데요. 치매는 치료가 안 되는 병이라고 생각해서 말이죠. 그런데 치매는 굉장히 다양한 원인으로 발병을 하고요. 일부는 원인을 치료하면 치매 증상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치매의 원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질환은 알츠하이머병과 뇌혈관 질환으로 인한 혈관성 치매인데요. 알츠하이머병 같은 퇴행성 질환으로 인한 치매는 아직까지 확실한 치료법이 나와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뇌에 물이 차는 뇌 수두증이나 양성 뇌종양, 갑상샘 질환, 신경계 감염, 비타민 부족증 등에 의한 치매는 전체 치매의 10~15% 정도를 차지하는데, 이것들은 완치될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 많은 혈관성 치매는 당뇨병이나 고혈압과 같이 뇌혈관의 동맥경화증을 초래하는 병으로 인해 뇌졸중을 반복해서 앓게 되어 생기는 치매인데요. 이런 혈관성 치매는 원인 질병을 치료하고 뇌졸중의 재발을 예방함으로써 더 이상 진행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6. 나이가 들면 기억력을 포함한 인지 능력이 떨어진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정말 그렇습니까?
- 나이가 들면 육체뿐만 아니라 인지기능도 쇠퇴합니다. 인지기능은 외부 환경으로부터 정보를 받아들이고 저장하며 사용하는 기능인데요. 기억, 주의력, 시공간 능력, 언어, 문제해결 및 실행 기능 등이 포함됩니다. 이런 기능들은 질병과 무관하게 나이가 들면서 저하를 나타내는데요. 이런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뇌 속의 화학물질이나 신경 세포 자체의 변화, 뇌에 축적되는 독성 물질, 뇌 혈류 변화, 유전적 차이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노화가 인지기능에 부정적인 영향만을 미치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연구에 따르면 노년층은 청년층보다 어휘력이 풍부하고 단어의 의미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을 갖고 있다고 나타났습니다. 또한, 노년층은 오랜 세월 축적된 지식과 경험을 통해서 쌓은 노하우를 갖고 있는데요. 나이가 들면서 인지기능에 변화가 생기더라도, 노년층은 평생 즐겨왔던 많은 활동을 여전히 즐길 수 있습니다. 여전히 새로운 기술을 배울 수 있고, 새로운 기억을 형성할 수 있으며, 어휘력과 언어능력을 향상할 수도 있습니다.
7. 치매를 예방해 준다는 게임도 많이 나와있고, 어르신 중에는 치매 예방에 화투놀이가 좋다고 알고 계신 분들도 많습니다. 어떻습니까?
-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미국 미네소타대 연구진이 2017년 발표한 "인지 훈련이 인지 저하를 예방할 수 있을까?: 체계적인 검토"라는 논문이 있는데요. 결과를 보면 인지 장애가 없는 노인들은 훈련을 받은 인지영역에서 개선을 나타냈습니다. 기억력 훈련을 받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기억 관련 과제에서 점수를 더 잘 받았다더라 이런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화투를 일상적으로 친다고 해서 전반적인 인지 능력이 개선되고 치매가 예방된다는 것은 현재로서는 근거 없는 지나친 주장입니다.
미국 국립노화연구소는 "컴퓨터 및 온라인 게임을 하면 기억력 및 기타 사고력이 향상될 수 있다는 주장에 주의하십시오. 현재 시중에서 판매되는 컴퓨터 기반 두뇌 훈련 애플리케이션이 임상 시험에서 나타난 것과 동일한 인지 능력 향상 효과를 보인다는 증거는 충분하지 않습니다."라고 밝힙니다. 그러니까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면서 뭔가를 판매하는 상술에는 속지 마시고, 전반적인 인지기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좋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삶의 목표를 세우고, 외국어를 배운다든지 자격증을 취득하는 등의 적극적인 생활과 두뇌 활동을 계속하는 것이 병의 진행을 늦추고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특히 글을 읽고 쓰는 창조성을 요구하는 뇌 활동이 효과가 좋다고 하고요. 저녁에 잠들기 전에 오늘 하루 있었던 일과들을 돌이켜보며 매일 일기를 쓰는 게 많이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특히 청력 손실이 치매 발병 위험을 높이는 요소로 알려져 있는데요. 보청기는 치매 위험이 높은 노인의 인지 저하 속도를 3년 동안 거의 50%나 감소시켰다는 연구도 나와있습니다. 청력 손실을 치료하는 것은 취약 계층의 치매 위험을 낮추는 안전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게 미국 국립노화연구소의 입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