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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틀루이스 Nov 18. 2023

무중력은 자유가 아니다.

필자의 아버지는 엄했다.


어느 정도로 엄했냐면,

집에서는 늘 공부를 해야 했으며 게임을 해서는 안 됐고, TV도 볼 수 없었으며, 아버지가 출근을 하시거나 퇴근을 하시면 현관으로 배웅을 무조건 나갔어야 했다.


방이나 거실에 누워 계신 아버지 위로 지나다닐 수 없었고, 심지어 바닥에 떨어져 있는 아버지의 옷 위로도 지나다닐 수 없었다. 밥을 먹을 때는 아버지보다 숟가락을 먼저 들어서는 안 됐으며, 아버지가 식사를 마칠 때 동시에 마쳐야만 했고, 밥알 한 톨도 남겨서는 안됐다.


기본 한 시간이 넘는 훈계를 무릎을 꿇고 들어야만 했으며, 눈을 마주치거나 말대꾸를 하면 회초리질을 당하거나 뺨을 얻어맞았다.


무엇보다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우리 집안의 암묵적인 룰이 있었는데,     

“웃어서도 안 되고, 울어서도 안 되며, 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런 집에 살면서 자유롭다고 느끼는 사람이 과연 누가 있을까.     

그 시절 필자는 집이 감옥, 혹은 지옥처럼 느껴졌었다. 그러면서 내가 원하지도 않는, 나와 상의되지 않는 질서를 부여하는 모든 곳이 감옥과 지옥으로 여겨졌다.


학교, 군대, 직장이 다 매한가지로 두렵게 다가왔던 것이다. 

그래서 어른이 되는 것도 싫었었다.     

우려했던 바는 그대로 현실이 되었다. 필자는 학교를 죽도록 싫어했고, 군대에 가는 상상만 하더라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사회복무요원으로 훈련소에 들어갔다가 3일을 못 버티고 우울증으로 퇴소한 일도 있었다.)


성인이 되어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한 달을 채 넘기지 못하고 그만뒀고, 최종 면접까지 통과해서 어렵게 합격했던 회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일하고 있는 곳 외에 따로 세 곳에서 일했었는데, 두 곳은 한 달 만에 그만두고 나머지 한 곳은 채 100일도 채우지 못하고 그만뒀다. 


이렇게 되기까지, 

스스로를 인생의 실패자로 여기고 아무 데도 발붙일 곳 없다 여기며 본인은 다른 권위와 질서 밑에서 일할 수 없으니 사업을 하거나 프리랜서가 되거나 그냥 굶어 죽어버리거나 해야 된다고 생각하기까지,

이렇게 되기까지, 

아니 그 훨씬 이전인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필자는 자유를 갈구해오고 있었다. 

 

정말 완벽하고 완전한 자유를 추구했다.

그 갈망은 추구에서 그치지 않았고 실천으로 옮겨졌다. 




가장 처음으로 자유를 구가했던 시기는 아버지로부터 떨어져 러시아에서 유학생활을 했던 시기였다.

필자는 한국식 나이로 18살이 되던 해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사립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며 3년간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었다.


학교와 기숙사에 규율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필자는 학교 규칙을 어기고 말을 안 듣기로 유명했다.), 그래도 아버지와 떨어져 사는 것이 좋았던 필자는 해방감을 느꼈고, 그 좋은 기분을 실컷 만끽하며 지냈다. 

주중이고 주말이고 기숙사 방에서 하고 싶던 게임을 실컷 했다.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왔을 때는 부모님 사이가 멀어져 결국 이혼하셨고, 필자는 어머니와 살며 또 하고 싶은 데로 살았다. 그때도 자유를 구가하던 방식은 마찬가지로 게임이었고, 추가로 성인물이 있었다. 

게임을 하고 싶은 데로, 하고 싶은 만큼 했다. 평균 하루에 14~18시간씩 했으니까.


그렇게 삶에 쓸모 있는 것일랑 아무것도 쌓지 못하며 나이를 들어가면서도 내면에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고, 게임도 성인물도 완전한 해갈을 이뤄주지 못하는 것을 깨달으며 필자는 SNS나 미디어나 책에서 말하는 ‘자유’와 관련한 것들을 더 찾아 헤맸다.


그 중에는 일탈, 여행, 관계를 끊는 것, 글을 쓰는 것, 지금 살고 있는 곳을 완전히 떠나는 것 등이 있었다. 

필자는 이 모든 것을 다 해봤다.


자유를 찾기 위해 마지막으로 했던 것은

모든 관계를 끊고, 모든 일을 뒤로 하고, 홀로 강릉에 있는 바다가 보이는 집에 가서 사는 거였다.


그렇게 1년 4개월을 사람과의 연을 끊으면서 자연 속에서(그래도 문명은 누리는 가운데) 지냈다.


처음에는 완벽한 해방감을 느꼈다. 모든 것이 아름다웠고, 보드랍고 향기로웠다.

얼굴에 스치는 바닷바람과 솔내음, 발가락 사이에 사르륵 스며드는 모래와 해안에 으스러지는 파도소리는 잔잔한 행복을 가져다줬다.

안목해변에서 자전거를 타고 안인해변으로 넘어가는 숲길을 따라 달릴 때면 가슴이 뻥 뚫린 것만 같았다.     


그곳에는 내게 무엇을 지시하는 사람도 없었고, 나와 한 장소와 물건을 가지고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지 규칙을 정해야 되는 사람도 없었다. 

그곳에는 오직 나 혼자였고, 룰은 내가 홀로 정하면 됐다.

(사실 꼭 그런 것도 아니다. 홀로 계획과 일정을 짜더라도 몸이 말을 안 듣고, 물건이 고장나며, 날씨가 도와주지 않을 때도 많았으니까.)


한 3개월 까지는 천국에 사는 것만 같았다.

그 뒤로는 지독한 무의미함과 외로움이 찾아왔다. 나는 사람을 그리워하게 됐다.


내가 생각한 만큼, 알게 된 만큼 자유를 구가하면 행복하게 잘 살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거다.


외로움이 지독한 날은 정말 말도 못하게 외로웠는데, 그 느낌은 언어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면 다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렇다면 내가 느끼고 표현한 외로움은 어쩌면 표현 된 것보다도 더 어둡고, 깊고, 음습하고, 끔찍하다는 반증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홀로 있을 때의 외로움이 어느 정도였냐면,

“내가 사람들과 지낼 때 최악이라고 여겼던 사람이라도 좋으니까 같이 대화 좀 나누고 싶다.”고 갈망할 정도였다.

조지 맥도널드는 더 깊게 들어간 말을 했다. “그게 벌레일 지라도 반가워할 것”이라고.


필자는 행간에서 말하는 자유를 구가하는 방법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고는 다시 가족과 내 지인들이 있는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전과는 다른 개념의 자유를 추구하고 있다. 

아직 추구하는 수준이지 충분히 누리거나 이행하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이정도만 된 것도 정말 큰 변화다. 아주 값진 변화이기에 필자는 감사하고 있다.




자유란?


자유는 모든 것에서부터 떨어져 나와서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에서 떨어진다는 것은 그 '모든 것' 안에 사람뿐 만 아니라 문명과 자연도 속해 있는 것이며, 거기서부터 끊어진 사람은 존재의 의미조차 잃어버리게 된다. 사실 존재할 수조차 없게 된다. 

필자가 그랬다.


그렇다고 자유는 모든 것을 가진 사람에게 있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 모든 것(물질이든, 권력이든, 영향력이든)을 가졌다고 여기는 사람일수록 그만큼 그 ‘모든 것’에 의해 구속되고 결박당한 사람도 없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어떡하면 더 부풀릴지’, 혹은 ‘잃어버리지 않을지’에 대해 고심하느라 삶이 그것들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으며, 그 상념에 반하는 것을 마주하게 됐을 때 그게 무엇이든 누구든(심지어 가족이나 지인이든) 방해물로 여기게 되고, 자기 의지대로 다듬으려 들어나 혹은 제거하려 들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유는 아무런 룰이 없는 것도 아니고, 룰로 가득 차 있는 것도 아니다.

자유는 ‘흠 없이 완전한 하나의 룰’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관건은 ‘흠 없이 완전한 하나의 룰’을 정확하게 알고 따르는 것이다.


도로교통법의 총체적인 기준이 되는 것이 ‘빨리 가는 것’ 혹은 ‘신호 그 자체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안전하고 원활한 교통을 확보함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1조”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삶을 살아가는 것에 있어서도 부를 취득하는 것을 나쁘다 하지 않고, 번영을 누리는 것을 악하다 하지 않으며, 쉼을 누리는 것을 좋게 여기고, 때로 즐겁고, 감사하고, 슬퍼하고, 고통에 몸부림치고, 지쳐있다가도 회복하여 다시금 삶의 아름다운 정수를 누리는 이 모든 것을 부정하지 않고 인정하는 ‘흠 없이 완전한 하나의 룰’이 있는데,


그것은 <<지금 이 순간과 주변 환경이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알고 그에 감사하며, 자신의 기억이 어떠하든 향후 그려지는 미래가 어떠하든 그에 유념하기 보다는 현재의 감사를 중심으로 주위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다.


ps. 요즘은 ‘자기 사랑하기’와 같은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트렌드인 시대다. 그것과 관련한 메시지가 얼마나 많은지. 

 하지만 타인을 배제하고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자신을 불행으로 이끄는 길은 없다. 지금이야 내 자아가 “내가 가장 소중해! 나를 지켜!”하는 소리가 가장 옳은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렇게 점점 자아 안으로 들어가 그 안에 갇혀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에게 과연 어떤 고독함과 타인과 어울릴 줄 모르는 습성으로 가득함이 있는지 보게 된다면, 무조건 자아의 소리를 따르게 만드는 현대의 메시지가 얼마나 쓸데없어 버려야만 하는 것인지 다시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더하여 다른 사람을 이해타산적이 아니라 진심으로 위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그의 물리적 상태나 환경이 어떠하든지, 그의 내면이 얼마나 풍성함으로 가득차 있는지를 '스스로 볼 수 있고, 그에 감사할 수 있으며, 기꺼이 그 길을 따라간다.' 지구상에 그런 사람은 아주 드물긴 하다.)


사실 ‘내가 중심이야’하는 사고는 인류가 시작될 때부터 있어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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