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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유 Sep 28. 2019

취준생 생활을 마치며

나의 바둥바둥했던 취준 생활과 외국계 기업에 입사하기까지

   경기 악화로 청년 실업률이 10%가 넘어가고, 공채를 폐지하고 수시채용만을 진행하는 현대자동차를 비롯하여 대기업들이 채용 규모를 축소하기 시작했던 2019년 상반기. 마지막 학기를 '어떻게든 취업이 되겠지'라는 안일한 마음으로 상반기가 시작하는 2월 말이 돼서야 일본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마치고 돌아왔다. 돌아온 후 마주한 현실. 100개가 넘는 자소서를 썼고 의류 벤더부터 금융권까지 다양한 산업군을 찔러보고 실패했던 기억. 비단 나뿐만이 아닌 모든 취준생들이 한 번은 겪었던 경험이지만 나의 취업 도전기를 남겨보고자 한다.




1. 취업 전에 교환학생을 간 이유


   2018년 3월, 새 학기의 시작과 함께 나는 우리 학교에 오는 외국인 교환학생들의 생활을 도와주는 도우미 단체 활동을 했다. 외국인 친구들의 공항 픽업부터 환영회, 주변 여행, 교내 행사 등 여러 가지 활동을 도와주면서 자유롭고 활달한 외국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해외에 나가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싶었다. 또한, 학생 시절 해외에 거주할 수 있는 기회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어라면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밖에 몰랐지만, 평소에 관심이 많았던 일본에 교환학생을 가기로 결심했다. 교환학생 1차 모집이 끝난 상황에서 2차 모집 마감일에 1시간을 남겨두고 간신히 지원을 완료하였고 면접을 거쳐 합격, 일본 교토로 6개월 간 교환학생을 다녀왔다. 주변에서 많이 들었지만 이때는 몰랐다, 취준생 생활이 이렇게 힘들고, 절박하고 준비를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을.




2. 취업 준비의 시작과 현실의 벽


   2019년 2월, 6개월 간의 교환학생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귀국했다. 학기는 1월에 끝났지만 일본 근교 여행을 하며 예정보다 한 달 정도 늦게 귀국했다. 취업 준비를 하기가 싫었던 것인지, 일본 생활이 너무 좋았던 것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한국에 와서 마주한 취준생의 현실은 생각보다 가혹했다. 이미 2월 말부터 굵직한 기업들의 공채가 시작되었고, 취업 사이트에 처음 접속한 나는 내가 모르는 기업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내가 처음 목표로 한 대기업들의 예상 경쟁률과 지원자 현황들을 살펴보면서 소위 말하는 현자 타임이 왔다. 마치 고등학생 시절 '서연고'만 외치다가 수능 성적을 받고 나서 현실을 맞닥뜨린 느낌과 비슷했다.


   소위 말하는 30대 대기업은 물론 나만의 기준을 세워두고 연봉, 희망 직무, 기업의 성장성 등 기준에 부합하는 기업은 모두 지원했던 것 같다. 자소서만 120개 넘게 썼으니 말이다. 120개가 넘는 자소서 중에 절반 정도는 통과했고, 인적성을 거쳐 면접까지 갔던 기업들은 10개 남짓 되었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의 스코어는 모르지만, 지금 와서 돌아보면 이 취업난에 나름 선방했던 것 같다. 선방만 하고 한방을 보여주지 못해 모두 떨어진 것이 문제였지만.




3. 공기업, 금융권, 섬유산업, 이커머스까지


   상반기에 어떻게든 취업을 하겠다고 생각한 나는 금융권, 섬유, 패션, 제약, 유통, 백화점, 면세점, 상사 등 포지션만 맞으면 산업군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지원했다. 경제학과 전공과 의류 벤더에서 일한 경험 등으로 인해 주로 서류와 인적성 합격은 금융권, 의류 벤더 그리고 이커머스 쪽이 대부분이었다. 공기업의 경우 아무래도 서류 배수가 높아 서류는 통과했지만 NCS 준비를 하지 못해 면접은 가지 못했다. 사기업의 경우에는 서류가 힘든 곳도 서류는 뚫어놓고 막상 필기 공부 부족으로 떨어진 곳도 많았다. 다른 취준생들이 보면 어처구니없는 놈일 수도 있을 것 같다.




4. 주변의 시선과 나의 시선


   대학 입학을 늦게 했기 때문에 주변에 먼저 취업 준비 기간을 거쳐 일하고 있는 친구들이 많았다. 친구들에게 취업 준비 기간의 고통과 주변의 시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다. 따라서 취업 준비를 시작하고 나서 가족이나 주변의 시선이 많이 신경 쓰일 줄 알았지만, 나의 경우에는 주변의 시선보다 나 스스로의 자존감 문제나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혼자 위축되어 있었던 것 같다. 특히 공대를 다닌 내 동생이 나보다 먼저 취업이 되었을 때는 티는 안 냈지만 속은 타들어갔다. 부모님은 천천히 준비해서 제대로 된 직장 구해서 들어가면 된다고 위로해주셨지만,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나를 뒷바라지해주신 부모님을 위해서 빨리 직장을 구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돌아보면 주변의 시선보다 내가 바라보는 내가 초라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120개를 지원했는데 최종 합격을 하나도 못했기에 '내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 그리고 면접 때 함께 면접을 본 지원자들을 보며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족한 것이 아닌 다른 것일 뿐이고, 내가 해당 포지션에 적합하지 않았을 뿐인데 말이다. 소위 말하는 자기 계발을 빙자한 감성팔이 글들을 싫어하지만, 혹시 이 글을 읽는 취준생들이 있다면 꼭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우리가 부족한 것이 아니고 단지 그 기업에, 그 직무에 안 맞는 경험, 역량, 성향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절대 노력하지 말란 말이 아니다. 할 것을 다하고 그 이후에는 '진인사대천명'이다. 절대 본인 탓을 안 했으면 좋겠다.




5. 국내 기업에서 외국계로 눈을 돌린 이유


   거창하게 말할 필요 없이, 외국계로 눈을 돌린 이유는 국내 기업 상반기 공채가 끝났기 때문이었다. 상반기가 끝난 후 나는 자격증을 준비하며 업무 경험을 쌓기 위해 인턴과 계약직을 찾아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 기간이 가장 불안했던 것 같다. 전문 자격증이 아닌 이상 자격증이 취업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인턴과 계약직도 실질적으로 실무 경험과 업무 역량을 쌓을 수 있는 괜찮은 곳들은 경쟁이 치열했다. 따라서 자격증 취득과 계약직 근무를 하면서도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지금 내가 준비하고 있는 방향이 맞는 걸까?'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그때 들었던 생각은 수시채용을 하는 외국계 기업이 떠올랐다.


   영어와 조악한 수준의 스페인어 구사가 가능하지만 상반기 공채를 마치고 돌아보니 언어는 무기가 아니고 팔 보호대 수준의 장비처럼 느껴졌었다.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해 크리티컬 하진 않지만 있으면 좋은 정도. 해외영업 직무가 아닌 이상 국내 기업에서 딱히 우대도 안 해준다. 외국계 기업의 경우에는 영어나 다른 언어가 중요하지만 모두가 일정한 수준은 갖추고 있을 것이고 해외대 출신, 해외 MBA 출신 등 소위 말하는 괴물들의 리그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다고 포기하기엔 '나도 초등학교부터 20년간 영어를 배웠는데'라고 자위하며 약 15개 정도 지원했다.


   외국계의 경우 생각보다 면접 기회를 많이 얻었다. 15개 기업 중 10개 정도는 면접을 봤다. 비디오 면접, 전화 면접, 대면 면접 등 다양한 방식으로 면접을 봤고 대부분 국내 기업 면접보다는 부드럽고 존중받는 느낌이 들었다. 외국계 기업 면접을 보면서 느꼈던 것은 나는 외국계 기업에 좀 더 맞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딱딱하게 취조받는 면접보다 자유롭게 내 경험과 역량 그리고 의견을 이야기하며 '면접이 재밌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제조업 HR 사원 면접을 봤을 때는 면접관이 나를 되게 존중하고 예의를 갖추는 것이, 미국계 이커머스의 경우 직원들이 모두 수평적이고 자신들의 의견과 경험을 적극적으로 공유해주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즐겁게 면접을 보고 나니 세 군데서 최종 합격 통보를 받을 수 있었고, 그중 한 곳을 택해 입사를 했다.




6. 이 글을 읽을 취준생들에게


   취준생을 주제로 브런치 첫 글을 쓴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치열하게 살았던 내 삶의 조각을 기록으로 남겨 초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 싶어서이다. 회사 생활을 하며 힘들 때마다 이 글을 읽으며 다시 다짐을 하는 촉매제로 사용할 것이다. 두 번째는 최근에 취업 준비를 했던 경험자로써 취업을 준비하고 계시는 분들께 본인이 가고 있는 길이 틀리지 않다고 말해주고 싶어서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어렵고, 불합격의 고배를 마실 때마다 스스로를 자책하게 될 많은 취준생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다. 모두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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