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gi Oct 14. 2024

스스로 만든 미로

 늦은 퇴근을 했다. 가게에서 운영하고 있는 취미 클럽을 마치고 집에 오니 9시 30분이 되어가고 있었다. 평소엔 8시에 전에는 집에 도착하여 고양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10시 30분이 되면 잘 준비를 한다. 늦은 퇴근에 성이난 고양이들에게 간식을 챙겨주고 씻고 나니 벌써 11시가 다 되어간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나는 이렇게 평소와 다른 하루를 보내거나 그래서 루틴이 깨지면 뇌가 어질어질하다. 머리가 회전이 잘 안 된다.


 가끔 저녁에 친구를 만나고 집에 올 때와, 일이 많아 늦은 퇴근을 할 때도 종종 그렇다. 짜증은 안 나지만 내 몸과 뇌는 그 시간에 해야 할 일이 바뀌면 적응을 잘 못하는 것 같다. 머릿속엔 여러 길들이 엉켜있고 그 사이사이 해야 할 일들과 시계가 여기 저리 널브러져 있다. 나는 그 길을 이리저리 달리며 열심히 나아가지만 도저히 길을 찾을 수 없고 엉켜버린 길 한가운데서 그냥 주저앉아버린다.


 결국엔 그냥 자자, 로 끝난다. 아 모르겠고, 일단 자야 해! 벌써 11시가 넘었다고! 내일도 일찍 일어나야 하잖아! 하며 불을 끄고 침대로 향한다. 침대로 가는 길에도 아, 그러고 보니 오늘 와서 쓰레기를 버리려고 했는데라던가 아, 스트레칭을 못 했는데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몸이 많이 뻐근하면 어쩌지, 10분이라도 움직여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걱정이 조금 더 많다. 해야 할 일을 다 못 했다는 걱정. 결국 널브러진 해야 할 일들은 우선순위인 내일을 위한 잠 앞에 내팽개쳐지고 난 잠을 청하기로 한다. 단순하고 쉬운 삶을 바라지만 늘 계획하고 빡빡하게 만들어 놓은 하루에 익숙해져 버린 것 같다.


 집사가 몇 시에 들어오든 몇 시에 나가든, 고양이들은 변함이 없다. 내가 이런저런 갈등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아, 뭐 하지, 뭘 해야 하지 하며 한참을 방황하더라도 세 마리의 고양이들은 10시가 되면 각자의 자리에서 잠을 청한다. 방 안에서 길 잃은 이는 나뿐이다. 나 혼자 인간이고 그래서 나 혼자 생각도 해야 할 일도 많다. 혼자 인간인 것에 외로움을 느끼게 되자 잘 잘고 있는 애들에게 가서 보들보들한 털에 얼굴을 묻어본다. 냄새를 킁킁 맞고 따뜻한 체온에 마음이 녹는다. 다른 건 안 해도 자기 전에 인사와 얼굴 파묻기는 꼭 해야 하는 일임이 틀림없다.  



작가의 이전글 복숭아 디저트, 코블러(Cobbler)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