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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주 김석민 법무사 Jan 16. 2022

성폭행, 형사고소하지 않겠습니다.

결투장에 보내지는 아이들


이럴 줄 알았다면 고소하지 않았다.


“만약 미소가 법정의 증언대에 서서 강간 사실을 구체적으로 진술해야 했다면 저는 고소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미소의 부친 박순원 씨는 담담히 말을 한다.

그 얼굴빛에는 아예 처음부터 형사고소를 하지 않았다면 미소가 적어도 살아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배어 있다.     



라스트듀얼 : 마지막 결투


  “152분간의 긴장감! 마지막 결투 재판 장면이 클라이맥스!"(Ben Croll, indieWire), “숨이 멎을 정도로 완벽하게 연출된 결투 재판 장면!”(Robert Ruggio, AwardsWatch), “의심의 여지없이, 리들리 스콧 감독의 최근작 중 최고의 작품!”(Ben Rolph, Movie Marker),     


위의 감탄사들은 ‘라스트듀얼:최후의 결투’에 대한 외신들의 평론이다. 과연 이분 들이 이 영화의 개념에 대한 이해를 하고 하시는 평론인지 의문이 든다.     


위 영화는 프랑스에서 마지막 결투를 허용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여주인공 마르그리트는 남편의 친구이자 경쟁자인 자크에게 강간을 당하고, 남편 장은 자신의 재산이 부인 마르그리트에 대한 강간 즉 침해를 이유로 자크를 고소 한다. 문제는 자크가 영향력을 미치는 지역에서 진행된 강간에 대한 입증을 위한 재판에서는 마르그리트가 꿈을 꾼 것에 불과하다고 무죄가 나온다.     


이후 자크에 대한 여러 감정에 불타오르던 남편 장은 자크에게 결투로 신의 뜻을 증명하자고 제안하고 왕은 공식적인 프랑스의 마지막 결투를 허락한다.


관중이 몰려들왕은 호기심에, 귀족은 서로 간 패를 나누어 흥미롭게 이 결투를 바라보는데 성폭행 피해자 마르그리트는 남편 장이 이기면 남편의 전리품으로,  남편 장이 지면 화형 당할 운명에 처해 채 온 관중이 바라보는 곳에 세워져 있다.     


강간당한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 강간이 사실이냐 아니냐와 상관없이 남편이  결투에서 지면 화형이고, 이겨도 마르그리트는 더 이상 평화로운 삶을 살 수는 없는 처지에 처하게 된다. 이 정도면 ‘야만’이라고 표현해야 한다.


라스트듀얼은 성폭행 여성이 겪어야 할 운명을 정확히 보여주는 책과 영화이다. 강간당한 피해자의 의사는 필요치 않다. '피해자에 대한 존중과 보호' 그깟 것은 개에게나 줘버려라는 모습이다.


남편(경찰과 검사)과 가해자(피고인과 변호인)의 결투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왕과 관중의 욕구를 채워주며 다시 '인격과 미래가 강간당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결투능력이 유죄와 무죄를 가른다.


성폭행 사건의 대부분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피해자 여성은 강간이라고 하고, 가해자 남성은 그런 일이 없거나 화간이라고 진술하여 양측의 진술은 50 대 50으로 진실과 거짓을 알 수 없을 때에는

남편 또는 아빠와 가해자의 결투 능력에 유죄와 무죄가 확정되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알 때 과연 어떤 여성이 성폭행을 고소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러나 이 야만이 2022년 대한민국에서 다시 시작한다. 정확히는 모든 성폭력 여성들이 여전히 당하고 있지만 19세 미만 아동에게만은 그나마 보호를 하던 제도를 걷어낸다.아프리카 소년병은 마약을 먹고 전쟁에 나가고, 대한민국 성폭행 피해아동은 아픔을 딛고 법정이라는 전쟁터에 나가야 한다.


   <영상물에 수록된 19세 미만 성폭력범죄 피해자 진술에 관한 증거능력 특례조항 사건>     
헌법재판소는 2021년 12월 23일 재판관 6:3의 의견으로, 19세 미만 성폭력범죄 피해자의 진술이 수록된 영상물에 관하여 조사 과정에 동석하였던 신뢰관계인 등이 그 성립의 진정함을 인정한 경우 이를 증거로 할 수 있도록 정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2012. 12. 18. 법률 제11556호로 전부개정된 것) 제30조 제6항 중 ‘제1항에 따라 촬영한 영상물에 수록된 피해자의 진술은 공판준비기일 또는 공판기일에 조사 과정에 동석하였던 신뢰관계에 있는 사람 또는 진술조력인의 진술에 의하여 그 성립의 진정함이 인정된 경우에 증거로 할 수 있다’ 부분 가운데 19세 미만 성폭력범죄 피해자에 관한 부분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선고하였다. [위헌] 이에 대하여는 위 조항이 과잉금지원칙에 반하지 아니하여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재판관 이선애, 재판관 이영진, 재판관 이미선의 반대의견이 있다.


위 헌법재판소의 결정의 의미에 대해 일반인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청주 여중생 사건’에 대입하면 2021. 1. 17. 강간을 당한 미소는 2. 1. 형사고소를 하고, 2. 4. 해바라기센터(영상록을 녹화함)에서 성폭행 사실을 진술한다. 문제는 이 당시에 피고인의 변호인도, 검사도 판사도 없이 수사기관과 피해자 국선변호인만 참여한 채 이루어진 것이 헌법재판소는 문제라는 것이다.     


아이들(성인인 성폭행 피해자들도 마찬가지로)은 시간이 흐르면 기억을 잊거나 수정을 가하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서 증인 신문을 하면 진술의 일관성이 깨질 수 있고 법원은 진술의 일관성이 깨지면 신빙성이 없다고 무죄선고를 할 위험이 있다.


그러니 최대한 빨리 아이의 진술을 들어서 사실관계가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데 이 당시에는 가해자의 변호인이 참여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이때 피고인의 방어권이 침해당한다는 주장이다.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해  만약 미소가 살아있었다면 법정에 나가 성폭행의 구체적 증언을 하라는 것이다.  



피해자는 강간 사실을 절대 잊지 마라. 완벽히 재현을 하라.


미소는 2. 4. 해바라기 센터에서도 “강간사실을 잊고 싶다”고 진술을 한다. 성폭행 피해자들이 성폭행 이후 그 사건을 빨리 잊고 새 출발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오히려 권장할 일이다.


그러나 그건 피해자의 아빠와 엄마의 마음이고, 형사 고소가 진행된다면 피고인 방어권을 위하여 이제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미소의 경우 2. 1. 고소를 한 이후 1심 재판이 끝난 일자가 12. 10.이다. 이때까지 아니 대법원 선고가 날 때까지 자신의 기억을 오롯이 기억하면서 상처를 안고 살아 있어야 피고인의 유죄가 입증할 수 있다.


14세 어린아이에게 성폭행 상처를 품고 기억하며, 다시 더 구체적으로 많은 사람 앞에서 진술을 할 준비를 하라는 것을 우리 사회는 요구하고 있다.

     

[수현] "질문의 강도들이 너무너무 제가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그 당시에 어떤 속옷을 입고 있었고, 몇 번째 손가락이었는지 이런 걸 다 물어봐요. 어린아이가 어떻게 기억해요? 그냥 아프고 싫었다는 것만 기억하지, 누가 그걸 보고 있냐는 말이에요." MBC '사건 속으로' 6살 짜리에게 "법정 나와서 증언해라"‥위헌 결정 후폭풍, 2022. 1. 16.


또한 잊어서도 안 되지만 증언 신문을 하는 그날 상대방 피고인 변호인이 몇 번째 손가락이었느냐, 속옷은 무엇을 입고 있었느냐 등의 성폭행 입증과 관련이 없는 오로지 피해자를 모욕 주고, 수치심에 떨게 하며, 위축되도록 하는 증인신문에 떳떳이 마서 싸우라는 것이다. 성인도 못 하는걸 14세 아이에게 요구한다.


  [오선희/변호사(6살 피해아동 변호)] "(검사가) 안 그러면 증거가 없는 셈이니 기소를 못하겠다‥ 아동이 어리면 어릴수록 이런 낯선 환경에서 낯선 어른들한테 '너 제대로 말해, 정확하게 말해봐'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말할 수 없을 개연성이 더 높아져요. 결과적으로 증거가 없어서 무죄가 될 거거든요. " MBC '사건 속으로' 6살짜리에게 "법정 나와서 증언해라"‥위헌 결정 후폭풍, 2022. 1. 16.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무죄가 나올 수 있다.


그럼 어느 아이가, 아니 아이는 유죄 입증하겠다고 결심을 한다 하여도 공판 절차에서 받을 수많은 상처를 감수하도록 어느 부모가 찬성할 수 있을까?     


결국 고소를 하지 않거나, 공판 전 합의를 보거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현실에서 합리적 타협이 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렇게 하면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강간 통계는 가장 낮아 질 수있다. 고소를 안 할테니까..



이런 줄 알았다면 마르그리트는


프랑스의 마지막 결투의 성폭행 피해자 마르그리트는 남편과 가해자의 결투를 보면서 자칫하면 화형에 당할 그날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저는 이럴 줄 알았다면 자크를 고소치 않았을 것입니다. 그냥 저를 조용히 살게 해 주십시오!”

(이런 취지로 영화에서는 나오지만, 책에서는 이런 취지의 내용이 없다. 그러나 남편의 재산에 불과한 마르그리트가 남편의 뜻과 다르게 말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지만 마르그르티는 속으로 이 고소를 후회했을 것이다)


역시 미소도 만약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이제 결투장에 끌려가야 다. 차마 수치스러워 엄마에게도 주지 못했던 SNS 메시지의 내용(강간 사실)을 생전 처음보는 법관과, 검사 그리고 자신을 거짓말쟁이로 모는 변호인 앞에서 리얼하게, 구체적으로, 확신이 들도록 증언해야 한다.


또한 아름은 양가감정에 의해 의붓아버지를 구하고 싶지만 감정에 반해서 강간과 추행을 구체적으로 증언해야 한다. 안 그러면 위증이다.


이렇게 잔인한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결투에서 진다. 그 결투에서 지면 마르그르트는 화형을, 미소는 친구 아빠를 성폭행으로 고소한 아이로, 아름은 의붓아버지를 강간 및 추행으로 법정에 서서 증언을 한 아이가 된다.


그 결투의 문제점은 이겨도 상처이고, 지면 정신병자 또는 무고를 한 사람이 된다.


진실을 결투라는 비극으로 만든 프랑스의 라스트듀얼은 오늘 대한민국에서 계속되고 있다. 여전히 관중은 결투씬에 환호를 하고, 수많은 평론도 칼을 들고 방패로 막는 결투씬에 찬사를 보내며...


성범죄를 진실을 밝히는 재판이 아닌 국가와 피고인과 변호인의 결투의 장로 만들어 버린 우리의 법정은 피해자에게 영원한 저주를 한다.


이겨도 져도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삶이라는 저주를...


고소할 때만 피해자는 고소권자일 뿐이다. 이후에는 수사와 재판의 객체로 살아야 한다.


다음 예정 글  <피고인의 방어권인가 공격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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