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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말 자연인 Feb 11. 2023

첫 출근

다시 출근할 때가 오고야 말았다. 1년 육아휴직이 끝나감은 아랫배가 먼저 알아차렸다. 휴직 전엔 보통 일요일 저녁에 왼쪽 아랫배가 묵직하고 한숨이 나왔는데 첫 출근 일주일 전부터 아랫배가 아파왔다.


발령 희망지를 제출하고 인사발령 발표까지 친한 동료들에게 전화를 돌려 분위기를 살펴봤다. 인사발령에 대한 소문이 각자 달라 당황스럽기도 하고 내가 퇴직할 때까지 인사철마다 이러고 살아야 할 운명에 씁쓸했다. 나는 평소 성격상 주변에 전화인사를 하지 않는데 인사철에는 또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직장인의 고뇌가 다시금 돋았다. 아쉬운 소리 하기가 싫은데 또 해야 할 때가 많아서 살기 쉽지 않음을 느낀다. 이럴 땐 밝은 성격이 부럽다. 불현듯 공부와 아부는 평소에 해야 한다는 고등학교 선생님의 말도 생각났다.


출근 일주일 전, 활동성에 제약을 주던 셔츠들을 다 버리고 네 벌을 새로 샀다. 어깨를 크게 벌려 보기도 하고 두 손을 머리 위로 쭉 뻗어 셔츠의 신축성을 확인해 몸에 잘 맞는 것으로 골랐다. 잘 맞는 두 벌은 현장에서 사고 나머지 두벌은 색상만 바꿔 인터넷으로 반값 아래로 샀다. 왠지 모르게 점주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출근 첫날이라고 전날 밤늦게 지하주차장에서 자동차 내부에 있던 쓰레기들을 치우고 물티슈로 더러운 부분을 닦았다. 바닥에 떨어진 작은 과자껍데기와 부스러기, 도윤이가 묻힌 흙자국, 곳곳에 끈적끈적하게 묻은 아이스크림 단물, 트렁크 바닥 여기저기 흩어진 모래. 1년 간 아이들과 이곳저곳 돌아다닌 흔적이다.


출근 첫날 아내와 두 아이가 현관으로 마중을 나와 인사를 했다. 콧등이 시리고 마음이 짠했다. 헤어짐을 직감한 연인처럼 슬펐다. 딸아이를 안으면 아내에게 다시 가기 싫어했고, 도윤이는 외출 후 현관문을 열면 아빠가 집에 있는 줄 알고 찾는다고 했다. 1년 간 서로 떨어지지 않고 지낸 터라 실감이 나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오랜만에 차가운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켜고, 엔진 예열을 하고 기어를 드라이브에 놓고 집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발령지로 출발했다. 음악 선곡은 다연이가 집에서 놀 때 틀어주던 노래로 했다. 유튜브에서 아이가 놀 때 듣는 노래라고 검색해서 찾은 노래다. 발령지로 가는 길은 항상 슈필라움으로 갈 때 거치는 길임에도 출근 때 지나는 느낌은 사뭇 달랐다. 길이 꼬불꼬불해서 해가 여러 방향에서 비쳤다. 따뜻했다. 운전하면서도 해가 따뜻한 느낌은 꼭 글에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눈은 느릿느릿 전방을 주시하고, 또 머리는 이런저런 글감을 감상적으로 쫓아가고 있었다.


첫날에는 동기에게 인수인계를 받느라 정신이 혼미했다. 이곳저곳에서 서로 경쟁적으로 나를 찾아서 중과부적이었다. 미결과제가 산적해 있었다. 앞으로 또 어떻게 적응해가야 할지 눈앞이 깜깜했다. 상사들에 대한 욕을 하자면 며칠밤을 할 수 있지만 이곳에는 하지 않아야겠다. 마스크를 착용한 채 면전에서 입만 씰룩씰룩할 때 자위적으로 통쾌할 뿐이다.


며칠 고생하니 직장생활의 힘듦은 빠르게 잦아들었다. 감당이 불가한 일이나 내 능력 밖이라 느껴지는 일들도 비록 하나하나 쌓이긴 하지만 그럭저럭 할 만했다. 사내 메신저를 켜고 내가 마지막으로 쓰던 컴퓨터에 앉은 회사 후배에게 말을 걸어 일정관리 프로그램을 좀 찾아달라고 했다. 업무수첩에 뒤죽박죽 정리하려니 짜임새 있게 관리할 수 없었다. 프로그램을 받아 일정을 정리하고 밑줄 쫙 긋는 완료 표시를 하니 어수선했던 마음도 점점 차분해졌다.


퇴근 후 이틀 간은 그동안 정리하지 못했던 2022년의 사진 100장을 추렸다. 아내와 내 폰에 저장된 5천 장을 걸러내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400장 정도 남았을 때는 한 장 한 장 지우기가 너무 아까웠다. 제주 한 달 살기 추억이 많아 따로 50장을 모아 미처 정리하지 못했던 신혼여행 사진 100장을 50장으로 줄여 그 둘을 합쳐 100장짜리 앨범에 도윤이와 아내와 함께 넣었다. 2022년 사진 100장은 앨범에 다 끼웠는데 마지막에 한 칸이 남아서 다시 뽑아서 새로 끼웠다. 도윤이가 한 장을 엄한 데 놔뒀기 때문이다.


다연이는 사진을 흩트릴 수 있어서 앨범 정리를 침대 위에서 했는데 도윤이가 감독관처럼 ‘어허 다연아 너는 안돼’ 하며 다연이를 제지했다. 기어코 침대 중간 부분을 밟고 올라온 다연이는 도윤이에게 혼나고 서럽게 울며 뒤뚱뒤뚱 엄마에게로 가버렸다.


우리 가족은 매년 해가 바뀌면 1월에 전년도 사진을 100장으로 줄여 앨범에 꽂아놓는다. 힘들어도 막상 해놓고 보면 뿌듯하고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 언제나 우리 자신은 드라마의 주인공인 것이다.


복직 후 첫 주말은 애들이 열이 나서 토요일은 집에서 쉬고, 일요일 오전에 슈필라움으로 내려갔다. 다연이가 처음으로 신발을 신고 걸어 다니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정말 많이 컸다. 1년 간 아이들 놀이터로 꾸민 슈필라움에서 아들과 딸은 신나게 뛰어 놀 것이고 아내와 나는 그걸 지켜볼 것이다. 딸아이는 그날 카카카 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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