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자유학기인지...
지난해 학기 마무리를 앞두고 각 중학교에서는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설문이 돌았다. 중학교 1학년의 자유학년제에 관한 설문이었다. 여러 학교들에서 이런 설문들이 오가는 것을 보았고 그 결과가 새 학기에 어떻게 반영이 될지 모두의 관심이 쏠려 있었다.
입시 강사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시험이 사라진 중학교 1학년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주 단순한 논리로 시험이 없어지니 아이들이 공부를 하지 않는다. 비교적 교육에 관심이 많은 가정들은 사교육을 통해서 아이들의 학습을 유지하시지만, 시험이 없으니 객관적인 자녀의 수준 파악을 못해서 교육에 소홀해지시거나, 초등학생때와 마찬가지로 생각하고 아이들을 관리하는 경우도 꽤 있다. 문제는 이 아이들이 중학교 2학년에 올라가면 생긴다. 생의 첫 시험이라는 압박감을 느끼는 것은 모두에게 해당되는 일이라면, 중1 과정이 제대로 다져지지 않아서 중2 과정을 따라오지 못하는 아이들이 발생한다. 가정에서 아이를 최대한 관리했다고 생각하셨던 댁에서도 중2 성적표를 들고 충격을 받는 일을 종종 본다.
객관적인 지표로 말을 하자면, 우리 학원의 고등부 아이들은 최상위가 아니다. 물론 지역의 명문을 다니는 아이들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너무도 평범한 보통의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며, 대다수가 중위권정도의 아이들이다. 그런데 이 아이들 중에서 중등부 때부터 우리와 함께 올라온 친구들을 들여다보면, 대부분이 인접한 A 중학교 친구들로 A 중학교에서는 상위권을 하던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이 중학교에 다닐 때, 아이들 입에서 종종 우리 학원이 좀 빡세다는 소문이 학교에 났다는 말을 하고는 했다. (지금도 중학생 아이들은 가끔 이런 소리를 한다.) 아이들 말대로 빡세게 시켜서 A 중학교의 상위권을 만들어 놓아도 우리 학원의 어느 선생님도 그 아이들을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정도여도 고등에 올라가면 아이들이 중위권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우리 학원이 있는 지역에서 A 중학교는 중하위 그룹에 속하는 수준이다. 오래 전 내가 이 지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낼 때에도 A 중학교는 공부를 잘하는 중학교는 아니었다. 때문에 A 중학교에서 상위권을 하던 친구들도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상위권을 만들기가 어렵다. 그런데 중학교 1학년 자유학년제로 인해서 수년간 시험이 없다 보니 A 중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과 부모님들 중에선 상황파악이 늦어지는 경우가 꽤나 자주 발생한다. 신도시가 아니라 커뮤니티도 없고, 지역토박이도 아니라면 A 중학교의 수준을 알 턱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학부모 모임에 속해 있기라도 해야 무슨 정보를 얻는데, 대체로 맞벌이로 바쁜 가정들이 많아서 학원에서 상담을 드리기도 힘들다. 그런 학부모님들이 그나마 부랴부랴 달려오시는 경우는 아이들의 성적표를 들고서다. 초등학교 때 이것도 저것도 시켜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성적이 이렇게 되었다고 놀라서 말이다. 근데 그게 중학교 1학년도 아니고 2학년이다 보니, 이미 1년간 벌어진 격차를 좁히는 게 쉽지가 않아서 아이와 선생 모두 고생을 한다.
그래서 지난 수년간 자유학년제가 너무 마음에 안 드는 중에 올해는 좀 변화가 있을 듯싶어 내심 기대가 컸다. 그러나 우리 학원이 주로 지도하는 A 중학교는 물론이고, 내 친구가 근무하고 있는 같은 지역의 B 중학교, 또 옆에 있는 C... 우리가 속해 있는 지역구의 대부분의 학교는 자유학년제를 유지한다는 결정이 났다. 학교에서 양질의 프로그램을 잘 운영하고 다양한 진로 체험을 하면서 학습 부담을 내려주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우리가 있는 지역 바로 옆 지역구는 모든 중학교가 1학년 시험을 되살렸다는 것이다. 나처럼 아이들을 가르치는 내 친구는 이런 상황에 한숨을 내쉬었다. 왜 우리 동네는 계속 이러는 거냐고 말이다. 우린 이 지역에서 초중고를 졸업하고 지금까지 살고 있는 토박이라서 잘 안다. 옆 동네는 우리가 어릴 때도 부자동네였고, 우리 동네는 그들에 비하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우리가 가난한 동네는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그들보다는 못한 지역이 맞고, 내 학생들 중 대다수가 다니는 A 중학교는 그런 지역에서도 가장 서민가정이 많은 곳에 있다. 지역구에서 아파트가 가장 적고, 오래된 다세대 주택과 빌라가 많은 동네. 부모님 대다수가 밤늦게까지 맞벌이를 하시는 가정도 많고, 한부모 가정, 조손가정, 다문화 가정도 많다.
다시 중학교 1학년 자유학년제 이야기로 돌아가서 말하자면, 자유학년제로 모든 학교의 중학교 1학년이 쉴 때에도 소위 좀 잘 사는 집이 많은 동네의 중학교는 단원평가를 봤다. 그 동네의 대부분의 가정이 여유가 있으니 사교육 선행을 열심히 달렸다. 반면에 그렇지 못한 동네는 시험이 없으니 기초학력미달이 나도 학부모가 모르고 지나갔다. 문제는 그 아이들이 결국 고등학교에서는 만난다는 것이다.
내 친구가 지도하는 B 중학교의 아이들은 내 모교이기도 한 B 고등학교에 많이 진학하는데, 거기엔 우리가 말하는 바로 그 부자동네 아이들도 온다. 내가 가르치는 A 중학교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B 고등학교에는 덜 진학하는 편이긴 하지만, 간혹 한두 명이 운 없이 배정을 받고는 한다. 고등과정은 어차피 경쟁으로 돌아가고 있고, 입학하자마다 첫 중간고사부터 아이들은 등급이 매겨지고 그걸 넘는 것이 너무도 벅찬 여정이다. 그런데 출발선이 너무 다르다. 우리 동네 아이들이 다니는 중학교들이 시험을 보지 않아서 몇몇은 기초학력미달까지 나는 상황에서 옆동네 아이들은 시험은 물론이고 고등학교 선행까지 달린다. 입시강사라서 너무 잘 보이는 이런 상황이 너무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