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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틀루이스 Jun 18. 2023

2021년 11월 12일


바닷가에 살면서 원하는 만큼 바다를 보면 행복할 줄 알았다. 

완전한 행복을 바란 것도 아니었다. 

그냥 소소한 행복. 

하지만 불안에 들끓고 있던 마음은 문설주에 걸린 행복을 붙잡기커녕 바라보는 것조차 불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이제 와서 알게 된 사실은 내가 목표를 잘못 설정했다는 것이다. 

행복은 조준한다고 맞춰지는 게 아니란 사실을 몰랐던 거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불행을 회피하는 것, 즉 문제에서 도망치는 소극적인 행색으로 행복을 붙잡으려 했던 시도는 뒷걸음질 치며 앞으로 가길 바라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이었다는 거다.



행복은 삶을 살 때 주어지는 것이다. 

그것도 삶을 순전히 살아낼 때 주어지는 것. 

만약 행복 그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다면, 우리는 행복에 대한 뒤틀린 개념을 갖게 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삶의 방향 또한 엉뚱한 곳으로 설정되어 버리고 만다.

(우리들에게 행복한 가정과 환경과 문화를 선사해준 앞선 선조들의 삶을 보면, 그들이 행복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무시무시한 삶을 인내와 충성과 온유와 절제로서 살아내며 그 안에서 사랑과 희락과 화평을, 이웃들에게 자비와 선을 베풀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 이에 더해 행복을 삶의 최우선순위로 둘 것이 아니듯, 어쩌면 삶을 순전히 살아내는 사람들 가운데 행복하지 않은(안녕하지 못한) 삶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허나 고통 가운데 그들은 안녕하였다.) 이 삶이 끝이라면 그들만큼 안타까운 존재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끝이 아니라면? 이 이슈는 여기에 적기에는 너무 방대하다. 끝.




문제를 맞닥뜨리지 않고, 문제를 일으키는 상황을 회피하고, 문제와 닿는 가지라면 다 잘라내는, 행위의 목적이 ‘마주섬’에 있지 아니하고 ‘도망침’에 있는 삶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알기만 한 것이지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게 아니다.)


도망침의 삶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문제로부터 얼굴을 가리고 숨는 것에는 ‘지금 당장’의 평온과 만족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적인 쾌락 때문에 나는 그것을 행복이라 치부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행복이 아니었다. 

‘행복의 허상’이었을 뿐이다.


바다는 아름답다. 

아름다운 것은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행복이 있는 곳의 방향을 알려줄 뿐이다. 


이정표이지 목적지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걸 몰랐던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바닷가를 배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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