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gi Mar 11. 2024

고양이와 세탁실

우와아아앙~! 하며 아침부터 크게 우는 고양이는 우리 집 첫째 고양이 제리다. 제리는 살구색이 조금 섞인 치즈 고양이다. 치즈답게 말이 많고 호기심도 많고 끈기 있는 고양이로, 난 제리와의 말싸움에서 단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 고양이들은 자신들의 아침 루틴에 따라 움직인다. 우리 집 두 마리의 루틴은 절반은 겹치고 절반은 다르다. 제리의 루틴 중 하나는 바로 집 전체를 점검하는 것이다. 밤새 우리 집에 무슨 일이 없었는지 이곳저곳 살펴봐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다. 주방과 세탁실은 붙어 있는데, 내가 아침에 커피를 내리기 위해 물을 끓이려고 가스레인지 앞에 서면 다른 방에 있다가도 냉큼 달려온다. 가볍고 경쾌한 발걸음으로 오도도도도 달려와 나의 등 뒤, 세탁실 문 앞에서 와웅- 우왕- 우와앙- 하고 운다. 서둘러 달려오는 모습이 귀엽다가도 이 작은 고양이는 어떻게 그렇게 큰 목소리를 내는지 알 수 없다. 열어줄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는 끈기와 인내에 두 손 두 발을 들었다. (사실 아침부터 큰 울음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 ) 문을 열어주면 제리는 냉큼 들어가고 그 뒤를 이어 다른 방에서 놀고 있던 둘째 미우가 오도도도도- 달려와 제리를 따라 들어간다. 참 이런 행동들이 귀엽고 하찮다.


 세탁실은 평소에 늘 문이 닫혀 있는데, 가끔 집사가 그 안에 들어가 뭔가를 하는 것을 보니 자기들도 너무 들어가고 싶었던 모양이다. 빨래를 하거나 분리수거를 할 때 나는 소리들에 얼마나 궁금했을지 생각하면 마냥 귀엽다. '이 집에서 내가 들어가지 못할 곳은 없어!'라는 뻔뻔한 생각을 하는 모습도 웃기고 사랑스럽다. '오늘도 별일 없지?' 하고 확인차 묻는다. 그럼 대답을 잘하는 제리는 이내 '우왕' 하며 답을 들려준다. 아마 이상 없음!이겠지.


 길면 1분 정도 되는 시간 동안 세탁실을 둘러본 두 마리의 고양이들은 이내 이상 없음을 확인하곤 후다닥 뛰쳐나온다. 뒤에 무슨 약속 있는 것 같이 서두르는 모습에 가만히 지켜보던 나는 실없는 웃음만 나온다. 이 1분을 위해 세탁실의 바닥에 먼지 없이 쓸고 닦고, 세제 같은 것들이 흐른 곳은 없는지, 세탁기는 잘 닫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여간 귀찮지만, 이 작은 집이 온 세상인 고양이들에게 위해 게으름을 버리고 부지런을 택했다. 어쩌면 사람답게 사는 것에 고양이들이 큰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청소는 원래 나와 친한 사이가 아니었으니, 참 고마운 고양님들이다.



작가의 이전글 고양이와 비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