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퇴근을 했다. 가게에서 운영하고 있는 취미 클럽을 마치고 집에 오니 9시 30분이 되어가고 있었다. 평소엔 8시에 전에는 집에 도착하여 고양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10시 30분이 되면 잘 준비를 한다. 늦은 퇴근에 성이난 고양이들에게 간식을 챙겨주고 씻고 나니 벌써 11시가 다 되어간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나는 이렇게 평소와 다른 하루를 보내거나 그래서 루틴이 깨지면 뇌가 어질어질하다. 머리가 회전이 잘 안 된다.
가끔 저녁에 친구를 만나고 집에 올 때와, 일이 많아 늦은 퇴근을 할 때도 종종 그렇다. 짜증은 안 나지만 내 몸과 뇌는 그 시간에 해야 할 일이 바뀌면 적응을 잘 못하는 것 같다. 머릿속엔 여러 길들이 엉켜있고 그 사이사이 해야 할 일들과 시계가 여기 저리 널브러져 있다. 나는 그 길을 이리저리 달리며 열심히 나아가지만 도저히 길을 찾을 수 없고 엉켜버린 길 한가운데서 그냥 주저앉아버린다.
결국엔 그냥 자자, 로 끝난다. 아 모르겠고, 일단 자야 해! 벌써 11시가 넘었다고! 내일도 일찍 일어나야 하잖아! 하며 불을 끄고 침대로 향한다. 침대로 가는 길에도 아, 그러고 보니 오늘 와서 쓰레기를 버리려고 했는데라던가 아, 스트레칭을 못 했는데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몸이 많이 뻐근하면 어쩌지, 10분이라도 움직여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걱정이 조금 더 많다. 해야 할 일을 다 못 했다는 걱정. 결국 널브러진 해야 할 일들은 우선순위인 내일을 위한 잠 앞에 내팽개쳐지고 난 잠을 청하기로 한다. 단순하고 쉬운 삶을 바라지만 늘 계획하고 빡빡하게 만들어 놓은 하루에 익숙해져 버린 것 같다.
집사가 몇 시에 들어오든 몇 시에 나가든, 고양이들은 변함이 없다. 내가 이런저런 갈등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아, 뭐 하지, 뭘 해야 하지 하며 한참을 방황하더라도 세 마리의 고양이들은 10시가 되면 각자의 자리에서 잠을 청한다. 방 안에서 길 잃은 이는 나뿐이다. 나 혼자 인간이고 그래서 나 혼자 생각도 해야 할 일도 많다. 혼자 인간인 것에 외로움을 느끼게 되자 잘 잘고 있는 애들에게 가서 보들보들한 털에 얼굴을 묻어본다. 냄새를 킁킁 맞고 따뜻한 체온에 마음이 녹는다. 다른 건 안 해도 자기 전에 인사와 얼굴 파묻기는 꼭 해야 하는 일임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