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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정서랍 Jan 06. 2024

우울의 반댓말은 적막이었다.

우울의 반댓말은 적막이었다.


많은 이들이 우울을 스산하고 텅 빈 어떤 지점과 비유하곤 한다. 그러나 직접 겪어본 우울은 정반대였다. 우울은 소란스럽고 요란법석하기 그지 없었다. 언제나 무언가로 가득 차 있고, 귓가는 조용해질 날이 없었다. 늘 하고 싶던 말로 침샘이 마르지 않았고 이를 삼키는 나날이 지속됐다.


주변은 가십으로 가득했고, 사람에 질렸다. 사람에 질리니 그 어떤 기대도 생기지 않았다. 기대가 없어진 만큼 기댈 구석을 찾고 싶었다. 그런 모순조차 싫었다.


홀로 있는 방이 조용한 만큼 내면은 시끄러웠다. 해야할 일과 해도 되는 일을 구분하지 못했다. 바깥은 배신과 거짓말이 넘쳐났다. 그 관계의 향연에 몸을 뉘이고 싶다가도 이내 불안해져 스스로를 다그치기도 했다. 또 다시 상처를 주고받기엔 나는 너무 약하고 여렸다. 쇳덩이가 가슴을 짓누르는 통증이 계속됐다.


어떤 날은 병원에 갔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시는 건 어때요?"


선생이 상냥하게 말을 건넸다.


오, 너무도 끔찍한 걸요. 말이 하도 많아서 이젠 스스로 뭐라고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선생의 대답은 처방전 한 장, 이주일치 신경안정제.


약을 먹으면 퍽 괜찮았다. 약효가 떨어지면 다시 손을 떨었다. 인터넷에서 불안한 사람에게 동기부여를 해주는 영상을 여럿 봤다. 볼 때는 가슴이 뛰다가도 영상이 끝나면 다시 지루해졌다. 아마 이때는 만성적인 정신과로가 폭발하기 직전이지 않았나 싶다.


동이 틀 무렵 잠이 들고 꿈을 꿨다. 바다에 가라앉는 꿈. 숨이 콱 막혀 폐가 터질 듯한 고통에 허우적댔다. 내 손과 발이 열심히 심해를 갈랐지만 몸이 계속 가라앉았다. 식은땀에 범벅이 돼 깨어났다. 


그제서야 불현듯 깨달았다. 우울과 익사는 서로 닮았다. 주변이 빼곡히 차서 숨 쉴 공간마저 없는 거구나.


좋아, 그렇다면 물을 빼내는 작업이 필요했다. 어떤 펌프로 물을 빼낼까, 고민하던 차에 가장 잘 하는 걸 하기로 했다. 글을 썼다.


블로그를 개설하고 글을 적었다. 두서는 없었지만 나름 볼만했다. 간만에 의욕이 솟았다. 내면을 담아 세상에 토했다. 이를 반복하니 머릿속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단어의 혼잡한 나열은 번듯한 문장이 됐다. 내 주변을 장악하던 나쁜 타인과 선한 타인을 조금씩 이해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끌어 안았다.


그 즈음 취직을 했다. 사람들과 다시 섞였다. 물론 태생이 예민한 탓에 생각은 여전히 많았지만, 이제는 안다. 나는 민감하고 복잡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2년하고도 두 계절을 꼬박 보내야 했다.


차차 적막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곤 깨달았다. 평화는 침묵이구나.


우울의 반댓말은 적막이었다. 고요하고 침묵한 삶이야말로 축복이지 않겠는가. 가끔 찾아오는 큰 소란은 여전히 버겁지만, 곧 다시 조용해질 것을 알기에 나는 괜찮다. 그 깊은 심연이 내게 알려준 것이 있다면, 언젠간 괜찮아질 거란 확신이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송새벽 배우가 그러지 않던가. '사람 다 자가치유 능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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