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버드네 Mar 20. 2022

기억 속에 함께하는 가족

100일 글쓰기 카페: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시간

우리 집에는 19996월부터 2012 9월까지 13 정도 키웠던 강아지가 있었습니다. 이름은 ‘안비였고 거의 짖지 않았던 생각이 많은 강아지였습니다. 처음 안비가 우리 집에  것은 아들이 유치원을 다니던 일곱 살이었고 우리 곁을 떠난 것은 아들이 재수를 하던 스무 살이었습니다. 안비는 아들과 함께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거치며 우리와 함께 생활하다 구름다리를 건너서 지금은 우리 곁에 있지 않지만 우리 가족의 기억 속에서 함께하고 있는 강아지입니다. 


지금도 공동 주거 공간인 아파트에서 개를 키우는 것은 논란의 소지가 있지만, 그때도 아파트인 우리 집에서 개를 키우는 것은 여러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보다 가장 큰 문제는 개를 양육하는 방법에 대한 저의 무지였습니다.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란 저는 개는 사람과 분리된 공간에서 생활하는 가축이라고만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털이 많이 빠지는 개를 아파트 베란다에서 키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파트 베란다에서 안비를 키웠던 2 ~ 3년은 두고두고 제 맘을 아프게 하는 안타까운 기억입니다. 토종 발바리였던 안비는 생긴 모습이 작은 원숭이 같았습니다. 때로는 고양이처럼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우리 집에 온 사람들 마다 한결같이 개가 불쌍하고 못생겼다고 하였습니다. 얼굴도 그렇고 생김새가 지지리 궁상맞은 강아지라고 측은해 하였습니다. 

그런 강아지를 우연찮게 미용을 하게 되었습니다. 미용을 하고 털이 날리지 않게 되자 그때부터 안비는 우리와 한 공간에서 생활하였습니다. 또한, 우리 집을 다시 방문했던 사람들도 지난 번에 있던 강아지에 비하면 개가 고급스럽고 귀품이 있다고 칭찬을 해 주었습니다. 강아지가 어쩌면 사람을 보아도 짖지도 않고 영리해 보인다고도 하였습니다. 지난 번에 보았던 강아지를 미용만 시킨 거라고 하여도 사람들이 도통 믿지를 않았습니다. 

처음 안비가 우리 집에 온 것은 우리 아파트 단지에 있는 단골 세탁소 사장님의 하소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누가 강아지 한 마리를 주었는데 더 이상 키울 수가 없다고 걱정을 하셨습니다. 가족 중에 개 알레르기로 키울 수가 없어서 세탁소로 데려왔는데 개도 불편하고 손님들도 싫어해서 걱정이라고 하셨습니다. 마침, 어릴 때부터 물고기, 병아리, 거북이, 곤충, 햄스터, 토끼 등 애완동물을 키웠고 이제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졸라대는 아들 녀석이 생각나서 그럼 우리가 키우겠다고 하여 데려온 것입니다. 

안비는 집에 오자마자 이불에 오줌싸고 털이 날려서 집 안에서 함께 생활할 수가 없어 앞베란다에 묶어서 키우게 되었습니다. 한동안은 창 밖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짖기도 하고 가족을 보면 온몸으로 반기며 짖던 강아지는 어느 순간부터 짖는 것을 멈추었습니다. 

하루는 한밤중에 도둑이 앞베란다로 넘어오려고 창문을 열다가 저와 눈이 마주쳐 도망을 갔는데도 우리 집 강아지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말끔하게 미용을 시킨 강아지가 짖지 않았기 때문에 아파트에 민원이 생기지 않았고 또 털이 더 이상 날리지 않아서 온 집안에 강아지 오줌 냄새가 나는 것 정도는 가족으로서 참을 수가 있었습니다. 

안비는 저와 식성이 비슷한 강아지였습니다. 처음 안비가 2개월 정도 지나서 분양된 세탁소 옆이 빵가게 옆집이었습니다. 그런 덕분에 3개월 정도 되어 우리 집에 온 안비는 유난히 빵을 좋아했습니다. 하루 걸러 빵을 먹는 나와 안비는 금세 좋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안비는 빵봉지의 부스럭거리는 소리만 들어도 어디선가 달려오는 빵친구였습니다. 더 신기한 것은 제가 과일 중에서 귤을 좋아하지 않는데 귤을 까서 얇은 속껍질까지 벗겨서 탱글탱글한 귤과즙 알갱이만 주어도 먹지를 않았습니다. 서로의 닮음을 확인하는 것은 친구와의 거리를 좁히는 데 좋은 영향을 끼치는 듯합니다. 

안비는 사람들에게 준 첫인상과 달리 영리한 강아지였습니다. 안비는 사료를 그날그날 주지 않아도 되는 강아지였습니다. 사료 그릇과 물 그릇을 피아노 아래 두고 먹게 하였는데 자신이 먹을 양만큼 먹고 다음날 먹기도 하는 강아지였습니다. 가끔 씩 제가 안비의 사료와 물이 떨어진 것을 잊고 있으면 피아노 밑에 있는 물그릇과 밥그릇을 거실까지 물고 와서 빈 그릇에 대한 의사를 표현하기도 하였습니다. 참 영리한 강아지였습니다. 

안비는 제가 주로 산책을 시켜주었는데 어쩔 때는 혼자 현관문을 열어두면 20분에서 30분 정도 산책이랑 볼 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강아지입니다. 하루는 산책을 나간 안비가 1시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아서 우리 집 주변이랑 자주 산책하던 동천을 돌며 4시간을 찾아 헤맨 적이 있습니다. 

집 앞에 큰 길이 있는 터라 이런저런 별의별 생각을 하면서 울며 찾다가 마지막으로 아파트 경비실에 가서 방송을 부탁하려고 갔더니 경비실 아저씨가 우리 집 아래층에서 강아지를 한 마리 데리고 있다는 연락이 왔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안도의 큰 숨을 몰아쉬면서도 너무너무 화가 났습니다. 2층 아랫집에 가서 안비를 데려오면서 정말 억지로 그집 따님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 뒤로 몇 년이 흐르고 우리 집 인테리어 공사 때문에 시끄럽다는 2층 민원을 해결해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참 옹졸하게도 그때 안비를 데리고 있었던 일이 떠올라서 길에서 갑자기 만나 소음 문제를 항의하는 2층 아저씨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화를 냈습니다. 2층 아저씨는 너무 어이가 없고 당황해서 말씀을 못 하셨습니다. 소음을 낸 가해자 측에서 피해자한테 그렇게 화낼 일이냐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인테리어 소음을 사과한 것이 아니라 그때 안비를 4시간 동안 돌본다고 가둔 것에 대한 항의를 10년도 지난 뒤에 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죄송하게 됐다고 하였지만 아저씨가 저에게 재차 부당한 요구와 시비를 계속 건 측면도 있습니다. 

안비가 제 갈길을 가도록 내버려 두었다면 분명 우리 집으로 돌아왔을 것인데 아파트 계단에 개가 한 마리 돌아다니고 있어서 집에서 데리고 있으면 주인이 올 거라는 선의였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4시간 넘게 마음 속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걱정했던 것을 생각하면 도저히 고맙지가 않았습니다. 사람이든 강아지든 도움을 필요한 것인지 살피는 것도 중요한 문제인 듯합니다. 그때부터 안비는 자유롭게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안비가 가끔 씩 창 밖을 오래도록 응시할 때가 있습니다. 불러도 반응이 없고 심드렁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 때면 기분이 짠해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안비의 별명을 ‘철학자’라고 불러주었습니다. 지금 아들이 키우고 있는 개를 ‘자본주의 개’라고 부르는 것에 비하면 안비는 정말 젊잖은 개였습니다. 우리 집은 3층이라 거실에서도 길거리의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러나 안비는 사람을 보기도 하고 하늘을 보기도 하면서 먼 곳을 가만히 앉아 응시하곤 하였습니다. 

어릴 때 우리 집에 친척이나 교회 구역예배 손님이 오면 아이들은 당연히 자기 방으로 가서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며 자신의 할 일을 했습니다. 어른들의 대화에 끼지 않도록 주의를 했기 때문입니다. 또 어른들이 대화에 집중할 수 있도록 떠들거나 소란스럽게 하면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강아지도 제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안비는 사람이 와도 짖지를 않았습니다. 사람한테 안기거나 감시하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안비가 제 말을 알아듣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안비에게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아이 대하듯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안비가 오래도록 저의 요청을 묵살하다가 죽기 전에 한 일이 있습니다. 바로 한글입니다. 저는 입버릇처럼 안비에게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글쓰기 선생인 우리 집에서 안비 너는 왜 한글을 모르니? 글쓰기는 못 해도 최소한 말은 할 수는 있어야 하지 않겠니!” 하면서 한글을 말하도록 종용했습니다. 또, 세 살 아이 대하듯 한글을 가르쳤습니다. 

그냥 안비에게 말을 거는 거였습니다. 한글로 말하기를 꾸준하게 강요를 했습니다. 저 자신에게 다이어트 요구를 하면서도 맛있게 음식을 먹는 것처럼 그렇게 오늘도 다이어트 내일도 다이어트 하듯이 안비에게 한글 타령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안비가 죽기 전에 정말로 기적처럼 ‘엄마’ 소리를 하였습니다. 죽어가는 그 순간에 이 말을 녹음해야 하는데 할 정도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강아지 소리를 내지 않던 안비가 “어 ~엄 ~마”라고 두 번 말했을 때 얼마나 울었는 지 모릅니다. 그렇게 안비는 저와 이별을 했고 우리 가족과도 이별을 했습니다. 안비가 죽었던 2012년 9월은 아들이 대학에 떨어지고 재수를 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딸은 핀란드에서 교환학생으로 가 있었습니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화상으로 통화를 하면서 안비에게 안부를 묻던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런 안비가 나이들고 병들어서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만 알고 알렸습니다. 그런데 안비가 죽게 되자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아들이었습니다. 재수라는 상황이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많은 데 안비의 죽음까지 알리면 어떻게 될까 하는 불안과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수능을 보기 위해서 11월이면 집에 올 텐데 어떻게 할까 그때 알면 더 충격일 텐데 이런저런 고민을 하였습니다. 차라리 수능에 가장 충격이 덜한 시점이 언제일까를 생각하다 빠르면 빠를 수록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결국, 아들에게 안비의 죽음을 말하지 못한 채 보름이 지난 다음에 안비의 죽음을 알렸습니다. 그때 아들이 20일 넘게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전화를 할 때마다 울먹이던 아들은 제 걱정과 달리 그 해 수능을 무사히 잘 치루었습니다.  

안비가 죽고 나서 3개월 정도는 가족을 잃은 슬픔과 상실감으로 헤어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집 강아지만 보아도 눈물이 나고 안비가 있던 자리만 보아도 눈물이 났습니다. 그런 상실감 속에 안비에게 못 해 준 것들만 떠올라서 힘이 들었습니다. 좀더 잘해 주지 못 한 것들이 너무 많아서 기운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안비가 죽기 한 달 전부터는 강아지가 오래 못 살겠다는 동물병원 원장님 진단을 받고 저는 안비를 데리고 이곳저곳 제가 자주 가는 공간들을 데리고 다녔습니다. 제가 자주 가는 마트, 직장인 학교, 고향집 또 마음이 울적할 때면 찾는 송광사를 스님께 양해를 구하고 데려가기도 했습니다. 스님과 차를 마실 때도 지장전에 108배 절을 할 때도 절방석에 엎드려서 가만히 있던 안비였습니다. 

송광사에는 비사리구시라는 오래된 목조용기가 있습니다. 송광사가 번창할 때 나라의 제사를 지내면서 4천 명의 손님 밥을 담을 수 있는 밥통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염라대왕이 송광사를 좋아해서 송광사에 갔다 온 사람들은 환생을 시켜주겠다고 하였답니다. 그러자 송광사 아래 살던 할머니가 본인이 송광사의 비사리구시를 보고 왔노라고 하였더니 죽었다 다시 살아나서 100살까지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송광사 3대 명물 중에 하나입니다. 

저도 안비에게 비사리구시를 보여주기 위해 송광사까지 데려갔습니다. 염라대왕한테 가면 꼭 송광사에 가서 비사라구시를 보았다고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뒤로 안비가 죽고 나서 3년 정도 송광사에 안비를 위해 등을 썼습니다. 



안비는 저의 가족이었고 친구였으며 자식이었습니다. 지금도 안비 사진을 보면 눈물이 납니다. 그 뒤로 아들이 강아지를 키우겠다고 하였으나 제가 절대로 안 된다고 하였는데 2년 전에 아들이 엄마 몰래 강아지 두 마리를 분양해서 키운다고 하였습니다. 그 뒤로 우리 집에 안비만큼 사랑스러운 ‘루이와 포포’가 놀러와서 한 달이나 두 달 간 머물다 가기도 하고 그럽니다. 그런데 두 마리의 개는 안비와 너무 다릅니다. 온 집을 달려다니며 소란스럽게 하고 아무 때나 짖고 간식이나 밥을 줄 때만 나를 따르는 요즘말로 이기적인 놈들입니다.  ‘루이와 포포’에게 ‘자개’ 또는 ‘자본주의 개’라는 별칭을 붙여주었습니다. 

두 마리 강아지에게 정을 주는 것이 두렵지만 안비가 함께했던 시간은 아들에게 강아지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온전하게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안비는 함께했던 시간만큼 보고 싶은 마음만큼 상실의 아픔이 컸지만 제 기억 속에서 아직도 머물러 있는 가족입니다. 임상사목교육에서 '상실감 성찰기'라는 과제를 쓰면서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상실감을 안겨 준 대상으로 안비가 떠올랐습니다. 안비에게 쏟았던 애정만큼은 못 하겠지만 이제는 제 자신과 주변을 위해 관심과 사랑을 실천하려고 합니다.  


** 안비는 산책을 가면 제가 좋아하는 버드나무의 옆 벤치에 앉아 한없이 물가를 바라보던 강아지였습니다. 양산 아래서 초여름의 햇살과 더운 바람을 피하며 산책을 즐기던 강아지였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내 마음의 걸림과 돌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