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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원진 Jul 06. 2024

파리 개선문 - 황제 vs 350만명

2007. 7.23(월)     


개선문은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에서 죽은 전사자들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250만 명 - 나폴레옹 전쟁에 끌려 나와 처참한 최후를 맞은 어린 병사의 수다. 샹젤리제 거리에서 누리는 평온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달았다.       


샹젤리제 거리

콩코르트 광장에서 출발하여 개선문 방향으로 도보로 이동했다. 샹젤리제 거리는 도로 양편의 가로수를 사각형 모양으로 가지치기해 놓은 게 일단 눈에 들어왔다. 또한, 도로 양편에 늘어선 거대한 나무 사이사이에 ‘파란색-흰색-빨간색’ 휘장을 위에서 아래로 펼쳐 놓았다. 가로수 가지치기와 삼색기 문양 휘장만으로도 거리에 샹젤리제 거리만의 독특하고 고유한 분위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휴일을 맞아 파리 시민들과 여행객들이 도로 양편에 자리 잡은 노천카페에서 한가한 오후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샤넬, 디오르, 자라 등 거리에 늘어선 상점과 식당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두리번거리며 걷다 보니 개선문에 도달했다.      



에투알 개선문

개선문. 입장료 8유로를 지불했기에 엘리베이터가 있겠거니 했다. 너무 순진했나? 계단, 무려 280개나 되는 계단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오른 보람이 있었다. 사방팔방으로 막힘없이 시원한 전망을 선사했다. 인간은 어딜 가나 높이 올라 세상을 내려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멀리 현대식 업무지구인 라데팡스가 보이고 가까이는 지금 걸어온 샹젤리제 거리를 한가로이 오가는 인파가 내려다보인다.     



개선문 이면에 숨겨진 진실 : 나폴레옹 전쟁 350만 명 사망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나? 

개선문, 정확히는 에투알 개선문은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에서 죽은 전사자들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나폴레옹 1세 또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재임 기간인 1806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836년에 완공했다. 

나폴레옹 전쟁이라? 궁금해서 조사해 보았다. 나폴레옹 전쟁이란 1803-1815년 사이 벌어진 프랑스와 유럽 왕조 국가들 사이의 연이은 전쟁이다.      


약 13년 나폴레옹 전쟁으로 유럽에서 총 350만 명이나 되는 생명이 목숨을 잃었다. 

프랑스만 살펴보면, 전사자 306,000명을 포함하여 총 180만 명이 전사, 부상, 질병으로 사망하거나 실종되었다고 한다. 

반 프랑스 동맹을 살펴보면, 전투 중 사망자 56-187만 명을 포함하여 총 238-592만 명이 사상자가 발생했다. 반 프랑스 동맹이란 이태리,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을 말한다. (참고 : 위키백과)  

    

‘나폴레옹 전쟁에서 살아남기’라는 글에서 전쟁에 끌려 나온 어린 병사들 하나하나가 겪었을 비참한 최후를 엿볼 수 있다.    

 

“재래식 돌격을 감행했던 수많은 젊은이들이 처참한 죽음을 당하거나, 전장은 글자 그대로 도살장으로 변해버렸다.”       


“대포에 맞아 두 동강이 나거나 머스켓 소총 또는 총검에 가슴을 관통당하면 고통 없이 빠른 최후를 맞이했지만, 기병의 군도에 얻어맞으면 치명상이 아닌 긴 자상(刺傷)을 입고 쓰러져, 오래 동안 고통과 갈증에 시달리다 결국 과다출혈이나 감염으로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병사들은 대개 전투가 종료되고 나서 전투 현장에 내버려져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치료라고는 총알을 빼내고 뭉개진 팔다리를 잘라낸 뒤 봉합하는 것 외에는 없었으므로, 많은 부상병들이 군의관의 칼날 아래 괜히 고통만 받은 뒤 결국 죽어야 했습니다.”      


“전장에 버려진 채 밤을 맞이하게 되면 더욱 큰 위험에 처했습니다. 시체나 부상자들을 약탈하려는 주변 지역의 민간인들이 어둠을 틈타 몰려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약탈에 저항하는 부상자를 죽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추격해 오는 적의 기병 못지않게 위험한 존재들이었습니다.”(*1)   

  


350만 사망 이 수많은 죽음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었나?     

나폴레옹은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당했다. 거기서 천수를 다 누리고 살다가 51세 나이로 갔다. 시신은 후에 파리 앵발리드에 안치되었다. 전쟁터에서 처참하게 죽어간 어린 병사의 수가 무려 350만 명 – 이들 모두가 천수를 누리고 살다 간다면야 유배쯤이야 몇 번이라도 다녀오겠다고 하지 않을까 싶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8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유럽은 대규모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시대를 보내고 있다. 어이없는 이유와 명분으로 살육전쟁을 계속해온 유럽에서 이례적인 현상이다. 회원국 27개국간의 정치 및 경제 통합체인 유럽연합(European Union)을 결성한 효과다.   

평화가 값비싸더라도 이기는 전쟁보다는 낫다. 

개선문에서 내려와 다시 샹젤리제 거리를 걸으며 큰 사건 없이 보내는 평온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다시 깨달았다.


참고 *1. 나폴레옹 전쟁에서 살아남기. https://nasica-old.tistory.com/68623)     


샹젤리제 거리

샹젤리제 거리 노천카페

샹젤리제 거리의 행인들

에투알 개선문
개선문 상세조각 - - 1792년 출발 / 1810년 승리 / 1815년 평화


'1810년 승리' / 전쟁에서 프랑스가 거둔 모든 승정보와 지휘관의 이름을 새겨놓았다고 함


개선문 정상에서 내려다본 샹젤리제 거리
개선문 정상 전망 - 멀리 라데팡스 업무지구가 보인다
개선문 정상 전망
상드마르스 공원
사이요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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