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를 읽고
평소 한국 소설을 많이 읽는 편도 아니고 작가의 모든 작품을 섭렵한 것도 아니지만, 정세랑은 내가 어느 정도 믿고 보는 소설가 중 한 명이다. 그의 전문 분야로 알려진 SF(Science Fiction) 장르에 속하는 작품들 뿐만 아니라 『피프티 피플』 같은 소설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과거에 그 책들을 읽기 전에 살펴봤던 작가의 약력에는 역사교육과를 졸업했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갔다.
그렇게 스쳐 지나갔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다시 떠오른 건 정세랑 작가가 통일신라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발표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였다. 전공과 실제 가지고 있는 지식의 정도 간에는 괴리가 있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역사에 어느 정도 식견이 있는 소설가가 쓴 역사 소설이니 당연히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 난 소감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익숙하지 않은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그럭저럭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역사추리소설’이다. 주인공인 설자은은 원래 신라 시대 육두품 집안의 여섯째 딸로 태어났지만 갑작스럽게 사망한 연년생 오빠를 대신하여 남장을 하고 당나라로 유학을 떠난다. 책은 예상치 못하게 일어난 당과 신라 사이의 전쟁으로 인해 유학 기간이 길어지면서 설자은이 죽을 고생을 하며 버티다가 겨우 신라로 돌아오는 배에 타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이후 설자은은 배에서, 그리고 금성에 돌아와서 여러 가지 기인한 사건에 휘말리지만 뛰어난 두뇌와 관찰력, 조력자 목인곤의 도움 등에 힘입어 사건을 차근차근 해결해 나간다.
삼국통일 직후의 통일신라가 배경이 되는 역사소설은 분명 흔하지 않다. 당 유학생인 주인공과 백제 기술자 출신의 조력자도 이렇게 특이한 배경 속에서 신선한 요소로 작용한다. 다만 각각의 사건과 그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추리적 요소가 기발하다는 인상을 받지는 못했다. 주인공이 남장여자이고 머리가 뛰어난 주인공을 신체적인 능력을 이용하여 보조하는 조력자가 존재한다는 점도 전형적인 추리소설의 요소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좋았고 계속 읽고 싶은 동력이 들었던 지점은 전반적으로 등장인물들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느껴졌다는 점이다. 특히 이러한 시선은 여성, 백제 유민, 새지기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로 주로 향하면서 상대적으로 밋밋한 추리소설적 요소를 훌륭하게 보완하고 있다.
사실 이 책은 소위 ‘설자은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라 아직 작가와 독자 모두 세계관에 대한 몰입이 덜 된 것일 수도 있다. 우선 3권까지는 구상을 해 놓았다는 작가와의 인터뷰를 보았는데 다음 권이 나오면 계속해서 읽어볼 의향이 충분히 있다. 시리즈가 계속될수록 설자은과 목인곤의 캐릭터가 더욱 흥미롭게 무르익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제목 사진 출처: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231101010000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