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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사비 논문 철회가 남긴 것

다이어트 방법 유행을 따라야 할까?

by 선정수

1. 최근 다이어트 하는 사람들에게 애플 사이더 비니거, 줄여서 '애사비'가 큰 인기를 끌었는데요. 최근 이 애사비 다이어트와 관련된 논문이 철회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죠. 오늘 팩트체크 해볼 내용은 이 애사비와 논문철회와 관련된 정보입니다. 먼저 맥락을 좀 살펴보죠.

- 애사비, 애플 사이다 비니거는 사과를 통째로 으깨 만든 즙을 자연 발효시킨 식초를 말합니다. 주로 요리에 쓰는 맑은 사과식초와는 달리, 여과와 살균 과정을 거치지 않아 ‘초모(Mother)’라 불리는 효모와 유익균 침전물이 그대로 남아있는 게 특징입니다. 건강 효과의 핵심이 바로 이 ‘초모’에 있다고 알려지면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체중 감량, 피부 건강, 혈당 개선 등의 기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많이 나왔습니다.

유명 의학저널인 British Medical Journal을 운영하는 영국 의학저널(BMJ) 그룹은 최근 자사 학술지 ‘BMJ 영양·예방 및 건강(Nutrition, Prevention & Health)’에 지난해 3월 게재된 ‘과체중 비만인 레바논 청소년과 청년의 체중 관리를 위한 애플 사이다 비네거’ 논문을 공식 철회한다고 밝혔습니다. 원 논문을 살펴보면 연구진은 레바논에서 과체중 및 비만인 120명을 모집했습니다. 참가자들은 12주 동안 5, 10 또는 15mL의 애사비를 투여받는 중재군과 위약을 투여받는 대조군에 무작위로 배정되었습니다. 0, 4, 8, 12주 차에 인체 계측 지표, 공복 혈당, 중성지방, 콜레스테롤 수치를 측정했습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12주 동안 애사비를 매일 섭취한 결과, 체중은 6~8kg, 체질량지수는 2.7~3.0포인트 감소했습니다. 연구진은 "애플 사이다 비니거가 비만 환자의 비만 및 대사 장애와 관련된 대사 지표를 개선하는 데 잠재적인 효과가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 결과는 비만 관리에 있어 애플 사이다 비니거를 식이 중재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근거 기반 권고안을 제시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라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2. 논문 내용 그대로라면 굉장한 다이어트 효과인데요. 관련 마케팅도 많았다면서요?

- 해당 논문은 ‘하루 한 잔으로 3개월 만에 최대 8kg 감량’이라는 문구로 유명해졌습니다. 결과적으로 ‘애사비’ 유행에 기름을 끼얹었는데요. 논문 발표 직후 영국의 BBC와 가디언지를 비롯해 미국 CNN 등 전 세계 주요 언론이 관련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이 논문은 발표 직후부터 최근까지 애사비 관련 제품 판매를 위한 마케팅 도구로도 적극 활용됐는데요. 몇몇 온라인 쇼핑몰 제품 안내에는 ‘8kg 다이어트 애사비’ 등 논문 내용을 활용한 문구가 아직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건강 유튜버와 인플루언서들은 ‘애사비 다이어트 과학적 효과’ 같은 콘텐츠를 제작해 특정 제품을 추천하거나 공동 구매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논문이 발표된 직후 학계에선 비판이 쏟아졌는데요. 연구에 근본적인 결함이 있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3. 논문이 철회된 배경이군요. 어떤 비판들이 있었나요?

논문을 리뷰한 한 연구자는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과식초가 오젬픽과 같은 GLP-1 작용제 약물만큼 체중 감량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지적했는데요. 그는 이 결과가 그대로 적용된다면 "경제적, 공중보건적 영향은 사실상 전례 없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한 마디로 터무니없다는 뜻이죠. 또 해당 연구가 공개 임상시험 등록을 거치지 않은 점도 지적됐는데요. 이런 장치는 연구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해 매우 중요합니다. 비판자들은 논문 저자들에게 검증을 위한 추가 데이터를 요청했지만 아무런 회신을 받지 못했다고도 밝혔습니다.

BMJ 그룹은 성명을 통해 해당 논문을 독립적인 통계학자에게 보내 데이터를 검토하게 했으며, 그들은 연구자들이 보고한 결과를 재현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밝혔습니다. 통계학자들은 또한 "데이터 세트의 불규칙성"을 발견했으며, 참가자 데이터에 대한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논문 저자들은 '정직한 실수'였지만 출판사의 논문 철회 결정에 동의한다고 밝혔습니다.


4. 논문을 게재한 BMJ는 유명 학술지로 알려져 있는데요. 학술지에 게재됐던 논문이 철회되면 명성에 먹칠을 하게 되는 것 아닌가요?

- 논문이 투고되면 심사와 동료 리뷰를 거쳐 게재되는데요. 모든 과정에서 철저하게 검증을 거쳐 완벽한 상태로 논문이 나오면 좋겠죠. 그런데 이렇게 논문이 학술지에 실린 이후라도 추가로 검증이 되고 논문이 철회되는 것은 그 나름대로 시스템이 건강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BMJ 그룹은 이번 철회가 "투명성을 강화하고 과학적 과정의 정직성을 옹호하는" 정책의 일환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접근 방식이 국제적으로 널리 주목을 받는 연구에 특히 중요하다고 덧붙였는데요. BMJ는 "이런 접근 방식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과학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라고 전했습니다.

과학계에서 논문 철회 사건은 사실은 드문 일은 아닙니다. 국내 사례로는 2000년대 초반 세계적인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를 통해 발표된 황우석 박사의 인간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데이터 전체가 조작된 사실이 드러나며 2006년 모두 철회됐습니다. 해외 사례로는 1998년 영국의 의사 앤드루 웨이크필드가 의학 학술지 ‘랜싯’에 발표한 논문이 있는데요. 웨이크필드박사는 당시 논문을 통해 MMR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발표 직후 전 세계에 백신 공포를 일으키는 등 파장이 컸지만 이후 그가 데이터를 고의로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 2010년 공식 철회됐습니다.


5. 많은 분이 가장 관심을 가질 만한 질문이기도 한데요. 그래서 애사비는 체중 감량에 효과가 있는 겁니까 아닙니까?

- 전문가들은 애사비의 건강상 이점은 제한적이라는 입장입니다. 미국 메이요 클리닉은 애사비의 기능성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습니다. 메이요 클리닉은 "사과 식초는 체중 감량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으깬 사과로 만든 이 발효 주스가 체중 감량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는 아직 없습니다."라고 단언합니다. 사과식초가 체중 감량 등 건강에 여러 가지 효과가 있다며 식사 전에 소량을 마시거나 보충제로 섭취하면 배고픔을 조절하고 칼로리를 소모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밝힙니다. 관련 연구가 없거나 근거가 부족하거나 연구대상이 너무 작다는 이유에섭니다.

특히 애사비 사용에는 몇 가지 위험이 따른다고 강조하는데요. 식초는 산성도가 높아 목에 자극을 줄 수 있으며, 치아 바깥쪽 법랑질을 약화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 이뇨제 등 고혈압 치료제와 당뇨병 치료제인 인슐린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합니다.

메이요 클리닉은 다이어트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알아두시면 정말 좋을 것 같은데요. "체중 감량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명심하세요. 유행하는 음료나 보충제만 먹는다고 해서 목표 체중 달성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음식과 음료에서 섭취하는 칼로리보다 더 많은 칼로리를 소모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균형 잡힌 식단을 섭취하고 신체 활동을 늘리는 데 집중하세요. 현재 활동량이 부족하다면 의료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시작할 수 있습니다."라고 밝힙니다.


6. 수많은 건강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는데요. 믿을만한 건강 정보를 가려내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 요즘에 블로그를 가장한 광고글이 정말 많은데요. 의료 관련 전문직 종사자의 체험기 형식을 빌고 있고, 글 쓴 사람이 직접 여러 가지 논문을 찾아봤다면서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일단 이런 블로그 글을 접하게 된다면 내가 어떻게 이 글을 보게 됐는지 되짚어 보시면 좋습니다. 뉴스나 커뮤니티 등 다른 걸 보다가 우연히 광고를 클릭했는데 이런 블로그로 빨려 들어갔다면 100% 광고라고 생각하시고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게 좋습니다.

정말 믿을만하고 그 제품이 꼭 필요한 것 같다고 생각하시면, 블로그가 인용하고 있는 논문의 제목과 저자를 확인해서 그 논문이 검색되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일부는 논문 내용을 인용했다면서 사진을 흐릿하게 처리해 원문을 확인할 수 없도록 해놓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논문이 검색된다고 한다면, 해당 주장이 게재된 저널의 신뢰성, 저자의 자격, 공개 임상 시험 데이터, 이해 상충 유무 등을 확인하는 게 중요합니다. 연구 자금을 누가 댔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연구가 어떻게 수행되는지, 혹은 연구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합니다.


7. 요즘에 유튜브를 보면 의사가 직을 걸고 효능을 보장한다는 제품 광고가 많은데요. 이게 상당수 허위라면서요?

- 최근 들어 인공지능(AI)으로 만든 영상을 활용한 광고가 각종 온라인 플랫폼에서 확산되고 있습니다. 실제 의사나 전문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의사 등으로 꾸민 가상 인물을 만들어 제품의 효능을 보증하는 방식으로 소비자를 속이고 있는데요. 작년에 식약처가 온라인상 허위·부당광고를 적발한 건수는 ▲식품 1만 5027건 ▲건강기능식품 5475건 ▲의약품 1만 6051건 ▲의약외품 3632건 ▲화장품 2680건 ▲의료기기 4075건으로 집계됐다. 전체적으로는 9만 6000여 건에 이릅니다.

그동안에는 일반인이나 대역 배우를 활용해 만든 광고가 많았는데요. 최근에는 AI 기술을 활용해 가상의 의료인을 만들어 소비자에게 거짓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AI 기본법'이 내년 1월부터 시행될 예정인데요. 법이 시행되면 AI로 만들었다는 표시를 광고에 넣어야 된다고 합니다. 그전까지는 의사가 나와서 "제 직을 걸고 보장합니다" 이런 식으로 광고하는 제품은 사지 않으시는 게 현명할 것 같습니다. 진짜 의사가 이런 광고를 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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