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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첫차에서 신병 수료식까지

씩씩하게 새로운 세계로 건너가다

by 이디뜨

아들이 7살이었던 어느 여름날, 동네에 있는 태권도 학원을 등록했다.

태권도 학원 차량에 처음 태워 보내던 날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새하얀 도복을 입은 아들의 손을 잡고 태권도 차량이 서는 장소에 갔다.

대기 장소에는 빨간 띠, 검은 띠, 노란 띠를 맨, 아들보다 키가 훌쩍 큰 초등학생 형아들이 차량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잘 적응하려나 걱정을 하는 사이에 노란색 버스가 도착했다.

차에 타기 직전에, 사범님 앞에 줄을 선 아이들은 다 같이 씩씩한 큰소리로 무슨 구호를 외쳤다.

예를 들면 이런 구호였다.

"금호 태권도! 사범님 반갑습니다! 잘 배우겠습니다. 태권!"

태권도 학원 수강생들의 약속이자 차에 타기 직전의 규칙 같은 것이었다.

한 발치 물러서서 무리 속에 있는 아들의 옆모습을 지켜본 나는, 그간의 걱정이 눈 녹듯 사라졌다.

아들은 당황하지 않고 '립싱크'를 씩씩하게 하더니 엄마를 돌아보지도 않고 학원 차량에 올랐다.

구호 내용을 모르는, 등원 첫날인 아이일 거라는 것은 나만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넉살 좋은 아이가 아니었기에 더욱 놀랐다.

그렇게 씩씩하게 시작했던 태권도는 중학교 3학년까지 아들의 최애 운동이 되었다.

그날의 립싱크 이후로, 나는 어떤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생각보다 씩씩하게 적응하네.'




추석 때문에 한주가 길어져서 7주 만에 아들의 수료식이 열렸다.

수료식이 시작되고 군악대의 연주에 맞춰 9소대부터 씩씩하게 등장했다.

나는 아들이 속해 있는 3소대의 등장에 맞춰 영상촬영을 시작했고, 무리 속에서 아들을 찾기 위해 기린처럼 목을 빼고 시선을 고정시켰다.

몇 초 뒤, 둘째 줄 가운데 익숙한 얼굴옆태가 눈에 들어왔다.

"봤다 봤다. 찾았다!"

눈물로 입대시킨 스물하나 아들은 어느새 씩씩한 군인이 되어 내 눈앞에 있었다.

군복을 입고 베레모를 쓴 자태는 당당했고 눈빛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하얀 면장갑을 끼고 '단결!' 하는 손끝은, 그간의 고된 훈련을 말해 주듯이 각이 잡혀 있었다.


아들은 수료 기간 중간에 감기몸살에 호되게 걸려서 아침점호 시간에 쓰러지기까지 했었다.

통신보약(주말 통화) 시간에 이 소식을 듣고 해 줄 수 있는 것은 밥이랑 약 잘 먹으라는 말밖에 없었다.

사격이며 각개전투, 행군까지 무사히 마치고 늠름한 군인이 되어 있는 아들을 보니, 기특함을 넘어서 벅찬 감정이 올라왔다.

엄격한 훈련과 철저한 규율 속에서 단련된 257명의 훈련병들이 모두 내 아들인양 애틋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제창, 묵념, 상장 수여식 등의 절차를 거쳐 드디어 아들 가까이로 갈 시간이 주어졌다.

태극기 배지와 이등병 계급장을 달아주러 아들에게 달려갔다.

얼음! 하고 있던 아들은 차렷자세를 풀고 활짝 웃으며 우리를 안아 주었다.

"이병 ㅇㅇㅇ! 감사합니다!"




만남의 기쁨과 함께, 지난 시간의 기억이 빠르게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다.

아들은 방문을 닫고 말수를 줄인 사춘기를 거쳐, 기대와는 다른 대학 생활에 홀로 마음고생도 했던 시기를 지나서 입대를 했다.

평소 '웃상(잘 웃는 얼굴)'인 사람들이 부럽다고 한 아들이었다.

본인이 특별히 웃상이 아니어서가 아니라 그동안 스스로 형성했던 자기 이미지 속에서, 표정이 적은 사람으로 살아온 이었다.

오랫동안 잘 보지 못했던 활짝 웃는 모습으로 동기들과 수고했다고 격려의 포옹을 나누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형언할 수 없이 기뻤다.

해맑던 어린 시절의 얼굴이 선물 같은 순간에 무지개처럼 나타나 반짝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백 마디 말이나 걱정보다는, 고생이 디폴트인 '군대'라는 환경이 아이를 변화시켰는지도 모르겠다.




아들은 최전방 수색대대에 자대배치를 받았다. 최전방 중의 최전방인 비무장 지대 DMZ 안에서 GP(Guard Post) 초소에 머물며 경계 근무를 서는 보직이다.

GP는 면회, 외출, 외박은 제한되고 휴가일수는 많은 편이라고 한다.

아들은 의도치 않게 지원하게 되어 GP병이 되었지만, 이미 결정된 사항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어리게만 보았던 아들은 이미 준비된 대한민국 육군 그 자체로 변해 있었다.

수료식 후 가족들과 몇 시간의 아쉬운 외출을 끝내고 아들은 씩씩하게 복귀를 했다.

하얀 도복을 입고 모르는 구호를 립싱크하며 씩씩하게 학원차에 올랐던 그때처럼.

"엄마! 걱정 하덜덜 하지 마세요."


비록 최전방 GP에 있지만, 수료식 날 본 단단한 눈빛과 씩씩한 걸음처럼 아들은 묵묵히 잘 해낼 것이라 믿는다.

제대까지 D-500, 아말다말 무사무탈하게 건강히 군생활을 잘하고 때까지 화이팅!

연병장에서 아들의 등장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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