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약 16년 전, 대학교 졸업과 동시에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하였다. 중간에 6년 정도 박사과정에 있는 동안은 휴직 상태였지만, 어쨌든 나는 16년 내내 이 회사 소속이었다.
소위 '1만 시간의 법칙'에 따르면 매일 3시간씩만 투자했어도 최고의 전문가가 되기에 충분할 정도의 시간이다. 물론 '1만 시간의 법칙'이 정말 모든 사람과 상황에 적용되는 '법칙'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 당장 내 상황에도 전혀 맞지 않는데, 요즘 나는 같은 회사를 다니고는 있으나 여러 팀과 부서를 떠돌아다니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대학원을 마치고 복직한 후 약 3년 반이 지난 현재, 난 총 세 개의 부서와 다섯 개의 팀을 거쳤다. 초반 2년 동안은 6개월에 한 번씩 있는 정기 인사이동 때마다 팀이 바뀌었고 중간에는 부서도 한 번 바뀌었다. 작년 하반기에는 특수 직군인 현재의 부서로 오게 되면서 비서와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 처음 모셨던 상사가 임기 만료를 8~9개월 정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중간에 상사가 한 번 바뀌는 것은 당연히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두 번째 상사가 취임 후 1년도 되지 않아 갑자기 떠나 버렸고, 대체자는 감감무소식인 상태다. 1년 반에 가까운 기간 동안 팀이나 부서는 바뀌지 않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큰 변동사항이 두 번이나 생긴 것이다.
이쯤 되면 내 직장 경력도 참 기구하다 싶다. 다른 회사에서는 한 팀에서 장기 근무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고,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도 특수한 사정이 없는 이상 한 부서에서 2년 이상 근무가 원칙이다. 유학 가기 전에는 나도 이러한 원칙에 따라 움직였었다. 이상하게도 복직 이후에 마치 역마살이 낀 것처럼 6~8개월마다 자리를 바꾸거나 업무를 리셋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고 있다. 이 중 내가 진심으로 원해서 자리가 바뀐 경우는 한 번밖에 없다. 나머지는 강력한 읍소를 거절하지 못하거나,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인사 발령이 나 버린 경우였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이렇게 잦은 이동 중 있던 자리에서 쫓겨난 경우는 없다(고 최소한 나는 믿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면이든 쓸모가 있었으니 여기저기 불려 다녔다고 생각하는 편이 계속되는 적응에 지쳐 있는 내 정신 건강에 이로울 것 같다.
이쯤에서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는 단어가 바로 '저니맨'이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저니맨은 '프로스포츠에서 여러 클럽에서 활약하는 선수'를 의미한다. 물론 나는 여러 팀에서 활약을 하고 있지는 못하고 어떻게든 문제가 안 생기도록 돌려 막기를 하는 쪽에 가깝지만, 그래도 최근의 내 처지에 잘 어울리는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 은퇴를 생각하기에는 한참 이른 나이지만 다른 저니맨들은 어떤 결말을 맞았는지도 많이 궁금하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여러 업무를 두루 경험하면서 제너럴리스트로 성장할 수 있겠다 싶기도 하다. 그러나 1년도 아닌 6개월에 한 번씩 업무가 바뀌면서 업무 파악을 하자마자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되고, 나이를 고려하면 여전히 좀 더 축적이 필요한 시기로 보이는데 경험이 제대로 쌓이기 어려운 경로를 계속해서 다니다 보니 상당한 회의도 든다.
결국 이러한 상황에서 답은 최대한 회사로부터 독립적인 정신 상태를 유지하는 것 같다. 회사를 대충 다니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서 노력은 해 보되 나 자신을 잃을 정도로 모든 걸 투입할 이유는 없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 또한 회사가 알아서 나의 경력 관리를 해 주겠거니 기대하지 않고, 내가 주체적으로 나 자신의 실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다. 소속은 회사원이되 반쯤은 자영업자로 살아가는 마음가짐을 갖도록 해야겠다.
* 제목 사진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wZR592SGaX4&ab_channel=%ED%92%8B%EB%B3%BC%EB%B8%8C%EB%A1%9C%EC%8A%A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