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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북선생 Jan 15. 2021

70점


“70점 넘었네!! 진짜 잘했어!!”     


  A의 성적표를 확인하고 나는 기뻐서 말했다. 그러나 A의 얼굴엔 그늘이 가득했다. 나는 아이가 기대 이상의 무엇을 바란 건가 싶었다. 아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A는 이전 시험에서 30점을 받던 아이였다. 학년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성적표에서 이제 평균점수에 준하는 성적으로 올랐으니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하고 기뻐할 일이었다. 이전에 너의 성적에서 거의 두 배가 되었으니 정말 잘했다고 했다. 아마 다음엔 더 80점도 넘을지도 모른다고 너무너무 훌륭하고 잘했다고 나는 수없이 말했다. 그러나 A는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가 화낼 거예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이는 분명 이전 시험의 두 배의 성과를 냈다. 아무리 중학생이라고 하지만 30점에 있던 아이가 70점이 되는 건 노력이고 성과다. 그러나 뒤이어지는 아이의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엄마가 90점 넘으라고 했어요.”          


  하위권 아이들을 맡아서 지도했던 적이 있었다. 학습 태도도 엉망이고 공부와는 완전히 담을 쌓고 사는 아이들. 30~40점을 받는 중학생들이라면 학교 수업을 기본적으로 안 듣거나 학습부진아이다. 더욱이 도구 과목인 국어가 그 모양이라면 다른 과목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학창 시절에 성적이 늘 좋았던 것은 아니지만 50점 아래의 점수는 생각도 못 해봤던 탓에 처음엔 너무 이해되지 않았다. 불성실함. 게으름. 아니면 철없는 반항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시간만 채우는 수업이 최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각자의 수준에 맞는 학습 과제를 주고 그것을 소화시키면 남은 시간은 놀아도 된다고 했다. 단, 다른 사람의 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그리고 무엇이든 질문은 수백수천도 겁내지 말고 하라고 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잘 질문하지 않는다. 

  우수수 쏟아지는 오답을 보면서 나는 아이들에게 되물었다. “왜 3번인데?” “왜?” “왜?” 아이들 입에서 좀 짜증 섞인 답이 나올 정도로 물었던 적도 있었다. “대충 찍지 마. 차라리 모르면 나에게 물어.” 그렇게 몇 번을 하다 보면 아이들이 이제 질문을 시작한다. 하위권 친구들이라서 단어의 뜻을 모르는 경우가 제일 많았다. 하루는 그 아이들의 학부모 한 분이 학원비를 내러 오셨다가 나와 인사한 적이 있었다. 사실 워낙 하위권 아이들이라서 학부모님 만나는 게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그분은 웃으며 인사하시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애가 국어 선생님을 좋아해요. 아이가 수업을 좋아해서 너무 다행이에요.”


  공부와 아예 담을 쌓고 사는 아이를 보면서 그 학부모님은 그간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그나마 아직 부모님이 무서워서 학원을 꾸역꾸역 다니고야 있지만 분명 조금 더 크면 그마저도 안 할 거라고 생각하셨던 거 같았다. 나와 웃고 떠들면서 조금씩이라도 계속한 효과는 당연히 있었다. 30점을 받던 아이가 70점을 받았고 아이들은 정말이지 즐거워했다. 그 뒤로 그 반에선 80점도 90점도 받는 아이들이 하나둘 나왔다. 물론 내내 70점대에 머물러 있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학원에 나오는 일을 즐거워하고, 한 과목에서 자신감이 붙으니 본인들이 보기에 만만한 다른 과목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보통은 그래도 만만해 보이는 암기과목에 도전한다. 체육 수행평가는 만점을 받았다며 나에게 자랑하고, 음악이나 기술 가정 같은 과목들에서 이전보다 오른 성적을 받고는 나에게 쪼르르 달려왔다. 그다음엔 한국사나 사회, 과학으로 아이들은 외연을 조금씩 넓혔다. 물론 그게 어떤 어른에게는 정말 미미해 보였겠지만, 나는 그 아이들 인생에 그보다 유의미한 결과는 없다고 생각했다.      


  바로 30점에서 70점으로 성장한 그 반에 남학생 B가 있었다. 아이를 지도하면서 흔히 말하는 공부 머리는 정말 없는 아이라고 생각했지만, 노력으로 그래도 70점은 넘길 수 있었다. 그 학원에서의 인연이 끊어지고 2년이 다 지났을 무렵 어느 날 B에게 연락이 왔었다. 정말 너무 뜬금없는 연락이라 날 왜 보자고 하나 싶었었다.     


“저 요리 배워요.”     


  B는 쑥스럽게 웃으면서 나에게 조리사 복을 입은 제 사진을 보여줬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던 아이는 아무래도 공부는 자기 길이 아닌 거 같아서, 학교에서 연계하는 프로그램으로 요리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저 거기서 완전 엘리트예요. 거기 선생님들이 다 저 칭찬해요. 저 결석도 한 번도 안 했고, 수업도 엄청 열심히 들어요.”     


  말이 이렇게 많았나 싶게 그 요리학교 이야기를 B는 줄줄 했다. 중요한 건 자기가 거기서 엄청 열심히 아주 잘하고 있다는 거였다. 나는 잘했다고 했다. 너무너무 기특하다고 멋지다고 했다. 어쩜 이 조리사 복도 이렇게 근사하게 어울리냐고 역시 너라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칭찬을 했다. B는 쑥스럽게 웃었다. 그게 다였다. B는 나를 만나서 딱 그 말을 하고 싶었던 거였다. 그 뒤로 가끔 나는 B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보았다. 내게 보여주었던 그 조리사 복을 입은 소년이 청년이 되는 것을 지켜보며 응원했다.     


  나는 그래서 ‘70’을 가능성의 점수로 봤다. 아이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고 용기를 주는 가능성의 점수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나는 A에게 다시금 말했다.      


“이번엔 국어가 70이잖아. 다음엔 영어도 70을 받을 거야. 또 열심히 하면 국어가 80, 90이 될 거야. 엄마께는 다음엔 80점도 90점도 받을 거라고 꼭 말씀드려. 너 할 수 있어. 국어 이만큼 했잖아. 진짜야. 할 수 있어.”


  그날 A는 엄마께 잘 이야기하지는 못했던 거 같다. 그래도 그 뒤로도 A가 절대 소홀히 하지 않는 과목은 국어였고,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도 나였다. 나는 늘 그때를 생각하면 A의 어머니가 그 70점을 칭찬해 주셨다면... 하고 생각한다. 그날 축 처진 어깨로 계단을 내려가던 A의 뒷모습이 아직도 눈에 밟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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