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두절(無頭節)'이란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직장에서 상사가 자리를 비운 날을 의미하는 말이다. 아무리 좋은 팀장도 자리에 없는 팀장만은 못하다는 말이 진리로 받아들여지는 시대에 많은 직장인의 마음을 설레게 만드는 날이다. 물론 나도 그렇게 마음이 설렜던 쪼렙 팀원들 중 하나였다.
그런데 얼마 전 부서 이동을 하면서부터 무두절이 슬슬 부담스러워지고 있다. 작년 여름에 차장으로 승진했는데 이전 부서에서는 직급과 관계없이 하는 일이 똑같았고 팀 내에서 일을 하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승진 이후에도 크게 달라진 점이 없었다. 그러다가 올해 2월에 부서 이동으로 현재의 팀에 오게 되었는데 이곳에서는 팀장님 다음 직급이 바로 나다. 사실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는 한 팀에 차장이 두 명 이상 있는 경우는 드물고 차장이 아예 없는 팀도 많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기도 하다.
현재 팀의 팀장님은 예전에 내가 이 팀에서 과장으로 근무할 때 차장님으로 함께 계셨던 분이다. 고도의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시원시원하면서도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던 분이기 때문에 그때부터 이 분께서 팀장이 되시면 무조건 따라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휴가나 재택근무를 신청하면 대부분 바로 승인하고 본인도 자유롭게 휴가를 쓰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가끔씩 팀장급 이상이 참석하는 회의가 있거나 시간을 다투면서 처리해야 하는 일이 생길 때 팀장님이 휴가 중인 경우가 생긴다. 정말 중요한 결정이 필요한 일이라면 실례를 무릅쓰고 전화로 연락을 해야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결국 내가 회의에 대신 참석하거나 결정을 내려야 한다. 다른 회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은 나이에 팀장이 되는 회사를 다니고 있는지라 지금까지 팀장으로서 업무에서 결정을 내려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은근히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다. 이제는 마냥 기대감만을 가지고 무두절을 맞이할 수는 없게 된 이유다.
물론 이러한 경험이 중요한 예행연습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팀장이 된다면 매일매일 실전에서 이러한 상황을 맞닥뜨려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팀장님도 이를 염두에 두고 나를 훈련시키려는 의도에서 일부러 휴가를 쓰는 때도 있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는 감사한 마음도 있다.
무두절에 열광하다가, 이제는 점차 부담스러워지고, 언젠가는 무두절의 대상이 될 것이라 생각하니 세월의 변화가 날 이렇게 만드는구나 싶다. 한편으로는 내가 나중에 팀장이 되었을 때 휴가를 쓰면 나도 좋고 팀원들도 신날 테니 서로한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도 괜찮을 것 같다.
* 제목 사진 출처: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308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