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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말 자연인 Jul 02. 2022

불화 1

“이렇게 들어와서 얼마나 잘 사는지 보겠다.” 태어나서 그런 말은 또 처음 들어봤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이웃에게 그런 악담을 해도 되나 싶었다. 그렇게 나는 이웃집과 편한 사이는 못되겠다 생각했다.


이웃 사이에 있었던 불협화음은 이러했다.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 조그마한 국유지를 임대로 낙찰받았다. 바로 옆에 이웃 한 집이 있어서 인사차 비타 500 한 박스를 들고 찾아갔다. 처음부터 느낌이 싸했다. 아주머니가 반기는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불청객이 된 느낌이었다.


낙찰받은 곳을 가서 보니 분명 있었던 흙이 이미 반 정도 사라진 이후였다. 범인은 딱 봐도 옆집 같았다. 아주머니와 얘기 중 파악한 내용은 내 땅 뒤편을 경작하는 아저씨가 흙을 불법으로 채워놓았는데 본인들이 흙을 다 퍼가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밭농사가 안되니 논으로 바꿀 생각이었다고 했다. 나도 할 말은 있었지만 참고 그러시라고 했다. 시골에서는 웬만해선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주머니가 남편에게 우리 얘기를 했는지 전화가 왔다. 젊은 부부가 들어와서 좋다고 했다. 좋으신 분 같았다. 내 땅의 흙은 예정대로 가져간다고 해서 그렇다면 카라반 세울 공간만 남겨달라고 부탁하니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사실 나는 이웃집이 흙을 포기하고 나와 흙을 채운 아저씨가 상호 해결하게 하는 것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내 땅에 흙을 채워놓은 아저씨에 대해서도 한참을 얘기해줬다. 요약하면 아주 괴팍한 사람이었다. 절대로 엮이면 안 되겠다 생각했고 흙은 이웃집 아저씨가 가져가기로 했으니 우리는 카라반 정박할 곳만 있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3개월 가까이 아무런 작업을 하지 않아 애가 탔다. 이웃과는 사이가 틀어지면 우리만 손해이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참다 안 되겠다 싶어 국유지 담당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이웃 부부가 웃긴 사람들이라며 왜 진작 말하지 않았냐고 했다. 싸우기 싫어서 그랬다고 했다. 담당자는 일단 국유지를 평탄화해서 쓰고 무슨 일이 생기면 담당자에게 다 넘기라고 했다. 이웃 아저씨에게 전화해 더 못 기다리겠으니 나머지 흙을 정리해 우리가 알아서 쓰겠다고 하니 알겠다고 했다.


하루 휴가를 내 포클레인 기사를 섭외해 장인어른과 꼬맹이 아들과 작업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이웃 아주머니가 노발대발하며 시비를 걸어왔다. 길을 나가야 하니 내린 지 몇 분 되지 않은 포클레인 바가지를 당장 길에서 치우라고 언성을 높였다. 이웃 아저씨가 아주머니에게 내가 작업할 거란 말을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장인어른과 꼬맹이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이웃 아주머니는 남편에게 전화해 나를 바꿔줬다. 흙을 채워놓은 아저씨와 사전 협의가 없었음을 문제 삼았다. 흙을 채워놓은 아저씨와는 싸울 생각이었지만 이웃집 부부와는 싸울 생각은 없어서 미리 작업 예정을 알린 것이었는데 일이 다 틀어졌다. 국유지 담당자는 무슨 일이 있으면 무조건 담당자에게 모두 돌리라고 신신당부했다. 나는 정당하게 국유지를 낙찰받았을 뿐이고 흙 문제는 담당자와 이야기하라고 차분히 맞섰다.


꼬맹이 아들이 고성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보는 건 좋지 않아 보여 장인어른께 아들을 조금 멀리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이웃 아주머니는 흙을 채워놓은 아저씨를 불렀고 그 아저씨는 동네 이장님을 불렀다. 세 명이서 나에게 항의했다. 나는 모르겠고 포클레인 작업이 진행 중이니 일단 일은 마무리하고 나중에 국유지 담당자의 처분대로 따르면 되지 않겠냐고 하면서 물러서지 않았다.


다들 뜻대로 안 되니 집으로 돌아갔고 이웃 아주머니는 나에게 앞으로 지켜보겠다는 악담을 다 들리게 말하고는 사라졌다. 속으로 걱정 마시라 보란 듯이 잘 살 거다고 생각했다.


만약 내가 땅의 소유자였다면 흙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용의도 있었다. 하지만 비싼 가격에 임대해서 쓰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국유지 담당자만 믿고 세게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웃집도 집터의 반을 차지하는 국유지를 쓰고 있는데 이전 경작자에게 권리금 같은 천만 원을 지불했고, 다른 이웃은 이천만 원을 지불했다는 사실도 무조건 강하게 나가야겠다는 내 생각을 강화했다. 여기서 지면 흙을 채워놓은 아저씨가 나에게 많은 돈을 요구할 것 같았다.


작업을 마무리하고 평탄한 흙바닥에 카라반을 정박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준비해 간 모자와 팔토시를 쓰지도 못하고 이리저리 불려 다니느라 얼굴과 팔이 다 타서 따가웠다. 좀 있으니 이웃 아저씨한테서 장문의 문자가 왔다. 본인도 법을 전공했는데 법대로 살면 피곤하니 좋게 좋게 사는 게 좋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나도 오래 기다렸고 뜻하는 대로 되지 않으니 담당자만 믿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해를 바랄 뿐이었다.


어차피 이제 이웃과 편하게는 지내지 못하게 되었으니 묵혀놨던 할 말은 해야겠다 싶었다. 일전에 이웃집에 찾아갔다 개에 약하게 허벅지를 물린 적이 있으니 아이가 돌아다니는 주말 만이라도 개를 묶어달라고 부탁드렸다. 개가 반가워서 놀아달라고 장난친 것이었겠지만 세 살 아들에게는 다분히 위험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저씨는 신경 쓰지 못해 미안하다며 조심하겠다고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렇게 일은 벌어지고 말았고 서로의 오해는 풀리는 듯했고 뒷수습이 원만히 이루어져 외견상 평화가 도래하나 싶었다. 그런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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