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힘겹게 오른 사땁띠 익스프레스는 인도 내에선 꽤 고가의 열차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기차의 승객들은 우리에게 거의 관심도 없었다. 흘깃 보는 사람정도야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공항전철에서 만큼 우리 얼굴에 눈빛으로 레이져를 쏘는 이는 없었다.
도대체 몇시간을 깨어있던 것일까? 슬슬 피곤함이 몰려왔다. 공항에서 쪽잠을 청해보긴 했지만 공항시그널 노래만 외우다 나왔을 뿐이었으니 무사히 기차에 오르고 나서야 긴장이 풀려 온몸에 힘이 쭉 빠져버린 탓에 잠깐 눈을 붙여볼까 했지만 몸만 피로할 뿐 잠이 오진 않았다. 아직 긴장감이 덜 풀린 탓도 있었을 것이고 내려야할 정차역을 놓치게 되진 않을까하는 불안감이 가장 큰 이유였다.
사땁띠'익스프레스' 이름 답게 3시간 만에 우리를 아그라칸트 역에 내려주었다. 우릴 가장 먼저 맞이해준건 안깨 낀 듯 뿌연 지독한 아그라의 미세먼지였다. 이래서야 타지마할이 제대로 보이기나 할런지...좀 더 선명하고 맑은 날에 타지마할을 보고 싶었는데 아쉽지만 휴관일에 와서 헛탕 칠뻔 했던 원래 계획을 생각하면 이런 푸념 또한 사치같이 느껴졌다.
미세먼지의 반갑지 않은 환영인사를 뚫고 우린 가방보관소로 향했다. 15kg의 가방이 짓누른 이 피로감에게서 드디어 해방되는구나. 카메라와 지갑, 물, 핸드폰 이외의 짐은 반입할 수 없었기에 가방보관소는 필수코스로 들러야 하는 지점이었다.
아그라칸트역 6번 게이트에 위치한 가방보관소는 굉장히 낡은 가방보관소였는데 손님은 우리 두명과 어린이 팔뚝만 한 쥐 한마리가 전부였다. 45리터, 35리터 배낭 두 개, 보스턴 백 하나를 넣고도 공간이 남는 넉넉한 캐비넷에 우리의 가방을 넣고 준비해 간 열쇠로 캐비넷을 잠그자 직원분이 그 문 사이에 종이 하나를 꼽아 두시는 모양새가 아무래도 도난 시도나 도난을 알기 위한 방편같은데, 약간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순 없지만 그저 내 작은 자물쇠에게 운명을 맡기는 수 밖에
역 밖으로 나서자 먹잇감을 발견한 릭샤기사들이 자석에 이끌리듯 몰려들며 사방에서 타지마할? 타지마할?이라고 외치는 고성이 우리 귓가를 때려댔다. 가장 먼저 눈이 마주친 릭샤기사는 150루피를 불러왔다.
역 앞이 꼭 답은 아니었기에 오히려 역을 좀 더 벗어나 바가지를 덜 씌우는 릭샤를 찾아가려로 했지만 좀 처럼 떨어지지 않는 호객꾼에게 그가 부르는 금액의 반을 뚝 잘라 80루피를 불렀다.
본드 붙인 듯 절대 떨어지지 않을것 같던 릭샤기사는 단번에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그 뒤로도 수 많은 릭샤기사들이 우리에게 들러붙었고 80루피라는 특효약으로 죄다 단번에 떨어져나가는 와중에 한명만이 80루피에 가겠다며 나타났다. 사실 내심 속으로는 100루피정도의 릭샤를 찾을 생각이었기에 갑자기 80루피를 덥썩 무는 그가 의심스러웠다.
사실 인도에서 가장 힘들고 피곤했던건 극심한 미세먼지도 가끔 코를 찌르는 냄새도 불청결한 위생도 아닌 계속해서 의심의 끈을 놓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고 매순간 의심에 의심을 거듭하는건 정신적 학대에 가까웠다 몇일 안되는 여행기간 동안 매일 날카롭고 예민해져가는 내가 느껴질만큼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한편으론 몇십에서 몇백루피였다. 여행와서 얼마 안되는 돈에 연연하는게 아닌가 싶었지만 바가지를 씌우는걸 뻔히 알면서도 속아 넘어가주는게 과연 나하나로 끝날 일일까? 그저 바가지 씌워지는 것 하나로 끝날까? 무엇하나 마음 놓을 수는 없었다.
사전조사에서 수없이 보아왔던 릭샤기사들의 사기행각과 말바꾸기 사례들을 너무 많이 읽고 온 탓도 있지만 이미 상상도 못했던 공항내 인포데스크에서 뻥을 치는 나라인데 누구 말을 믿을 수 있겠는가. 몇번이고 말을 바꾸지 않을것을 약속받은 뒤에야 그의 릭샤에 올랐다. 생각해보면 이런 약속이 그닥 효력이 있는것 같진 않지만 그 땐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80루피 약속을 얻어낸 채 우리가 탄 릭샤는 타지마할 남문으로 향했다. 그 와중에도 혹시 멀리 돌아가거나 혹은 최악의 상황일 경우 알지도 못하는 곳에 떨궈놓고 고액의 릭샤비를 요구하며 위협당했다는 후기가 떠올라 구글맵어플을 켜놓고 실시간으로 감시의 끈을 놓지 않았다. 다행히 우리의 릭샤는 남문을 향해 제대로 이동해주었으나 이동중 마시는 매캐한 공기는 지독히도 우릴 괴롭혔다.
그렇게 미세먼지를 덮어쓰며 드디어 도착한 남문 앞, 바로 남문이 보이는 위치는 아니라 50m쯤 떨어진 좁은 골목길 앞에 우리의 릭샤가 멈추어섰다. 릭샤 기사에게 100루피를 건냈다. 그 정도는 예상했던 금액이기에 사실 잔돈을 주지 않아도 그러려니 할 생각이었다. 다른 길로 돌아가거나 혹은 외딴 곳에 우릴 떨궈놓고 위협하지 않은게 어디인가 싶은 마음도 있었기에 무사히 도착한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발길을 돌리려 할 때, 100루피를 받은 릭샤기사가 가진 잔돈이 이것 뿐이라며 우리에게 19루피의 잔돈을 건냈다.
인도 릭샤기사에 대한 지독한 불신으로 그에게서 의심을 끈을 놓지 않았던 앞전의 내 의심들이 참 머쓱해지는순간이었다.
짧고 좁은 작은 골목길을 지나 매표소 앞에서 2000루피를 내고 두명분의 티켓을 구매했다. 자국민은 40루피지만 외국인에겐 짤 없다. 인당 2만원에 가까운 고액의 입장료였지만 앙코르와트때는 1주일에 3회 입장할 수 있는 입장권이긴 하지만 4만원이나 냈던것에 비하면 뭐 준수한 수준이었다.
타지마할 입장에는 몇가지 절차가 필요했다. 우선 티켓을 사는게 첫번째이고 두번째는 남녀 줄로 나뉘어 가방수색과 몸수색을 해야하는 과정이 남아있었다. 몸 수색은 여자분이 몸을 더듬어 보는걸로 끝인데 가방 검사가 꽤 꼼꼼했다. 내 앞에 여자는 대충 보고 넘어가는것 같았는데 내 가방은 작은 주머니 하나하나 초콜릿통까지 열어보며 검사가 삼엄했다. 그리고 문제의 초콜릿과 기차에서 받아온 쿠키는 음식반입은 금지라며 앞에 있는 캔디샵에 맡겨두고 오라며 나를 돌려보냈다.
내 몸이 돌아서 나오자마자 나를 향해 눈을 번뜩이는 타지마할 앞 상점 호객꾼들과 눈이 마주쳤다. 부담스러워 몸을 틀어 우리에게 생수와 신발덧신 비닐을 나눠주던 할아버지께 찾아가 내밀었더니 자연스럽게 받아 챙겨주셨다.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우리였지만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그런 순간들이 바로 그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