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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gi Oct 17. 2024

우리 집 불안이

 모처럼의 휴일을 맞이했는데, 며칠 전부터 이어져 온 걱정거리로 인해 아침부터 생각이 멈추지 않아 결국 휴일의 좋은 아침을 보내지 못했다. 덜컥 불안한 마음이 점점 커져서, 선선한 날씨와 불안은 꽤 친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더울 땐 불안이는 힘이 약했다. 내리쬐는 햇볕에 영향력이 약해졌다. 나는 더운 한여름 밤에도 탄산음료 한 컵이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날이 선선해지며 낮에 산책하기도 좋고 밤에 잠도 잘 오는 계절이 되었더니 잠시 약해졌던 불안이가 다시 슬슬 덩치를 키워갔다. 덜컥 나타나 내 머릿속을 이리지리 헤집고 마음에서 뜀박질을 한다. 열심히 몸을 키우는 중이다. 얄밉기 그지없다.


 앉아서 고민하고 생각한다도 뭐가 달라지나, 문제가 해결되나,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나. 로또도 사야 당첨 확률이라도 생기는데,라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불안이는 꽤나 관종이어서 자기가 나타났을 땐 다른 일은 못 하게 한다. 휴일에 해야 할 일들이 수두룩한데, 오로지 자신에게 관심을 주길 원한다. 하지만 나는 불안이와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싶다. 불안이와 친할 때의 나는 내가 원하는 내가 아니니깐, 우리는 거리를 둬야 한다. 불안이로 인해 내팽개쳐 뒀던 일을 처리하기 위해 아이패드와 책과 노트를 들고 밖을 나섰다. 너는 따라오지 마!


 오늘은 하루종일 흐림이었다. 날이 좋았으면 조금 더 빨리 불안이와 이별을 했었을 수도 있는데, 아쉬웠다. 그래도 이때가 우리가 헤어지기 적절한 때라고 생각하면 그래도 괜찮다. 만남과 헤어짐은 다 때가 있다. 밖으로 나와서 동네를 걸었다. 살고 있는 곳은 주택가에 위치한 다가구 주택이니, 우리 집을 나서면 예쁜 주택가를 구경할 수 있다. 주택가를 구경하는 것은 꽤 들뜬다. 이제 가을을 맞이했기에 아마 감나무도 볼 수 있겠지, 하며 기대를 했는데 감나무뿐 아니라 주렁주렁 붉은 석류가 가득 열린 나무도 보았다. 어쩜 저렇게 매력적인 붉은색이 있을까, 감탄이 나왔다. 걷다 보니 날이 좋아졌다. 하늘색 같은 하늘이다. 옅은 구름이 하늘에 얹혀있는 것 같다. 고개를 들어 한참을 보니 그런 듯 아닌 듯 아주 조금씩 천천히 옆으로 움직인다. 구름이 이동하는 끝을 상상하다 아, 끝은 없겠군 싶었다. 구름은 평생 저렇게 떠 돌다 사라질까, 사라진 곳은 기억하려나.


  나오기 전 옷을 입고 머리를 빗었다. 귀찮은 날이니 정말 대충 준비를 했다. 전신거울 앞에 서서 선크림을 쓱쓱 바르고 다 써서 얼마 남지 않은 립스틱을 손가락에 묻혀 발랐다. 이제 정말 바닥인데, 과연 언제까지 나올까?라는 생각을 하며 거울을 보다 입가가 텄다는 것을 알았다. 부쩍 건조해진 날씨에 손도 조금씩 터 가는데, 입술 가장자리가 하얗게 뭔가가 올라온 것을 보니 덜컥 마음이 슬펐다. 나는 나를 돌보지 못할 때 작게 비참함을 느낀다. 덜컥 눈물이 나 제리가 누워 자는 침대로 갔다. 내가 침대로 달려들어 본인을 끌어안아도 또 뭐?라는 뚱한 표정의 시니컬한 고양이 제리다. 제리 앞에서는 감히 이런 걸로 슬퍼하기가 부끄러워 우는 것은 다음에 하기로 했고, 결국 집 밖을 나와서 다시 조금 울었다. 소심하게, 지나가는 사람들 모르게 나만의 벽을 치고 작게 울었다.


 결국 오늘은 지나간다. 그리고 내일은, 아마 오늘 조금 슬펐기에 내일은 조금 기쁜 일이 있을 수도 있겠다. 내일도 슬프다면 그다음에 또 웃는 날들이 지속될 거라 생각한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다만 슬픔과 외로움, 불안은 조금 오래 남고 기쁨과 즐거움은 조금 빨리 사라진다. 그래도 불안하고 외로워서 슬플 때, 나는 좀 더 나다워지는 것을 택한다. 좋아하는 방식을 통해 마음을 달래고 스트레스를 풀어주니깐, 어쩌면 내가 나로 더 단단해지기 위해 불안이가 나에게 온 것일 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하고 난 정신 차리고 이제 내 일을 하는 것이다. 불안이가 선의를 베풀어 준다고 해도, 오늘 저녁에 집에 가면 불안이는 집에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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