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정서랍 Jan 08. 2024

외눈박이 개구리 이야기

안녕, 애꾸눈!

도시에서 시골로 막 이사했을 참이었다. 시골에는 등대처럼 솟은 건물이나 주변을 가득 메우는 매연이 없었다. 대신 집 옆에 깎아지른 듯한 야산이 있었고 저녁이면 풀벌레 소리가 주변을 채웠다.


당시 중학교 1학년으로 올라갈 때라 정서적으로 몹시 예민했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아직 사투리가 떨어지지 않은 말투를 그들은 신기해했고, 나는 완벽한 이방인이었다.


4월에 접어들었을 무렵, 교우관계는 여전히 지지부진했다. 대화를 나눌 아이는 있었지만 친구라 여길 정도는 아니었다. 우리집을 지어준 양씨 아저씨만이 나를 친구라 불렀다. (아직도 그의 이름을 모른다.) 그는 이주에 한 번씩 맥주를 사들고 왔고 부모님과 함께 마당에서 술을 마셨다.


마당 데크 기둥 위에 달린 손바닥만 한 전구 두 개가 주변을 밝혔다. 기온이 오를수록 벌레가 많았다. 어떤 날은 사슴벌레가 날아왔고, 어떤 날은 장수풍뎅이가 방문했다. 나방과 하루살이는 자리다툼을 멈추지 않았다. 벌레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연을 좋아하는 내겐 최고의 환경이었다. 그리고 외눈박이 개구리를 만났다.


어느샌가 전구 밑을 차지하고 있던 개구리는 청개구리 치고는 덩치가 제법 컸다. 내 손바닥 반을 가릴 정도였다. 그는 한참을 날다 전구 밑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한 하루살이들을 잡아먹고 있었다. 세 마리당 한 마리꼴로 놓쳤다. 호기심이 동한 나는 파리채 손잡이에 부착된 핀셋으로 나방을 잡아다가 그에게 줬다.


고개를 돌려가며 거절 의사를 밝히던 그는 나의 구애에 지친 듯 나방을 받아 먹었다. 그렇게 기묘한 관계가 시작됐다.


그는 눈 한쪽을 뜨지 못했는데, 가로로 죽 그어진 자국으로 봐선 자연에게 해코지를 당한 것이 분명했다. 한쪽 뿐인 눈으로 벌레를 먹으려니 그렇게 타율이 낮았던 것이리라. 아버지는 맥주를 들이키며 개구리에게 '애꾸눈이네?'라고 했다. 애꾸눈은 애칭이 됐다.


애꾸눈은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왔다. 마당을 밝히지 않아도 되는 날은 없었다. 우리 가족은 애꾸눈이 배부를 수 있도록 마당에 늘 불을 켜놓았다. 나는 저녁마다 마당에 나가 애꾸눈과 만났다. 일주일 정도 인사를 주고 받으니 애꾸눈도 이 만남이 퍽 편해진 듯했다. 손으로 직접 건네주는 벌레도 잘 먹었다.


부모님이 주는 벌레는 먹지 않았다. 내가 줘야만 했다. 당시에도 그랬지만 이따금 회상하면서도 참으로 기묘한 기분이 든다. 보통 양서류는 사람을 구분하지 못한다지 않던가. 애꾸눈은 분명히 나를 알아봤다. 여기에 과학적 지식이 끼어들 틈은 없었다.


그는 날이 갈수록 통통해졌다. 건조한 날에는 등에 물을 뿌려줬다. 애꾸눈은 어느새 내 손바닥으로 올라왔다. 그가 몸을 돌려 바닥을 쳐다보면 이제 헤어질 시간이라는 신호였다. 배부른 애꾸눈은 자신의 집으로 갔고 나도 그렇게 했다.


그런 나날이 쭉 이어졌다. 어느새 학교에서도 친구가 생겼지만 애꾸눈과 가장 친했다. 언어가 없어도 대화가 가장 잘 통하는 상대였다. 늘 비슷한 시간에 만나 비슷한 시간에 사라지는, 잡음도 배신도 없는 관계. 이 일정하고 동일한 리듬이 꽤나 편안한 기분을 안겨줬다. 스마트폰도, 넷플릭스도 없던 세상이었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10월 말쯤, 공기가 차가워지면서 애꾸눈은 집에 오지 않았다. 백과사전을 뒤져서 그것이 겨울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좀체 인내심 없는 성격이었지만, 방도가 없었기에 3월까지 기다렸다.


3월부터 나는 마당 전구를 같은 시간마다 켜놨다. 애꾸눈을 부르는 등대 또는 봉화였다. '난 널 잊지 않았어, 어서 돌아와!'


중순 쯤, 애꾸눈이 돌아왔다. 그가 가장 좋아하던 전구 밑자리였다. 나는 기뻐서 펄쩍 뛰었고, 부모님은 웃었다. 인사는 핀셋 끝에 매달린 나방이 대신했다. 긴 겨울잠 동안 배가 고팠는지 애꾸눈은 그 날 평소보다 더 많은 벌레를 먹어치웠다.


그 외에도 여러 개구리가 마당을 방문했지만, 애꾸눈의 덩치를 이길 재간이 없었다. 전구 한 자리와 내 애정은 애꾸눈이 독차지했다. 다른 개구리들은 반대편 전구에서 재미를 보다 금세 사라졌다.


그 해 겨울부터 애꾸눈은 보이지 않았다. 이듬해 3월에도, 4월에도 찾아오지 않았다. 조금 긴 겨울잠이겠거니, 생각했지만 5월부턴 겨울잠이 아니라는 사실을 넌지시 깨달았다.


지금도 종종 애꾸눈을 추억한다. 손에 올라올 때의 무게, 한쪽 뿐이지만 올곧던 시선, 그 어떤 청개구리보다 컸던 입.


내가 그를 길들인 만큼, 그도 날 길들였다. 언어가 없어도 많은 대화를 나눴다. 언어가 없으니 오해도 없었다. 그만큼 순수한 길들임이었다.


그리고 뇌리를 스치는 여우와 어린왕자의 대화.


"길들인다는 것이 무슨 뜻이야?"

어린 왕자가 물었다.

"그건 너무도 잊혀진 일이지. 바로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여우가 말했다.

"관계를 맺는다고?"

"그래, 넌 아직 내게 수많은 다른 소년들과 다를 바 없는 소년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난 너를 필요로 하지 않고, 너 역시 마찬가지 일 거야.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나는 너에게 이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 거야." 

작가의 이전글 우울의 반댓말은 적막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