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날씨는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 가득.
비행기 뜨기에 정말 좋은 날이었다.
벤쿠버행 비행기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장시간의 비행이라서 그냥 이코노미 말고 그보다 한 단계 높은 좌석을 결제했었다
허리 디스크가 있어서.
프리미엄 이코노미였나?
모든 승객이 자기 자리에 앉고
비행기 엔진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막 비행기의 문이 닫히기 전이었다
아니, 그 전부터 조짐이 이상했다
비행 여정을 위해 평소 좋아하던 책을 펴들고 읽는데
글을 읽고 읽어도 글자나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10시간 이상 앉아 있어야 할 의자가 상당히 깝깝하게 느껴졌고
더군다나 벌써부터 허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외국 항공사를 이용해서 그런지 내 주변에는 온통 외국인들 뿐이었고
왜 그게 그렇게 답답하고 두렵게 느껴지던지..
심지어 5살짜리 외국 여자아이도 무섭게? .. 보였다
난 그렇게 비행기 안에서 내가 그곳을 '안락하게' 혹은 '있어야 할 곳'으로 느끼고 있던 게 아니라
나를 '불편하게 하는 곳'으로, '빨리 벗어나야 할 곳'으로 여기고 있었다
무엇보다 내 시선은 더 이상 책이 아닌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에 집중하고 있었다
물리적 시선은 불편한 의자, 외국사람들, 비좁은 공간에 집중 하고 있었고
상상의 시선은 불안한 미래를 자아내고 있었다.
- 초반부터 디스크 통증 오면 어떡하지? 어디 눕지도 못할 텐데
- 내 불편함을 토로 하고 싶은데 소통이 잘 안 되면 어떡하지?
- 주변 외국인들이 나 이상하게 여기면 어떡하지
- 오랜 시간 비행기 안에서 어떻게 버티지
- 비행기가 안전할까?
- 비행기 문이 닫히면 이제 나는 어디도 못 가는데
- 비행기가 상공에 있을 때 내가 힘들어지면 답이 없는데
- 어쩌면 죽을 수도 있지 않을까?
- 문이 닫히면 나는 갇혀 버리는 거야
- 죽을 수도 있을 거 같아
- 아니, 죽게 될 거야
의식의 흐름은 안전 & 안정과 관련한 내 논리를 부숴뜨려갔고
불안했던 감정은
두려움으로
두려움은
공포로
공포는
죽음에 대한 경종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었고
죽을 것만 같아졌다
이 비행기 안에 갇히면 죽어버릴 거 같았다
가슴이 조여오고
예전에 깊은 물에 빠져서 허우적 거렸던,
구원의 손길이 보이지 않아 미친듯이 눈알을 굴리고 사방에 팔을 휘적댔을 때의
끔찍한 테러가 휘몰아쳤다.
'문이 닫히면 안돼 난 죽어'
'저 문이 닫히면 더 이상 답은 없어'
이륙 준비로 분주해 보이는 승무원에게 어떻게 다가갔는지도 모르겠다
난 승무원 앞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 패닉이 왔습니다. 나 내리고 싶습니다."
(만약 안 된다는 답변이 나왔다면 나는 그자리에서 기절해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 뒤로 한동안 많이 했었다)
그 승무원은 급히 상급자를 부르는 듯 했고
내 주위에는 승무원 두 사람과 보안원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나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패닉, 내리고 싶다"
나는 결국 내렸다
자리에 놓고 왔던 내 짐들과 물병까지 챙겨 받고
보안원의 안내를 받아 나왔다
국제선이었어서, 출국 수속을 밟았어서 그런지 밖으로 나오는 절차는
꽤 까다로웠고 오래 걸렸다. 2시간은 넘게 걸렸던 거 같다
내가 비행기에서 내렸다는 소식에
누나는 전화 너머로 발작하면서 울었다
"우리 집으로 와"
그날 밤,
나는 누나네 가족이 머무는 집에 가지 않았다
가고 싶지 않았다
그냥 다 피하고 싶었다
부끄러움 보다는 자괴감이
계속 비행기를 탔으면 나한테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싶은 두려움이 맴돌았다
그때는 몰랐다
그 사건이 내가 숨어 존재하던 동굴을 송두리째 뒤흔든 대지진이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